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느낀 건 습도였다. 코끝에 닿는 공기부터 달랐다. D등급 던전은 대개 건조하고 좁다. 사냥할 대상도 예측 가능하고 통로도 단조롭다. 벽을 더듬으면 서걱거리는 흙먼지가 손끝에 묻어나야 정상인데, 여기는 동굴 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통로가 아니라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이어졌다. 발밑에서는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신발이 젖는 게 신경 쓰일 정도로.
"영감, 이거 진짜 D등급 맞아?"
'내가 처음부터 말했지 않느냐.'
"말만 하고 안 도와주면 뭐 하나."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말만 하는 게지.'
말은 저래도 걱정하는 투는 아니었다. 아니, 이 영감은 원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기가 힘들다. 화가 나도 그렇고, 걱정을 해도 그렇고, 똑같이 심심한 어조다. 나는 그게 오히려 더 무섭다고 여러 번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는 검을 꺼내 들었다. 던전갤 사람들이 삼 년 동안 봐준 개조 대검이다. 손잡이에 룬을 새겨서 마력을 흘려보내면 칼날을 늘리거나 굳힐 수 있는데, 이게 바로 '금지된 마법 검술'이라 불리는 이유는 룬 각인 자체가 국가에서 허가하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식 헌터들은 관리국이 지급한 정품 룬 장비를 쓴다. 나는 사설 대장장이한테 뒷돈 주고 불법으로 새긴 걸 쓴다. 걸리면 벌금이 아니라 압류다. 그래서 안 걸리게 조심하는 게 내 생존 전략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냥 도망치는 거고.
첫 번째 미노타우로스는 통로 모퉁이에서 튀어나왔다. 덩치는 D등급 평균보다 확실히 컸다. 어깨 너비만 봐도 사람 두 명은 넉넉히 들어갈 것 같았다. 나는 일단 렌즈로 게시글을 하나 올렸다.
"음성 입력. 얘들아 오늘 던전 좀 이상함. D등급인데 몹 크기가 C등급 이상 같음."
댓글이 빠르게 달렸다.
"ㅇㅇ: 그냥 변종 개체 한 마리 있는 거 아니냐"
"헌터왕: 사설 던전이면 등급 매긴 놈이 대충 했을 수도"
"ㅁㅁ: 도훈아 위험하면 바로 빠져나와라 진짜"
댓글 읽는 사이에도 미노타우로스는 거리를 좁혀왔다. 뿔 끝에서 김이 서리는 게 보였다. 흥분했다는 뜻이다. 나는 웃으면서 미노타우로스 목을 그었다. 마력을 살짝만 흘려서 칼날 길이를 늘렸다. 소리 없이 목이 떨어졌다. 목이 떨어지는데도 놈은 두 걸음쯤 더 걸어오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관성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싶었다.
"괜찮은데? 그냥 한 마리 컸던 거 같음."
그렇게 생각한 게 실수였다. 두 번째 광장으로 들어서자, 미노타우로스가 한 마리가 아니라 스무 마리 넘게 우글거리고 있었다. 좁은 통로를 지나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그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숨을 쉬는 것도 잠깐 잊었다.
"...이거 무리인데."
'스무 마리는 D등급이 아니지.'
"영감, 그건 나도 알아."
나는 계산을 시작했다. 도망치면 오십만 원은 못 받는다. 필구 삼촌한테 항의해도 이미 던전 안이라 소용없다. 사설 던전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다, 들어가고 나면 클라이언트고 뭐고 연락도 안 된다. 그렇다고 스무 마리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다. 다행히 광장 구조상 통로가 좁아서 한 번에 서너 마리씩만 상대할 수 있었다. 계산상 승산이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당 열 초, 세 마리씩 끊어서 처리하면 총 예순 초 안에 다섯 무리를 정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계산은 늘 이렇게 그럴듯했다.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도 실수였다.
렌즈 한 켠에 작은 점 하나가 떠 있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엔 던전 안 특유의 발광 벌레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움직이는 패턴이 이상했다. 벌레라면 불규칙하게 날아다녀야 하는데, 저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마치 누가 조종하는 것처럼.
"저거 뭐지."
'모른다. 신경 쓸 여유가 있느냐.'
영감 말이 맞았다. 미노타우로스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오는데 하늘에 뭐가 떠 있는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놈들의 발굽이 바닥을 때릴 때마다 물웅덩이가 튀어 올랐다. 나는 검에 마력을 더 밀어 넣었다. 칼날이 붉게 물들면서 열기가 올라왔다. 이건 던전갤이 알려준 이단계 룬 각인 기술인데, 쓰면 몬스터 서너 마리는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지만 마력 소모가 크다. 그리고 마력을 이 정도로 방출하면, 던전 밖에서도 감지될 만큼 신호가 커진다. 관리국 탐지망에 걸릴 확률이 확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말 급할 때만 쓴다. 지금이 정말 급한 때인지는 확신이 없었지만, 스무 마리 앞에서 확신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칼을 휘둘렀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로스 세 마리의 목이 동시에 잘려나갔다. 잘린 목에서 검은 피가 튀어 얼굴에 묻었다. 닦을 시간도 없었다. 눈에 튄 피를 소매로 대충 훔치는 사이에 다음 놈이 벌써 코앞이었다.
댓글창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ㅁㅁ: 야 저거 룬 색깔 뭐냐 저거 원래 저런 색 아니었잖아"
"헌터왕: 잠깐만 저거 각성 이단계 아니야??"
"ㅁㅁ: 도훈아 지금 몇 마리 남았냐"
"ㅇㅇ: 근데 저 하늘에 뜬 거 뭐냐 몹인가"
나도 그 점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눈앞의 미노타우로스가 먼저였다. 다섯 마리를 더 정리하고 나서야 숨 돌릴 틈이 생겼다. 검을 짚고 잠깐 허리를 숙였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마력을 두 번이나 이단계까지 끌어올렸으니, 몸이 정상일 리 없었다. 손끝이 저릿하고 시야 가장자리가 흐려졌다. 코끝에서 뭔가 미끈한 게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어 손등으로 닦아보니 코피였다. 삼 년 전엔 이단계 한 번 쓰고도 멀쩡했는데, 요즘은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과부하다. 더 쓰면 위험해.'
"영감이 그런 말 할 때마다 진짜 위험한 거 알아."
'그럼 알아서 조심하거라.'
조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이렇게 코피가 났겠느냐, 라는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남은 미노타우로스는 아직 열 마리 이상이었다. 놈들이 나를 완전히 포위하기 전에 다시 좁은 통로로 물러설까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그 순간 광장 안쪽, 아직 내가 들어가보지 못한 어두운 구역에서 뭔가 크고 무거운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쿵. 쿵.
땅이 미세하게 떨렸다. 미노타우로스들의 발굽 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훨씬 무겁고 훨씬 느린 소리였다. 저런 걸 낼 수 있는 몸집이 이 광장 안에 또 있다는 뜻이었다.
"영감, 저 발소리 뭐야."
영감이 답을 하기 전에, 하늘에 떠 있던 그 작은 점이 소리도 없이 각도를 바꿔서 광장 안쪽, 그 발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나는 그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벌레라면, 몬스터라면 절대 저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각도를 바꿀 때 속도가 일정했고, 방향을 트는 순간에도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게 몬스터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저건 카메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