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수 시대의 목조르기 각성자

1화

사이렌이 울렸다. 삼 년 전, 그날. 나는 여덟 살이었다. 아니, 다시 세어보니 열넷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그 해를 '침입년'이라고 불렀으니까. 날짜를 세는 방식 자체가 바뀌어버린 해였다. 쾅. 마을 어귀 방앗간이 무너지는 소리였다고 했다. 나는 직접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 밭 뒤편에 숨어서 귀만 막고 있었다. 흙냄새와 지렁이 냄새가 뒤섞인 그 밭두렁의 감촉만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정작 무너지는 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날 손에 쥐고 있던 흙덩이의 축축함은 이상하게 선명하다. "짐승이 아니다."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다. "짐승보다 크고, 짐승보다 이상하다." 그날 밤, 방앗간 집 아저씨가 다리를 잃었다. 그다음 날 아침 군용 트럭이 마을로 들어왔고, 그날 이후로 마을 초입에는 철조망이 세워졌다. 어린 나는 그 철조망을 신기하게만 봤다. 반짝이는 은색 가시가 아침 햇빛에 부서지는 게 예뻤다고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좀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 '게이트'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게 그때였다. 지금도 그 단어는 낯설다. 뉴스에서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뚫린 구멍 이야기를 하고, 마법소녀라는 존재들이 그 구멍에서 뭔가를 상대한다고 말한다. 화면 속 여자들은 색색깔의 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괴물을 벤다. 우리 마을에서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다. 그냥 산 어귀에 붉은 안개가 낀다는 소문, 그리고 가끔 짐승 울음소리 같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뿐이었다. 텔레비전 속 세상과 우리 마을 사이에는 아무 연결점이 없는 것 같았다.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삼 년이 지났다. "도현아."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나는 삽을 들고 있었다. "네." "거기 말고 저쪽."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밭 왼편을 가리켰다. 나는 삽을 옮겼다. 푹. 흙이 파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동작을 반복했다. 감자밭이었다. 할아버지는 무릎이 안 좋아서 이런 일에는 내가 필요했다. 대신 용돈을 준다고 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이마에 땀이 흘렀지만 손으로 훔치지 않고 그냥 삽질을 계속했다. 손을 놓으면 흐름이 끊긴다. 나는 원래 이런 성격이다. 뭐랄까, 좀 말라붙었다고 해야 하나. 감정을 크게 내지도 않고,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친구들은 내가 로봇 같다고 했다. 반박은 안 했다. 그냥 사실이니까.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축구공에 얼굴을 맞아도 "아프네" 한마디로 끝이었고, 시험을 망쳐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걸 두고 "속이 깊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뭔가를 느끼는 회로가 좀 늦게 작동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요." 나는 물었다. "두부." 할아버지가 짧게 답했다. "또요." "싫으면 네가 해." 나는 웃었다. 웃음도 별로 크지 않았다. 그냥 입꼬리 정도. 할아버지는 두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요리가 간단해서 좋아하는 거였다. 나도 안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다. 밭일은 오후 세 시쯤 끝났다. 흙 묻은 장화를 벗고 마당 수돗가에서 손을 씻는데 물이 차가워서 손끝이 얼얼했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두드리며 집으로 먼저 들어갔다. "약초 좀 캐 와."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산 초입에 있는 거 말고, 좀 더 안쪽에 가면 쑥이 많아." "거기까지요?" 나는 손에 남은 물기를 바지에 닦으며 되물었다. "수고비 두 배 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지팡이를 짚으며 마루에 앉았다. 무릎 통증 때문인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가 곧 풀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배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맘때 나는 새 운동화가 필요했고, 두 배의 수고비면 그 운동화의 절반은 채울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산 안쪽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마을에는 규칙이 있었다. 산 초입에서 삼백 미터 이상 들어가지 말 것. 붉은 안개가 보이면 절대 다가가지 말 것.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었다. 방재교육 시간마다 선생님은 똑같은 슬라이드를 넘기며 같은 말을 반복했고, 우리는 그걸 마치 국민체조처럼 외웠다. "삼백 미터, 붉은 안개, 즉시 대피." 하지만 그 규칙은 어디까지나 '규칙'이었고, 나는 삼 년 동안 단 한 번도 마수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방앗간이 무너졌다는 그날의 소리도 내겐 전설처럼 느껴질 뿐,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별생각 없이 배낭을 챙겼다. 물통 하나, 낫 하나, 쑥을 담을 비닐봉지 몇 장. "저녁 전에 올 거예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집을 나섰다. 마당을 나설 때 개가 짧게 짖었다. 평소 같으면 무시했을 텐데, 그날은 왠지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뒤돌아봤지만 개는 그냥 밥그릇 옆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산길은 좁고 습했다. 나뭇잎 사이로 빛이 얇게 새어 들어왔다. 발밑에서 낙엽이 바스락거렸다. 매미 소리가 귀를 채웠다가 이내 멀어지곤 했다. 삼십 분쯤 걸으니 익숙한 초입 표지판이 보였다. '이 지점 이후 마수 출현 가능 구역'.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낡은 표지판이었다. 어릴 때부터 봐온 그 글자는 이제 경고문이라기보다 그냥 산길의 랜드마크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깐 멈춰 섰다. '쑥이 있는 데까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표지판을 넘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온도가 떨어진 것 같았다. 팔에 소름이 살짝 돋았지만 그냥 그늘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새소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어느 순간 완전히 조용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발소리와 내 숨소리만 남았다. 나는 그걸 그냥 '산속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큰 실수였다. 쑥을 찾겠다고 고개를 숙이고 풀숲을 뒤적이는 동안, 나는 내가 표지판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비닐봉지에 쑥이 반쯤 차올랐을 즈음, 손목시계를 봤다. 삼십 분이 더 지나 있었다. '슬슬 돌아가야겠다.' 그 생각을 하며 허리를 펴는 순간이었다. 삐이이이- 갑자기 멀리서 사이렌이 울렸다. 마을 쪽에서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마을 확성기 방송이 산속까지 흐릿하게 들려왔다. "마수 출현. 마수 출현. 주민 여러분은 즉시 대피소로." 목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나무 사이를 타고 흘러들었다. 방송이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더 다급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심장이 빨리 뛰는 걸 느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목덜미로 소름이 쫙 퍼졌다. '설마.' 주변을 둘러봤다. 안개는 없었다. 아직은. 숨을 죽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눈을 굴렸다. 붉은 기운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심장은 계속 뛰었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지만 뒤에서, 표지판 쪽에서 흙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쿠구궁. 나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비닐봉지 속 쑥이 손에서 흘러내리는 것도 몰랐다. 등 뒤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감각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돌아봐야 하나. 아니면 그냥 뛰어야 하나.' 머릿속에서 두 개의 선택지가 부딪쳤지만, 몸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그저 굳어 있었다. 또 한 번, 흙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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