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수 시대의 목조르기 각성자

2화

쿠구궁. 소리는 뒤에서 났다. 나는 몸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숨을 죽였다. '뭐야.'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나무 그늘로 숨었다. 배낭을 벗지도 못한 채였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였다. 사이렌은 계속 울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이미 산 아래쪽 이야기였다. 여기, 표지판을 넘어 들어온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표지판. 붉은 글씨로 '통제구역, 진입 금지'라고 적혀 있던 낡은 철제 표지판이었다. 삼 년 전부터 저기 서 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삼 년 동안, 이 산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소문만 무성했다. 짐승이 변했다더라, 사람이 사라졌다더라, 정부가 뭔가를 숨긴다더라. 나는 그 소문을 확인하러 온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배낭 안에는 카메라 하나, 물통 하나, 그리고 손전등이 들어 있었다. 무기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무기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나무 틈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안개가 보였다. 붉은 색이었다. 사진이나 뉴스에서 본 것보다 훨씬 짙었다. 마치 누군가 하늘에 붉은 물감을 통째로 쏟아부은 것 같았다. 그 안개가 산길 한복판에서 스멀스멀 퍼지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짐승인가.' 형태가 눈에 익었다. 등이 둥글고, 다리가 짧았다. 코는 뭉툭했다. 돼지였다. 다만 크기가 이상했다. 성인 남자 두 명은 족히 태울 만한 몸통이었다. 눈은 노란빛으로 빛났고, 피부는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두꺼운 각질로 덮여 있었다. 그 각질 사이로 붉은 안개가 스며들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 안개 자체가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저게 마수구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삼 년 동안 소문으로만 들었던 존재가 지금 내 눈앞 삼십 미터 거리에 있었다. 머릿속에서 온갖 정보가 뒤섞였다. 인터넷에 떠돌던 목격담, 흐릿한 사진 몇 장, 정부의 부인 성명. 그 어떤 것도 지금 이 광경만큼 생생하지 않았다. 녀석은 코를 킁킁거리며 안개 속을 어슬렁거렸다. 다행히 이쪽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천천히 뒤로.' 나는 발을 뒤로 뺐다. 낙엽이 바스락거렸다. 그 작은 소리가 산 전체에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돼지 마수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들켰다.' 노란 눈이 이쪽을 향했다. 그 순간 온몸에 오한이 돌았다. 손끝이 저릿하게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뒤도 안 보고 달렸다. 쿵쿵쿵. 뒤에서 무언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예상보다 빨랐다. 저 둔한 몸으로 어떻게 저런 속도가 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마치 트럭이 산길을 밀고 올라오는 소리였다. 나는 배낭을 벗어 던졌다.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 위해서였다. 카메라도, 손전등도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스쳤다. 뺨이 따가웠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숨이 목구멍을 긁는 느낌이었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발밑의 흙이 미끄러웠다. 비가 온 지 얼마 안 됐는지 땅이 질척거렸다. 나무뿌리에 발이 걸렸다. 털썩. 앞으로 넘어졌다. 무릎이 찢어졌다. 통증보다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그 짧은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집에는 뭐라고 알려질까.' '엄마가 뭐라고 할까.'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들이 순서 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뒤를 돌아봤을 때, 마수는 이미 오 미터 앞이었다. '죽는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들었다.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마수의 앞발이 내 옆 흙바닥을 찍었다.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얼굴에도 흙이 튀어서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발톱이 아니라, 뭉툭한 발굽이었는데도 땅이 움푹 꺼졌다. '힘이 미친 듯이 세다.' 땅에 파인 자국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저건 짐승이 아니었다. 짐승의 형태를 한 재앙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근처 나무 뒤로 다시 숨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하, 하아……" 혼자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이대로는 안 돼.' 머릿속이 뜨겁게 돌아갔다.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답이 없었다. 저 속도를 계속 피할 방법이 없었다. 주변을 살폈다. 마침 나무 밑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있었다. 굵고 끝이 뾰족했다. 최소한의 무기라도 있어야 했다. 나는 그걸 집어 들었다. 손바닥이 땀에 젖어 나뭇가지를 쥔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이걸로 뭘 할 수 있겠어.' 솔직히 말해 별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수는 다시 코를 킁킁거리며 이쪽을 찾고 있었다. 시력이 그리 좋지는 않은 것 같았다. 냄새로 찾는 타입인가. '냄새.' 나는 근처 계곡물 소리를 기억해냈다. 오는 길에 작은 개울이 있었다. 물소리가 크게 들리던 곳이었다. 물에 들어가면 냄새를 지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었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개울까지는 최소 오십 미터. 그 거리를 이 속도로 도망칠 수 있을까. 결론은 없었다. 그냥 뛰어야 했다. 머릿속으로 지형을 되짚었다. 나무가 많은 구간, 경사가 급한 구간, 그리고 개울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만약 저 마수의 몸집이 크다면 나무 사이를 빠르게 통과하지는 못할 거였다. 그 틈을 노려야 했다. 나는 나무 뒤에서 몸을 낮추고 방향을 잡았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손에 쥔 나뭇가지가 떨렸다. '셋에 뛴다.' '하나.' '둘.' 그 순간, 마수의 고개가 다시 홱 돌아갔다. 노란 눈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젠장.' 숫자를 셀 시간조차 없었다. 마수가 앞발을 굴렀다. 땅이 진동했다. 발밑의 흙이 미세하게 튀어 오르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대로, 나를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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