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화염 마녀는 부업 중

2화

초인종은 세 번 더 울렸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숨만 골랐다. 숨을 쉬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숨을 골랐다. 몸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에서, 대체 무슨 습관이 이렇게 끈질기게 남아 있는 건지 나도 몰랐다. 초인종이 네 번째로 울렸다. 집주인이면 곤란하고, 택배면 그냥 곤란하고, 둘 다 아니면 더 곤란했다. 결국 문을 열었다. "택배요." 남자가 상자를 들이밀다가 그대로 굳었다. 눈이 커졌다. 입이 살짝 벌어졌다.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다시 위로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나는, 아니 이 몸은, 그냥 상자를 받았다. "수고하세요." 목소리가 자동으로 나긋하게 나왔다. 내가 낸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 몸의 성대가, 이 몸의 습관대로 낸 목소리였다. 남자는 고개를 세 번 끄덕이고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두 계단씩 뛰어내려가는 걸로 봐서는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나도 당황했으니 서로 비긴 걸로 치자. 문을 닫고 상자를 내려놨다. 숨을 몰아쉬었다, 역시 습관이었다. "뭐야 이거." 혼잣말이 여자 목소리로 나왔다. 적응이 안 됐다. 내 목소리는 원래 좀 걸걸했는데, 지금 나온 소리는 청아하다고 해야 하나, 그냥 낯설다고 해야 하나. 거울을 보고 싶었지만 거울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나는 원래 몸을 찾아 집안을 뒤졌다. 방 두 개짜리 원룸이었다. 살림살이가 별로 없었다. 안방 침대에 내가, 원래의 내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불도 안 덮고 팔다리를 다 벌린 채로 자고 있었다. 가관이었다. 숨은 쉬고 있었다. 죽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일단 다행이었다. 그럼 지금 이건 뭐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원래 몸의 어깨를 찔러봤다. 반응이 없었다. 한 번 더 찔렀다. 이번엔 좀 세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죽은 사람 찔러보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었는데, 아니, 이 몸은 나니까 정확히는 산 사람 찔러보는 기분이 맞았다. 두 몸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잠들어 있고, 하나는 내가 조종하고 있고.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곱씹어봤는데, 애초에 하루 만에 잘 나가던 몸에서 튕겨나와 낯선 여자 몸에 들어앉은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아바타 스킬: 현신] [본체가 수면 상태일 때 발동 가능] [본체와 아바타의 감각은 부분적으로 공유됨] 설명이 뜬 건 고마운데, 왜 지금에서야 뜨는 거냐. 미리 좀 알려주지. 이런 건 발동되기 전에 안내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시스템이란 것들은 대체로 불친절했다. 일단 거실로 나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다. 다리가 너무 길었다. 무게중심이 계속 낯설었다. 내 원래 키가 백육십 몇이었는데, 이 몸은 아무리 봐도 그보다 십 센티는 더 큰 것 같았다. 걸을 때마다 보폭이 자꾸 어긋났다. 소파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혔다. "아야." 생각보다 아팠다, 그것도 여자 목소리로. 정강이를 문지르면서 소파를 흘겨봤다. 소파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누구한테라도 화를 내야 할 것 같았다. 거울 앞에 다시 섰다. 거실 한쪽 벽에 전신거울이 있었다. 거울 속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낯설었다. 당연히 낯설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손을 들어 화염을 만들어보려 했다.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스킬 발동: 화염술] 손끝에서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나는 놀라서 손을 흔들었다. 불이 소파에 튀었다. "어어어!" 다급하게 물을 끌어오려다가 대신 사이코키네시스가 발동했다. 정확히는 뭘 어떻게 하려던 건지 나도 몰랐다. 그냥 손을 뻗으면서 머릿속으로 물, 물, 하고 외쳤을 뿐인데 몸이 알아서 다른 스킬을 골라 썼다. 소파가 붕 떠올랐다. 불이 붙은 채로. "아니 잠깐, 그거 말고!" 허둥지둥 손을 뻗었다. 소파가 바닥에 떨어지며 불이 꺼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아래층에서 뭐라고 항의라도 하러 올까 봐 잠깐 숨을 죽였다. 다행히 조용했다. 타는 냄새가 방을 채웠다. 소파 한쪽 팔걸이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원래 색이 뭐였는지 짐작도 안 될 정도로 시커멨다. 월세방인데. 집주인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스킬 실험하다가 불냈다고 하면 믿어줄까. 안 믿어줄 것 같았다. 차라리 초를 켜다가 실수했다고 하는 게 낫겠다. 아니, 그것도 이상했다. 거실에서 초를 켤 이유가 뭐가 있다고. 머릿속으로 변명을 몇 개 만들어봤는데 다 그럴싸하지 않았다. 한숨을 쉬었다. 이 몸으로 한숨을 쉬니까 그것도 낯설었다. 숨을 내뱉는 소리부터 다르게 들렸다. 일단 정리를 좀 해야 했다. 능력을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이렇게 무턱대고 손을 휘두르다간 방 하나가 아니라 건물 하나를 태울 수도 있었다. [화염술] 화염 계열 마법. 위력은 마나량과 정신력에 비례한다. [사이코키네시스] 주변 물체를 정신력으로 조종. 정밀도는 훈련도에 비례한다. [에너지 흡수] 적의 마나 또는 생명력을 일부 흡수한다. [깃털 보법] 중력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무시하는 보행 스킬. 스킬 설명은 건조했다. 감정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가전제품 사용설명서 읽는 기분이었다. 전원 켤 때 조심하세요, 물기 있는 곳에서 사용하지 마세요, 그런 식으로. 반면 내 감정은 롤러코스터였다. 한 시간 전까지 무직 백수였던 인간이 지금은 화염술을 쓰고 물건을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일단 이 능력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답은 뻔했다. 돈이었다. 돈 말고 뭐가 더 있겠나. 무직 28세, 통장 잔고 십사만 원. 정확히는 십사만 이천삼백 원이었는데 그 삼백 원까지 세는 게 더 처량해서 그냥 십사만 원으로 쳤다. 튜브넷은 망했고, 알바는 짧으면 삼 일마다 잘렸다. 편의점에서는 계산이 느리다고 잘렸고, 물류창고에서는 박스를 두 번 떨어뜨려서 잘렸고, 카페에서는 손님이랑 말싸움을 해서 잘렸다. 말싸움이라고 해도 손님이 먼저 반말을 해서 나도 반말로 받아친 거였는데, 사장은 그런 건 안 들으려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레벨 1의 최종보스급 잠재능력을 가진 몸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던전 탐사자들은 돈을 번다는 걸 알았다. 뉴스에서 몇 번 봤다. 〈던전 탐사자 상위 1%, 연 소득 3억 돌파〉 〈미등록 탐사자 처벌 강화, 벌금 최대 500만 원〉 기사 제목만 스크롤하면서 넘겼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그냥 남의 세상 이야기였다. 지금은 아니었다. 등록이 필요했다. 그럼 서류가 필요하고, 서류엔 이름이 필요하고, 이름엔 신분증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몸은 신분증이 없었다. 존재 자체가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몸이었다.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가족관계증명서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이 몸으로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 수도 없고, 편의점에서 술을 살 수도 없었다.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최종보스급 스킬을 들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좋아.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피곤했다, 이 몸도 내 몸처럼 피곤함을 느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이 감각까지 낯설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그날 밤 나는 두 개의 몸을 오갔다. 정확히 무슨 원리로 오가는지는 몰랐지만, 눈을 감았다가 뜨면 다른 몸에 들어와 있었다. 처음엔 어지러웠다. 세 번째쯤 조금 익숙해졌다. 원래 몸으로 돌아오면 설아린은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마치 게임을 잠깐 끄고 다시 켜는 것처럼. 숨은 쉬고 있는데 딱 그 자세, 그 각도로 멈춰 있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다. 눈을 감기 직전, 어깨가 아팠다. 원래 내 어깨였다. 낮에 설아린의 어깨로 소파에 부딪혔던 그 자리였다. 정강이가 아니라 어깨였는데도, 통증이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세기로 올라왔다. 감각이 진짜로 넘어오고 있었다. 이게 부분적으로 공유된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그럼 반대로도 넘어가는 건가. 내가 이 몸에서 다치면, 저 몸도 다치는 건가. 아니면 저 몸이 다치면 이 몸도 다치는 건가. 방향이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확인해볼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한데, 그러려면 어느 한쪽 몸을 다시 다치게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건 좀, 하고 싶지 않았다. 어깨의 통증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잦아들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치 두 몸이 서로 끊어지지 않는 실 하나로 묶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 실이 어디까지 늘어나는지, 얼마나 팽팽한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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