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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토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이상했다. 평소라면 알람을 세 번은 꺼야 일어나는 몸인데, 오늘은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전투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가 곧 그 생각을 지웠다. 크랩맨 상대로 전투라니, 표현이 너무 거창했다. 옷장을 열었다. 후드티와 청바지. 장비랄 게 없었다. '무기라도 하나 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이 몸에 걸칠 무기 따위는 필요 없었다. 손짓 한 번이면 됐다. 문제는 그 손짓이 남들 눈에 너무 튄다는 거였다. 인천행 버스 안에서 창밖을 봤다. 회색 건물들이 스쳐 지나갔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이런 사소한 흔들림도 못 견디는 몸으로, 며칠 전엔 소파를 태워먹었다는 게 좀 웃겼다. 방파제에 도착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후드 안으로 짠내가 훅 들어왔다. 멀리서 윤소라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언니!"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그 배낭에서 로프며 랜턴이며 부적 같은 것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렸다. 걸어오는 게 아니라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왔다. "준비 다 하셨어요?" "네, 뭐..." 사실 준비라고 할 게 없었다. 후드티, 청바지, 그게 전부였다. 윤소라가 내 행색을 위아래로 훑었다. "장비가... 없으시네요? 저는 이 정도면 그래도 준비 좀 했다고 생각했는데." "제 스킬은 좀 특수해서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기려 했다. 윤소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특수하다는 게 무슨 스킬인지 물어봐도 돼요?" "가서 보시면 알아요."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더 묻지 않았다. 착한 애다, 싶었다. 아니면 그냥 예의가 바른 걸지도 모르고. "던전은 저 부표 아래예요. F등급용이라 크지 않아요." 작은 어선을 탔다. 선장은 무뚝뚝했다. 말 한마디 없이 우리를 부표 근처에 내려주고 바로 뱃머리를 돌렸다. 멀어지는 배를 보면서 윤소라가 손을 흔들었지만 선장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저분 원래 저러세요?" "네, 원래 무뚝뚝하세요. 그래도 안전하게 태워다 주시니까."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윤소라가 다시 설명했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던전 입구가 나와요. 숨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던전 안은 산소가 따로 유지되니까." "들어가서 숨 못 쉬면요?" "그럼 저한테 클레임 거세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애매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먼저 뛰어들었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물속은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미지근했다. 숨이 안 쉬어질까 봐 잠깐 긴장했는데, 몸이 알아서 산소를 인식했다. [던전 진입 확인] [던전명: 초심자용 해저 던전 - 산호숲] 산호가 빽빽한 통로가 이어졌다. 색이 화려했다. 붉고 푸른 산호들 사이로 작은 게 모양의 몬스터들이 여기저기 기어다녔다. "저건 크랩맨이에요, 약해요. 화력 좀 써보세요." 손을 들었다. [스킬 발동: 화염구] 작은 불덩이가 물속을 뚫고 날아갔다. 물속에서 불이 저렇게 잘 타는 게 맞나 싶었는데, 크랩맨이 그대로 재가 됐다. [경험치 획득: 12] 숫자가 너무 작았다. 레벨 1에서 500까지 가는데 이 속도면 몇 년이 걸릴지 계산도 안 됐다. 계산기를 두드려봤자 답이 안 나오는 수준이었다. "우와, 한 방이에요?" 윤소라가 눈을 크게 떴다. "보통 F등급 탐사자들은 세 방은 때리는데." 나는 그냥 웃었다. 말할 수 없었다, 이 몸의 진짜 스펙을. 스펙을 말하는 순간 이 관계 자체가 이상해질 게 뻔했다. "화력이 좀 세신가 보네요." "운이 좋았나 봐요." 운은 개뿔. 속으로 그렇게 대꾸했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던전을 더 들어갔다. 통로가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길 반복했다. 크랩맨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나왔다. 숫자를 세보니 다섯이었다. "이럴 땐 하나씩 유인해서 잡아야 하는데..." 윤소라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손을 들었다. [스킬 발동: 사이코키네시스] 주변의 돌덩이를 한꺼번에 띄워 던졌다. 다섯 마리가 동시에 터졌다. 물속에서 폭발한 잔해들이 잠시 떠다니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경험치 획득: 60] [레벨업! 현재 레벨: 2] "헐." 윤소라가 입을 벌렸다. 물속인데 어떻게 저렇게 표정이 다 보이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방금 그거 사이코키네시스예요? 그거 엄청 희귀 스킬인데." "그런가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험치가 몰려서 들어오니까 레벨이 확확 오른다. 이거 반복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F등급 던전 하나로 레벨이 두 배로 뛰었다. 이걸 백 번, 천 번 반복하면. 거기까지 생각이 갔다가 스스로 무서워져서 멈췄다. 너무 빠른 성장을 상상하는 것도 죄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언니, 혹시 헌터 출신이세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거짓말." "진짜예요." 윤소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봤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더 캐묻지는 않았다. 던전 중심부에 다다랐다. 작은 보물상자가 있었다. 윤소라가 무릎을 굽히고 상자 주변을 손으로 훑었다. "함정 확인 중이에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런 것도 하시는구나." "이게 F등급 탐사자의 기본 소양이에요." 뿌듯한 얼굴로 말하고는 상자를 열었다. [아이템 획득: 마나석 (소)] 마나석을 손에 쥐자 몸이 뜨거워졌다. [마나석 흡수 중...] [마나량 +50]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불에 데인 것 같은 느낌은 아니고, 뭔가가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거 흡수하는 스킬도 있으세요?" 윤소라가 놀라서 물었다. "에너지 흡수요." "와, 스킬이 몇 개세요, 대체." 말이 헛나올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보스는 어디 있어요?" "이 던전은 보스 없어요, F등급이라. 그냥 이 정도면 클리어예요." [던전 클리어] [보상 정산 중...] [획득 골드: 8,000] 골드로 정산되는 걸 보고 잠깐 멍해졌다. 생각보다 적었다. 방금 그 레벨업이랑 마나석이랑 비교하면 돈은 정말 부수적인 거였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게 시작이었다. 밖으로 나오기 전에 윤소라가 물었다. "언니, 오늘 재밌으셨어요?" "재밌었냐고 물으면... 좀 이상하긴 한데, 나쁘지 않았어요." "저는 이상하게 재밌었어요. 언니랑 다니니까 든든하고." 든든하다는 말이 좀 웃겼다. 든든한 게 아니라 과했다는 걸 본인이 모르는 것뿐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윤소라가 손가락으로 계산했다. "3대 7이니까, 저 2,400원, 언니 5,600원." "돈 진짜 적네요." "F등급은 원래 그래요. 등급 오르면 배로 뛰어요." "얼마나 오르는데요?" "D등급만 돼도 한 건에 오십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요." 등급이 오르면. 레벨 2에서 벌써 이 정도면, 나중엔 어떻게 될까. D등급, C등급, 그 위는 또 어떻게 되는지. 계산이 자꾸 커졌다. 방파제로 돌아오는 길에 윤소라가 물었다. "언니, 다음 주에도 같이 갈 거죠?" "그래야죠." "진짜요? 저는 언니 바쁘실까 봐 걱정했는데." "안 바빠요." 바쁘긴 개뿔. 백수한테 바쁠 게 뭐가 있나.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을 보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뒤통수가 서늘했다. 누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번엔 유독 선명했다. 돌아봤다. 방파제 저 끝, 검은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다. 창문이 짙게 코팅되어 있어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번호판도 멀어서 잘 안 보였다. 그냥 지나가는 차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왠지, 그 차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차라는 게 사람을 볼 수는 없는데도, 그런 느낌이 자꾸 들었다. [알림: 알 수 없는 관측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시스템 창이 처음 보는 문구를 띄웠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지, 이건. 이런 문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스킬 발동, 경험치 획득, 레벨업. 그런 익숙한 문구들 사이에 낀 저 한 줄은 색깔부터 달랐다. 글씨가 더 진하고, 더 차가운 색이었다. 윤소라는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웃고 있었다. "언니, 왜 그러세요? 뭐 있어요?" "아니요, 아무것도." 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속으로는 방금 뜬 문구를 몇 번이나 되새기고 있었다. 관측 신호.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미 나를 보고 있었다. 세단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방파제를 벗어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려는 순간, 딱 한 번, 헤드라이트가 깜빡였다. 그게 우연인지 신호인지, 나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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