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우두머리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적으로 커진 순간, 나는 검을 내지르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멈춘 게 아니라 멈춰졌다. 근육이 명령을 안 들었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저릿저릿했고, 그 저림이 뇌까지 올라와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러나거라!'
영감이 처음으로 소리쳤다. 평소의 능글맞은 말투가 아니었다. 정말로 다급한, 처음 듣는 종류의 목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던졌고, 방금 서 있던 자리에 우두머리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광장 바닥이 움푹 꺼지고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편 하나가 뺨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다른 하나는 어깨를 강타했는데, 순간적으로 팔 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살았다. 그런데 정확히 몇 초를 번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숨는 게 능사가 아니느니라. 나를 각성시킨 게 네 놈인데.]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사람 목소리라기엔 너무 낮고, 짐승 소리라기엔 너무 명료했다. 그 두 가지가 뒤섞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저러는 거야."
'그 검이 문제다. 봉인된 마검류를 쓰는 순간, 던전 안의 강한 개체가 그 기운에 반응한 것이지. 마치 냄새를 맡은 것처럼.'
"그럼 그 기술 쓰지 말라고 진작 말을 해야지!"
'말했다면 네가 안 죽었을 것 같으냐. 저 우두머리는 원래부터 각성 직전이었다. 네가 안 건드렸어도 언젠가 저리 됐을 것이야.'
"그게 지금 위로가 되는 말이야?"
'위로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영감 말이 위로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따질 시간도 없었다. 코피가 이미 턱 밑까지 흘러 목을 타고 떨어지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이대로 가면 십 분도 못 버틴다는 계산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나왔다. 계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냥 몸이 아는 사실이었다.
렌즈 화면은 이제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댓글이 초당 수백 개씩 올라왔다. 스크롤이 아니라 폭포수 같았다.
"ㅇㅇ: 시청자 수 미쳤다 벌써 삼십만 넘음"
"헌터왕: 야 이거 던전갤 얘기까지 다 캡쳐돼서 퍼지고 있는데??"
"ㅁㅁ: 저 마검류 저거 관리국 금지목록에 있는 거잖아 저거 쓴 애 신상 털린다"
"수련부장: 지금 그딴 얘기할 때가 아니고. 도훈, 대답해봐. 살아있어?"
"별똥별: 저 코피 CG 아니지??"
"ㅁㅁ: 저게 CG면 방송사고고 CG 아니면 응급실행인데 뭘 물어봐"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검을 다시 세웠다. 손끝이 저려서 감각이 거의 없었지만 검을 놓으면 그 자리에서 끝이라는 건 알았다. 그것 하나는 확실했다.
우두머리가 다시 달려왔다. 이번엔 속도가 지금까지 중 최고였다. 나는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다리가 이미 한계였다. 몸이 반응하는 속도가 늦었다. 마치 지시는 내려가는데 도착이 늦는 것 같은, 그런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그 반지를 써라!'
영감이 다급하게 외쳤다. 처음으로 자기 입으로 자기 힘을 쓰라고 말한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졸라도 조건이 어쩌고 하며 뻗대던 영감이었다.
"조건이 있다며!"
'조건은 나중에! 지금은 죽는 것과 사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다!'
"그거 나중에 청구서 날아오는 거 아니지?"
'지금 그걸 물을 때냐!'
맞는 말이었다. 나는 더 생각하지 않고 왼손을 들어올렸다. 반지가 순간적으로 뜨거워졌다. 뜨거운 게 아니라 사실은 얼어붙는 감각이었는데, 그 둘이 구분이 안 갈 만큼 강렬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뭔가가 밀려들어오는 느낌이 겹쳤다. 반지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팔을 타고 올라와 검으로 옮겨갔다. 팔뚝의 핏줄이 도드라지게 부풀어 오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검이 검푸른 빛에서 완전히 다른 색, 새하얀 빛으로 바뀌었다.
댓글창이 그 순간 폭발했다.
"헌터왕: 저 색깔 뭐야 저거 등급 표시 색인데?? 저거 SS급 아니고서야 저 색 안 나오는데"
"ㅇㅇ: 뭐? SS급? 쟤 그런 거 갖고 있었어??"
"수련부장: 잠깐만... 저거 등급 표시가 아니라 그 이상인데. 저건..."
"별똥별: 관리국 등급표에 저 색 있는 사람 본 적 없음 진짜로"
"ㅁㅁ: 야 저거 국가 지정 헌터들도 안 갖고 있는 색인데 뭐냐고"
"헌터왕: 조회수 순삭이다 진짜 지금 접속자 폭주중"
나는 그때까지도 이 반지가 뭔지 정확히 몰랐다. 그냥 영감이 사는 집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던전갤 사람들조차 처음 보는 색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이게 단순히 낡은 반지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실감이 났다. 나는 지금까지 이 물건의 가치를 몰랐고, 그 몰랐던 시간 동안 이걸 그냥 손가락에 끼운 채로 세수하고 밥 먹고 잤다는 걸.
"영감, 이거 얼마짜리야?"
지금 이 상황에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입이 먼저 움직였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이다. 매길 수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사고팔 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값을 아는 순간 그 값을 치르게 된다는 뜻이다.'
"그게 뭔 소리야,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닌데 뭐 그런 소리를 해?"
'지금은 몰라도 된다. 살고 봐야 알 것도 있는 거다.'
우두머리의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새하얗게 빛나는 검을 정면으로 들어올렸다. 손끝의 감각은 이미 사라졌지만, 검을 쥔 손만큼은 이상하게도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호오, 그 빛은—]
우두머리가 처음으로 말을 끝맺지 못했다. 놀랐다는 걸 그 짐승 같은 얼굴로도 알 수 있었다.
쩌엉, 하고 검과 주먹이 부딪히는 소리가 광장 전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생긴 충격파가 광장 벽을 무너뜨리며 흙먼지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발밑의 바닥이 갈라지는 진동이 발바닥부터 척추까지 그대로 전달됐다.
몸이 뒤로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숨이 턱 막혔지만, 그것보다 먼저 든 생각은 살았다는 안도감이었다. 물론 그 안도감은 바로 취소해야 했다. 우두머리가 아직 서 있었으니까.
시야가 하얗게 흐려지는 그 순간, 렌즈 한켠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던전갤이 아니라 처음 보는 계정이었다.
"설화: 저기, 지금 이 장면 저희 채널로 생방 나가고 있는 거 알고 계세요? 시청자가 오십만 넘었는데."
오십만.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그게 코피 때문인지 숫자 때문인지 구분이 안 갔다. 던전갤 삼십만에 놀랐던 게 몇 분 전인데 지금은 그 두 배 가까이 늘어 있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읽으며, 흙먼지 속에서 아직 서 있는 우두머리의 그림자를 마주 봤다. 코피는 이미 멎을 생각이 없었고, 손에 든 검은 여전히 새하얗게 타오르고 있었다.
'설화가 누구냐.'
영감이 물었다. 이런 순간에도 궁금한 건 궁금한 모양이었다.
"몰라. 처음 보는 계정이야."
'모르는 자가 네 얼굴을 오십만 명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내 얼굴은 안 나와. 렌즈 방식이라."
'그럼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우두머리가 흙먼지 사이에서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쓰러진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십만 명이 내 얼굴은 아직 못 봤지만, 이 검과 이 반지는 이미 다 봤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이 두 물건이 뭔지,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것도.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우두머리의 형체가 드러났다. 아까와는 눈빛이 달랐다. 놀란 기색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뭔가 다른 것, 흥미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재밌구나. 그 빛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못한 채로, 그 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