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발밑에서 대리석 바닥이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가는 감각과 함께, 나는 있는 힘껏 달려나가며 리본을 손목에서 풀어냈다. 던전 깊은 곳, 습기 가득한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감돌던 곰팡이 냄새와 쇠붙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그 와중에도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이 상황이 얼마나 어이없는지에 대한 자조적인 평가가 멈추지 않았다. 조회수 좀 뽑아보겠다고 봉인석 앞에서 폭혼석을 터뜨리려는 인간이라니, 전생에 이런 인간들을 게임 속 NPC로만 상대했던 나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실감이고 뭐고,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박도현이 마지막 숫자를 내뱉기 직전, 나는 그의 손목을 붙잡아 비틀며 몸으로 그를 밀쳐냈다. 손바닥에 닿은 그의 손목이 놀랄 만큼 가늘었는데, 그 순간에도 나는 이 남자가 겉으로는 온갖 험한 말을 뱉으면서도 실제 몸은 이렇게 부실하다는 사실이 웃겼다. 폭혼석이 손에서 튕겨져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파열음을 냈고, 그 소리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며 나는 반사적으로 폭혼석을 향해 몸을 던졌다. 리본이 손끝에서 뱀처럼 풀려나가며 폭혼석을 휘감았고, 나는 그것을 벽 쪽 물이 고인 웅덩이 방향으로 냅다 던져버렸다. 몸을 던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온갖 잡생각이 스쳤다. 이거 잘못 계산하면 내 팔이 먼저 날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리본에 걸린 폭혼석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궤적을 눈으로 좇았다.
폭혼석이 물속에서 둔중한 폭음과 함께 터지며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물기둥이 천장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 벽에 부딪혀 몇 번이나 울렸는데, 다행히 폭발 반경은 웅덩이 안쪽에 갇혀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물벼락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흙탕물이 뚝뚝 떨어졌고, 옷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그 와중에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꼴로 방송이라도 찍히면 그림이 참 볼만하겠군, 하고.
"뭐, 뭐야, 너!" 박도현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나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 눈빛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는데, 나는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뚜껑을 벗고 튀어나오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던전에서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몬스터는 그냥 죽여야 할 대상이었고, 감정을 섞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인간은 달랐다. 사람을, 그것도 이 안에 있는 모두를 죽일 뻔한 짓을 조회수 때문에 벌였다는 게 나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뭐야가 아니라, 미친놈이지 지금." 나는 나도 모르게 존댓말을 완전히 벗어던진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우아함이니 절제니 하는 단어는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사라졌고, 남은 건 순수한 분노뿐이었다. "저 봉인석 깨지면 여기 몬스터가 몇 마리나 쏟아지는지 알고 하는 짓이야? 여기 다른 배신자들도 있는 거 몰라?" 말을 하면서도 나는 주변을 재빠르게 훑었다. 이 던전 안에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중 누구도 이 상황을 반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박도현이 몸을 일으키며 이를 갈았다. "조회수 좀 뽑아보겠다는데 웬 참견이야, 넌 뭔데." 그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며 자세를 잡는 순간, 나는 리본을 다시 손에 감으며 낮게 웃었다. 웃음이 새어 나온 건 순전히 어이가 없어서였다. 이 인간은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회수와 목숨을 저울질하는 감각 자체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조회수 뽑겠다고 사람 죽일 뻔했으면서 뭘 당당하게 나와, 이 새끼가." 나는 리본을 채찍처럼 휘둘러 그의 검을 튕겨냈고, 그 반동에 그의 손목이 꺾이며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쇠붙이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쨍한 소리가 동굴 안에 길게 울려 퍼졌다. 박도현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는데, 그의 눈에 서서히 두려움이 스치는 게 보였다. 방금까지 자신만만하게 카운트다운을 외치던 그 얼굴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너, 너 랭킹에도 없는 애 아니야? 무슨 배신자가—" 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나는 그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며 팔을 등 뒤로 꺾어 올렸다. 그의 얼굴이 바닥에 짓눌리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팔을 붙잡은 손끝에 그의 맥박이 미친 듯이 뛰는 게 전해져 왔는데, 그게 오히려 나를 더 차갑게 만들었다. "닥치고 들어. 다시 이런 짓 벌이면 그때는 팔이 아니라 목을 꺾어놓을 거니까." 나는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는데, 그 목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다는 게 나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다. 던전 안에서 처음 만난 몬스터를 상대할 때보다 지금 이 순간 훨씬 더 격렬한 살의 같은 감정이 치솟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이거 놔! 놓으라고!" 박도현이 발버둥을 쳤지만 팔을 꺾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나는 그 발버둥을 무심하게 지켜보며 조금 더 힘을 주었고, 그의 신음이 한층 커졌다. "네가 조회수 노리고 이 짓을 벌인 거, 나만 아는 게 아닐걸." 나는 나직하게 덧붙였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 다 목격자야. 그리고 다들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입 다물고 넘어가진 않을 거고." 말을 하면서도 나는 문득 이 상황 자체가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판타지 세계에 떨어져서 몬스터를 잡을 줄 알았지, 사람 상대로 팔을 꺾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박도현이 완전히 힘을 빼고 항복의 자세를 취하는 걸 확인한 뒤에야, 나는 팔을 놓아주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바닥에 엎어진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숨을 고르는 동안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건 두려움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분노의 잔열 같은 것이었다.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고, 목덜미와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나는 폭혼석이 터진 웅덩이 쪽을 다시 확인하며, 다행히 봉인석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던 봉인석의 문양은 여전히 온전했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던 방어 결계 역시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도감이 밀려오는 것과 동시에, 이상하게도 등 뒤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의 시선이 등에 꽂혀 있는 것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오싹함이었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박도현의 어깨 위에서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는 영석을 발견했다. 활성화된 상태로, 방금 전 모든 순간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을 그 수정구를. 존댓말을 벗어던진 내 목소리부터, 팔을 꺾어 올리던 손짓까지, 전부.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는 데 정확히 삼 초가 걸렸다. 그리고 그 삼 초가 지나자마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쭉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