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정신을 잃은 이도윤의 몸이 어느 낡은 초옥의 나무 침상 위에 눕혀졌을 때, 창밖으로는 이미 새벽빛이 희끄무레하게 번지고 있었다. 산등성이 너머로 어렴풋이 밝아오는 빛줄기가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그의 핏기 잃은 얼굴 위에 얇게 얹혔는데,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를 시험하는 손길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를 이곳까지 옮겨온 이는 흰 장옷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여인이었는데, 그녀의 손끝이 상처 부위를 짚어나가는 손길이 마치 수십 년을 이 일에만 매달려온 의원의 것처럼 정확하고 침착하여, 그저 지나가던 나그네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녀는 이도윤의 옷깃을 헤치고 상처를 살피며, 손가락 두 개로 맥문을 짚었다가 다시 옆구리의 자상을 눌러보았는데, 그 동작 하나하나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녀는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심장을 반 치 벗어났으니, 하늘이 아직 이 사람을 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고는 옆에 놓인 목함에서 은침을 꺼내어 이도윤의 혈도 몇 곳을 짚어 나갔는데, 침이 살갗을 뚫고 들어갈 때마다 그의 몸이 미미하게 떨렸으나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무명천으로 닦아내며, 창밖을 흘긋 바라보았다. 산새 몇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울음을 흩뜨리고 있었는데, 그 소리마저도 이 초옥의 정적을 깨뜨리기엔 너무나 작았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천설화였으니, 계월문(桂月門)의 수장이자 세간에서는 검선(劍仙)이라 불리는 천하고수록 1위의 절대고수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이도윤에게 알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18년 전 그녀의 부친과 이도윤의 부친 이학주 사이에 맺어진 혼약이 있었으나,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고,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이 낯선 청년이 살아남는가 하는 문제뿐이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이도윤의 손목을 다시 짚으며 맥의 흐름을 읽어냈는데, 그 흐름이 아직은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미간의 주름이 조금 풀렸다.
이도윤이 희미하게 눈을 떴을 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과 낯선 여인의 옆모습이었다. 천장의 서까래는 오래되어 검게 그을려 있었고, 그 사이로 새벽빛이 실오라기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겨우 움직여 물었다.
“…누구십니까.”
“말할 필요 없는 사람이오.” 그녀는 그의 이불을 다시 여며주며 무심하게 대답했는데, 그 목소리에는 어떤 온기도 냉기도 뒤섞이지 않은 절제가 배어 있었다. 이도윤은 그 말투에서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으니, 오히려 낯익은 안온함을 느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무언가를 물으려 했으나 목구멍이 갈라진 듯 아파와 말을 잇지 못했고, 그녀는 그런 그의 입가에 물그릇을 가져다 대어주었을 뿐 더 이상의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나절이 흘렀다. 초옥 밖으로는 산새 우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고요했는데,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다급한 발소리와 문짝을 걷어차는 소리였다.
쾅!
“도윤아!”
문을 부수듯 뛰어든 사내는 강태호였다. 그는 이도윤과 함께 관아에서 일하던 절친한 벗이자, 후천 8층에 이른 무력을 지닌 포졸이었는데, 밤새 벗의 행방을 찾아 산길을 헤맨 듯 옷자락이 흙과 나뭇가지에 헤져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그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침상에 누운 이도윤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려 했으나, 그 곁에 낯선 여인이 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녀를 적으로 오인하고 허리에서 도를 뽑아 들었다.
“당장 물러서라! 도윤이한테서 손 떼!”
그의 목소리는 방 안을 쩌렁쩌렁 울렸는데, 그만큼 그의 손도 도의 손잡이를 움켜쥔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벗을 지키겠다는 마음과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천설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을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그녀의 곁을 지키던 시녀 홍하가 조용히 앞으로 나서며 강태호의 도를 맨손으로 받아냈다. 홍하는 계월문에서도 손꼽히는 무재를 지닌 여인으로, 평소에는 그림자처럼 천설화의 뒤를 따를 뿐이었으나 위급한 순간에는 주저 없이 나서는 자였다. 강태호는 그 순간 자신의 도가 마치 솜뭉치에 부딪힌 듯 힘없이 튕겨 나가는 것을 느끼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게 무슨…….”
그는 손목에 저릿한 충격을 느끼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는데, 그럼에도 도를 놓지 않고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벗을 지키겠다는 의지만큼은 꺾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도를 고쳐 잡고 달려들었으나, 홍하의 손끝이 그의 어깨와 팔목을 차례로 짚어가자 강태호의 몸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휘익, 쿵!
압도적인 격차였다. 강태호는 그 짧은 순간 홍하의 손이 몇 번이나 움직였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는데, 다만 자신의 무릎이 차가운 흙바닥에 닿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창밖의 새벽빛이 붉게 번져가는 가운데, 이도윤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통증에 다시 쓰러지며 벗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태호야…….”
그의 목소리는 힘없이 갈라졌으나, 그 속에는 벗을 향한 다급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천설화는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홍하에게 눈짓으로 물러서라는 신호를 보냈고, 홍하는 곧바로 손을 거두며 강태호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강태호는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두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는데, 그 시선에는 경계와 의문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다급한 부름은, 곧 뒤이어 들려올 훨씬 더 큰 위협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