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차가 완전히 멈춰 서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안전벨트 버클에 손을 걸고 있었다. 몸을 낮추자마자 도로 저편에서 지면을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고, 그 여파로 튄 아스팔트 조각들이 유리창을 뚫고 날아들었다. '설마 여기서.'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게임에서라면 이쯤 로딩 화면이 뜨면서 컷씬이라도 넣어줬을 텐데, 현실은 그런 배려가 없었다. 그녀의 몸을 끌어당겨 좌석 아래로 밀어 넣는 사이 두 번째 충격파가 차체를 통째로 밀어붙였고, 차량이 옆으로 반쯤 뒤집히며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졌다. 뜨거운 열기와 흙먼지가 뒤섞인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고, 코끝에는 탄내와 함께 익숙한 냄새—아니, 익숙하지 않아야 할 냄새가 스쳤다. 균열 특유의, 쇳내와 부패한 과일 냄새가 뒤섞인 그 악취였다.
"뭐야, 이거 등급 판정 오류가 아니라 진짜 폭주잖아!" 하늘이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방금까지도 방송용 멘트를 준비하던 사람이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신선할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대답할 틈도 없이 몸을 굴려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게이트 균열은 이미 도로 한복판까지 확장되어 있었고, 그 가장자리에서 아지랑이처럼 공기가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균열 안쪽, 검은 형체 세 개가 천천히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에서야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하나였으면 재수 없는 날이었을 텐데, 셋이면 그건 그냥 재앙이었다.
"협회 매뉴얼로는 이런 등급의 폭주는 예상 시나리오에 없어요." 하늘이 등에서 도끼를 뽑아 들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방송용 톤이 완전히 걷혀 있었는데,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 방송용 멘트를 유지할 여유조차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검은 형체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기감을 넓게 펼쳤고, 그 순간 몸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던 감각이 경보처럼 울렸다. 심장이 정직하게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건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형체의 윤곽선이 흐릿하게 일렁이는 방식, 관절이 없는데도 자유롭게 접히는 사지, 그 모든 게 아스텔라 붕괴 직전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균열 파생체와 동일한 결이었다. '설마 지구에도 저게 나타난다고.'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10년이나 지났는데, 여기서까지 저놈들을 다시 봐야 하는 건가.
"이 등급 산정, 다시 해야겠는데." 나는 애써 여유로운 척 중얼거리며 하늘을 등 뒤로 밀었다. "뒤로 물러서 있어." 그녀는 반발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균열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걸 보고서야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섰다. 도끼를 쥔 손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저 손이 떨리는 걸 보니 그녀도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건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 균열체가 팔을 휘두르는 순간, 나는 몸을 낮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 팔이 지나간 자리의 아스팔트가 마치 종이처럼 갈라져 나갔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정강이를 긁었다. '맨몸으로 저걸 받으면 즉사겠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근처에 널브러진 철제 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무게감이 형편없는 무기였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놈의 관절처럼 보이는 이음새 사이로 파이프를 찔러 넣는 순간, 손아귀를 타고 올라오는 반발력이 뼈까지 저릿하게 만들었다. 놈이 짓눌린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고, 그 짧은 틈에 나는 두 번째 놈의 위치를 확인하려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두 번째 균열체가 옆에서 튀어나와 하늘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그녀를 밀쳐냈고, 대신 그 공격을 어깨로 받아냈다. 뼈가 어긋나는 듯한 통증이 전신으로 번지며 시야가 순간적으로 하얗게 흔들렸다. 숨이 턱 막히는 감각과 함께, 어깨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팔 전체를 마비시켰다. '아프다는 감각은 여전하군.' 이런 순간에도 실없는 생각이 새어 나오는 걸 보면 아직 정신줄은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늘이 놀란 얼굴로 내 이름을 외쳤는데,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멀게 들렸다. 마치 물속에서 듣는 소리처럼, 모든 게 한 박자 느리게 전달됐다.
세 번째 균열체가 등 뒤로 다가오는 걸 감지하면서도 나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어깨의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10년 만에 다시 이런 존재를 마주했다는 사실이, 그것도 지구라는 이 평화롭고 시시한 세계 한복판에서 마주했다는 사실이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아스텔라에서의 그날 밤, 붕괴하는 성벽과 무너지는 동료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서연, 이번엔 다르다고 했잖아.' 속으로 그렇게 되뇌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르다고 자신했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는데, 세상은 사람 다짐 따위 신경도 안 쓴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기분이었다.
균열체의 그림자가 완전히 내 머리 위를 덮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결국 하늘을 감싸안은 채로 그 마지막 공격을 등으로 받아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녀를 밀어낼 시간도, 자세를 바꿀 여력도 없었으니까. 충격이 전신을 관통하는 순간, 마치 트럭에 치인 듯한 압력이 등에서부터 가슴까지 퍼져 나갔고, 숨이 완전히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야 가장자리로 하늘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어가는 게 보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는 것도, 입술이 떨리는 것도 다 보였는데, 이상하게 그 순간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강도현 씨!" 그녀가 외치는 소리가 뒤늦게 귀에 닿았지만, 그마저도 점점 흐릿해졌다.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직전, 나는 몸 안쪽 깊은 곳에서 뭔가가 천천히 눈을 뜨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 오래전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이 충격을 신호탄처럼 받아들이고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게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