‹ 목록으로 무한 웨폰 헌터

2화

숲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나무들이 점점 더 촘촘해졌다. 가지와 가지가 서로 얽혀 하늘을 가렸다. 빛이 스며드는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대신 그림자가 진 자리가 늘어났다. 발밑의 낙엽은 축축했다. 밟을 때마다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마저도 이상하게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 경계선을 눈으로 계속 훑었다. 빛과 그림자가 나뉘는 자리, 그 미묘한 선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뭔가 있어. 분명히.)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렸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소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흔들림이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설명할 수 없는 낯선 파문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여기서 좀 쉬자." 오세연이 배낭을 바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숨이 조금 가빠 보였다. 아까부터 걸음이 빨랐던 걸 나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다들 지쳤을 텐데." 나는 배낭을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 어깨가 뻣뻣했다. 차현우가 물병을 꺼내 건넸다. 오세연이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둘의 손이 스치듯 닿았다. 오세연은 별생각 없이 웃었다. "고마워." 짧은 인사였다. 차현우도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손끝이 스치는 그 잠깐의 접촉,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시선. (...기분 탓이라고 하기엔.) 나는 애써 다른 곳을 바라봤다. 바위 위에 앉아 다리를 펴며 숨을 골랐다. [마스터, 심박수가 상승했습니다. 스트레스 지수 감지.] 단말기가 조용히 알렸다. "신경 쓰지 마." 나는 낮게 대답하며 시선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다만 주변 마나 농도가 평소보다 15퍼센트 높게 측정되고 있습니다.] "...그건 신경 써야겠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숲 안쪽을 다시 눈으로 훑었다. 오세연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물병을 다시 건넸다. 차현우가 그것을 받으며 짧게 웃었다. 평범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평범함 속에서 자꾸 걸리는 게 있었다. (신경 쓸 때가 아니잖아, 지금.) 나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지웠다. 그때였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딱. 짧고 건조한 소리였다. 세 사람 모두 동시에 그쪽을 돌아봤다. 숲 속 어둠 사이에서, 붉은빛 두 개가 나란히 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만 희미하게 이어졌다. "…뭐야, 저거." 차현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세연은 바위 뒤로 몸을 낮췄다. 숨소리를 죽이려 애쓰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허리춤의 단검을 뽑았다. 손끝에 익숙한 무게감이 잡혔다. [탐지 결과, 3등급 몬스터 도감에 등록되지 않은 개체입니다.] [경고. 마나 반응 수치가 통상 범위를 크게 초과합니다.] 단말기의 목소리가 이번엔 뚜렷하게 긴장을 담고 있었다. "도감에 없다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등록 안 된 몬스터... 협회도 모르는 거야?)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등급을 알 수 없는 개체. 마나 수치가 통상 범위를 벗어난다는 건,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최악의 조합이잖아, 이거.) 붉은 눈이 서서히 다가왔다. 나뭇가지 사이로 검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형상과 짐승의 형상이 뒤섞인,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괴한 실루엣이었다.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등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안개는 바람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존재의 주변을 맴돌며 점점 짙어졌다. 숨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도망쳐!" 내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쿵. 그 존재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발이 지면을 짓누르는 순간,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오세연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차현우가 검을 뽑아 앞으로 나섰지만,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현우야, 세연이 데리고 뒤로 빠져!" 나는 앞으로 몸을 던졌다. 발끝으로 지면을 밀어냈다. 거리를 좁히는 순간, 존재의 팔이 먼저 움직였다. 퍽. 그 존재의 발톱이 내 어깨를 스쳤다. 뜨거운 통증이 퍼졌다. 피가 옷을 적셨다. 어깨 아래로 감각이 뭉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단검을 고쳐 쥐고 그 존재의 다리를 노렸다. 손목을 비틀어 궤적을 바꿨다. 발끝으로 지면을 밀며 몸을 회전시켰다. 등 뒤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스윽. 칼끝이 검은 표피를 긁었다. 하지만 상처는 얕았다. 존재가 낮게 울부짖으며 팔을 휘둘렀다. 그 소리에는 짐승의 것과 인간의 것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몸을 굴려 피했다. 등에 흙먼지가 묻었다. 숨이 가빠졌다. (이 정도 상대는 처음이야.)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가진 정보가 없는 상대. 힘의 크기도, 약점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 그저 몸이 반응하는 대로 버텨야 했다. "도윤아!" 오세연이 소리쳤다. 나는 곁눈질로 그쪽을 봤다. 차현우가 오세연을 감싸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은 안전했다. 그 잠깐의 안도가 오히려 위험했다. 존재의 발톱이 다시 나를 향해 뻗어왔다. 나는 뒤로 몸을 젖히며 피했지만,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촥. 허벅지에 긁힌 자상이 생겼다. 다리에 힘이 빠지려는 걸 억지로 버텼다. 상처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마스터, 스킬 '∞웨폰 EX' 사용을 권장합니다.] "그거... 발동 조건이 안 맞잖아." 나는 헐떡이며 대답했다. 내 스킬은 아직 완전히 제어되지 않았다. 각성 이후 몇 번인가 시도했지만, 필요할 때 제대로 발현된 적이 거의 없었다. [조건 미충족 상태에서도 강제 발동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리스크가 얼마나 되는데." [신체 부하가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야." 나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믿을 수 없는 카드는 마지막에 써야 해.) 존재가 다시 달려들었다. 나는 단검을 양손으로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쾅. 충격이 팔 전체로 퍼졌다. 뒤로 두 걸음 밀려났다. 무릎이 꺾일 뻔했다. 손목이 저릿하게 울렸다. (버텨야 해. 세연이랑 현우가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숨을 몰아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땀이 눈가로 흘러들어 시야가 흐려졌다. 그래도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 순간, 존재의 시선이 나를 벗어나 뒤쪽으로 향했다. 오세연이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이었다. "세연아!" 존재가 방향을 틀었다. 나는 있는 힘껏 몸을 던져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퍽. 존재의 팔이 내 몸통을 후려쳤다. 숨이 턱 막혔다. 시야가 흐려졌다. 입안에서 쇠 맛이 났다. 몸이 옆으로 튕겨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등에 나무뿌리가 걸려 통증이 한 번 더 치솟았다. "으윽..."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가 억지로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안 돼. 여기서 멈추면...) 시야 끝으로 오세연이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차현우가 그녀를 끌어당기며 뒤로 물러섰다. 둘 다 무사했다.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 스쳤다. 존재가 다시 팔을 들어 올렸다. 그 발톱 끝에서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듯 모여들었다. 공기가 짓눌리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한 번 더 맞으면, 이번엔 정말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단검을 쥔 손에서도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못 막아.) [마스터, 신체 부하 수치가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단말기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나는 대답할 힘도 없었다. 존재의 발톱 끝에서 검은 기운이 완전히 응집되었다. 그것이 나를 향해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숲 저편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 쐐액. 하늘에서 은빛 섬광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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