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천하제일 검선의 데릴사위

5화

관직 박탈 소식이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이도윤은 별채 앞뜰을 서성이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어 곧 비가 내릴 듯했는데, 마당 한켠에 심어진 매화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들이 파르르 떨었으니, 그 모습이 마치 그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그는 손끝으로 문서 하나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접어 넣고, 또 꺼내 펼쳐보기를 반복했는데, 관직을 잃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그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공자님, 밖에서 너무 서성이지 마세요. 감기 드시겠어요.” 시비 하나가 다가와 걱정스레 말을 건넸으나, 이도윤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뒤엉켜 있었으니, 관원직을 잃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그를 괴롭히는 것은 대체 누가, 왜 자신을 죽이려 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심장을 반 치 벗어난 자리에 남은 흉터가 옷깃 사이로 언뜻 드러날 때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 자리를 짚었다. 그때 작약이 다급히 뛰어와 소식을 전했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급하게 뛰어온 탓에 흙바람을 일으켰고, 숨이 채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외쳤다. “공자님! 관아에서 다시 사람이 왔어요, 그런데 이번엔… 복직 통지서를 들고요!” 이도윤은 처음에는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 눈을 크게 떴다. 관아에서 사람이 왔다는 말에 또 무슨 흉한 소식인가 하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복직이라는 단어가 뒤늦게 그의 귓가에 박히자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복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얼른 받아 보세요!” 이도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문서를 받아 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는데, 봉투를 열자 안에서 나온 문서에는 붉은 관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 안에는 그가 관원직을 유지할 뿐 아니라, 특별 자문관이라는 새로운 명목의 직위까지 부여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몇 줄을 눈으로 훑어 내려가는 동안 그의 표정은 놀람에서 의아함으로, 다시 짙은 의심으로 바뀌어 갔으니, 이런 파격적인 조치가 아무런 배경 없이 이루어질 리 없다는 것을 그는 관원 생활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는 문서를 접어 소매 안에 넣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곧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으니, 그 이름은 다름 아닌 천설화였다. 그날 저녁, 천설화를 찾아간 이도윤은 조심스레 물었다.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감돌았고, 창밖으로는 초저녁 별빛이 하나둘 돋아나고 있었다. 천설화는 서탁 앞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가 내려놓는 중이었는데, 그 손짓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설화 님이… 손을 쓰신 겁니까.” 천설화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목소리는 낮고 절제되어 있었다. “관아의 대감 하나가 계월문에 진 빚이 있었을 뿐이오.” “빚이라니, 그것이 어찌 이런 큰 일을…” “대감이라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흔히 목숨보다 명예를 두려워하지. 그 대감의 목숨을 계월문이 구해준 적이 있소. 그가 갚아야 할 것은 그 값어치만큼이오.” 그 말투는 담담했으나, 이도윤은 그 한마디 뒤에 숨은 것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계월문이라는 이름이 관아의 대감마저 움직일 수 있는 무게를 지녔다면, 그것은 단순한 무림 문파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으나 차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으니, 머릿속은 온통 계월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재는 데 쏠려 있었다. 훗날 시아가 지나가듯 흘린 말에 따르면, 천설화는 빙청록과 용봉록 모두에서 1위에 오른 이로, 그녀의 한마디는 관부의 문서보다 더 무거운 값을 지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도윤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큰 그늘 아래 서 있는지를 깨달았으니, 그 그늘은 따뜻했으나 동시에 아득히 깊었다. 그 무렵, 이도윤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한 노인이 낡은 지도를 펼쳐놓고 있었다. 흑사방을 지배하는 장용헌이었다. 방 안은 어두웠고 오직 촛불 하나만이 지도 위를 흔들리며 비추었는데, 노인의 주름진 손가락이 지도 위의 한 지점을 짚었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그는 20년 전 강주용왕이라 불리던 자로, 이지운이 실패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노여워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흥미로운 눈빛을 띠었다. “심장을 반 치 벗어나 살아남았다고?” 그는 낮게 웃으며 종이 위에 붓을 놀렸다. “그런 운을 지닌 자가, 아무 힘도 없이 그저 관원으로 늙어 죽을 리는 없지.” 곁에 서 있던 수하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방주님, 그럼 다시 손을 쓸까요?” “아니.” 장용헌은 붓끝을 종이에서 떼며 고개를 저었다. “서두를 것 없다. 씨앗은 이미 심어졌으니, 물을 주는 것은 시간이 할 일이지.” 그의 시선은 이미 이도윤이라는 이름 위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계월문의 대전에서는 정식으로 이도윤을 문의 객원이자 정혼자로 받아들이는 예식이 조용히 치러졌다. 대전 안에는 향내가 자욱했고, 붉은 비단이 기둥마다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화려함 속에서도 예식은 어디까지나 조용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작약과 홍하, 시아와 영영이 나란히 늘어서 축하의 말을 건넸고, 그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기쁨이 배어 있었다. “공자님, 정말 잘 어울리세요.” “오라버니는 이제 정말 우리 사람이네요.” 이도윤은 낯선 예복을 걸친 채 천설화의 곁에 섰다. 예복의 소매가 유난히 낯설게 느껴져 그는 몇 번이나 어색하게 손목을 움직였는데, 천설화는 그 모습을 흘긋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을 뿐 말은 얹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물음들이 남아 있었으니, 대체 자신이 왜 암살의 표적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배후에 있다는 장용헌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혼기까지는 아직 3년이 남아 있었다. 대전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려 낮게 울렸는데, 그 소리가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무언가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이도윤의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멀리서 까마귀 한 마리가 낮게 울며 지나갔고, 그 울음소리는 대전의 풍경 소리와 뒤섞여 묘한 불안을 남겼다. 이도윤은 그 불안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천설화의 옆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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