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면을 걷는 사냥꾼

3화

골목의 기척은 곧 사라졌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설아의 날개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뭐였을까." 내가 물었다. "몰라. 근데 아귀는 아니었어." "그럼 뭔데." "……사람 같기도 하고." 설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나는 뒷목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돌아보면 진짜가 되니까. 그런 미신 같은 걸 믿는 나이는 지났는데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수야." "왜." "뒤에 안 봐?" "안 봐." "쫄았어?" "……안 쫄았어." 거짓말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설아는 그런 나를 보고 픽 웃었는데, 그 웃음소리가 평소보다 힘이 없었다. 그녀도 무서웠던 거다. 관리국 지부는 시내 한복판, 평범한 빌딩 지하 3층에 있었다. 간판도 없고, 엘리베이터에 버튼도 없다. 대신 지문 인식기가 벽에 박혀 있을 뿐이다. [서울 이계관리국 제3지부] 처음 왔을 때는 이게 무슨 은행 지점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은행보다 더 무서운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형광등 불빛이 눈부셨다. 창구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들 나처럼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정장 입은 사람, 트레이닝복 입은 사람, 교복 입은 학생까지 다양했다. 교복 입은 학생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저 나이에 벌써 조력자를 만났다고? 나는 서른 넘어서야 겨우 얻었는데. 세상 참 불공평하다. "강수야, 저기 봐." 설아가 어깨 위에서 속삭였다. "뭘." "저 학생, 조력자가 문어야." "문어?" "응. 진짜 문어. 다리가 여덟 개야." "……그건 좀 부럽다." "뭐가 부러워, 저거 밥값도 많이 들 것 같은데." 설아 말이 맞긴 했다. 문어면 하루에 몇 끼를 먹여야 할까.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줄을 섰다. "등록은 처음이시죠?" 창구 직원이 물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명찰이 붙어 있었다, '김주임'. "네." "신분증이랑, 계약자 인증 부탁드립니다." 나는 손등을 내밀었다. 문양이 파랗게 빛났다. [계약 인증 확인. 조력자: 설아 / 등급: 미상] "조력자 등급이 미상이네요." 김주임이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문젠가요?" "보통 등록할 때 조력자 등급도 같이 매겨지는데, 이건 시스템에 잡히는 게 없어서." 설아가 내 어깨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나한테만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규정상 안 되긴 하는데……" 김주임이 모니터를 몇 번 두드렸다. 뭔가 시스템을 뒤지는 것 같았는데, 표정이 점점 더 애매해졌다. "이상하네. 정말 아무것도 안 잡혀요." "그게 나쁜 건가요?" "나쁘다기보다는……" 김주임이 잠시 망설이더니 도장을 쾅 찍었다. "일단 임시 등록으로 처리할게요. 나중에 정밀 검사받으셔야 해요." "정밀 검사요?" "조력자 정체 확인 절차요. 형식적인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형식적인 거라는 말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공무원이 형식적이라고 말하는 건 대부분 형식적이지 않았다. 경험상 그랬다. 설아를 힐끔 봤다.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날개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날개는 거짓말을 못 한다. 불안하면 떨리고, 좋으면 팔랑거린다. 지금은 후자가 아니었다. 등록을 마치고 옆 창구로 이동했다. DP 환금 창구였다. 이 순간만큼은 좀 신났다. 그동안 고생한 게 숫자로 바뀌는 순간이니까. "총 누적 DP가 얼마나 되시죠?" "어, 잠시만요." 손등의 문양을 다시 확인했다. [누적 DP: 213] "213이요."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이십일만 삼천 원입니다." 생각보다 짭짤했다. 지난 며칠간 조금씩 모은 게 이 정도라니. 아귀 몇 마리 잡고, 골목에서 이상한 것들 상대하고, 밤잠 설쳐가며 번 돈이 이 정도라니.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시급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이게 어디냐. 편의점 알바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계좌로 입금받고 나오는데, 설아가 슬쩍 물었다. "기분 좋아?" "당연하지." "근데 아까 그 정밀 검사, 신경 안 쓰여?" "뭐, 형식적인 거라며." "그 말을 믿어?" "……안 믿지." 솔직히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검사받으라면 받아야지, 별수 있나. "검사에서 뭐가 문제 되면 어떡해?" "뭐가 문제 되는데." "몰라, 나도 내가 뭔지 잘 모르니까."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설아 자신도 모른다는 게, 나는 더 신경 쓰였다. 계약자인 나조차도 그녀의 정체를 정확히 모른다. 그냥 어느 날 손등에 문양이 생겼고, 그녀가 나타났고, 그렇게 시작된 관계였다. 빌딩 밖으로 나오자 저녁 바람이 차가웠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퇴근길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다들 각자의 저녁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만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다시 그 기척이 느껴졌다. 골목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시선. 이번엔 방향이 명확했다. 건물 옥상 쪽. 고개를 들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누군가가 난간에 걸터앉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리가 있어서 얼굴은 잘 안 보였지만, 자세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람에 코트 자락이 펄럭였다. 그 모습이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저거 봤어?" 내가 낮게 물었다. "어, 봤어." 설아의 목소리가 굳어 있었다. "저 사람, 관리국 사람이야." "어떻게 알아?" "기운이 그래. 그리고 저 코트, 고위 간부들만 입는 거야." "고위 간부가 왜 우릴 지켜봐?" 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날개를 더 바짝 웅크렸다. 나는 다시 옥상을 올려다봤다. 저 사람이 계속 이쪽을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대신 옥상 위의 인물이 훌쩍 뛰어내렸다. 십 층 가까운 높이에서. 나는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미쳤나!"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했다. 무릎 한 번 굽히지 않고, 소리도 없이. 아스팔트 위에 착지음 하나 없이 내려선 그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게 사람이 할 수 있는 동작인가. 아무리 이계관리국이라지만. 가까이서 보니 삼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날카로운 눈매, 정갈하게 넘긴 머리, 그리고 손에 들린 지팡이 하나. 지팡이라기보다는 무기에 가까워 보였다. 끝이 묘하게 날카로웠다. 옷차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코트 안쪽에 살짝 비치는 문양들, 손목에 채워진 팔찌 같은 것.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설아가 왜 그렇게 긴장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박강수 씨."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낮고 차분했다. 그런데 그 차분함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누구시죠." "이계관리국 특별관리부, 한도현이라고 합니다." 특별관리부. 일반 지부와는 격이 다른 부서라는 건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다. 아까 김주임이 말하던 정밀 검사, 그게 여기서 나오는 건가 싶었다. "그쪽 조력자한테 관심이 좀 있어서요." 한도현의 시선이 내 어깨 위로 향했다. 설아가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 시선이 스캔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아를 위아래로, 마치 뭔가를 확인하듯 훑어보는 시선. "관심이라뇨." 내가 물었다. "등록할 때 조력자 등급이 미상으로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왜요." "미상은 흔치 않거든요." 한도현이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툭, 두드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보통은 등급이 낮거나 아예 안 잡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미상은 다릅니다. 시스템이 판별을 거부했다는 뜻이거든요." "거부요?"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겁니다. 이건, 아주 드문 경우죠." 그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 눈빛에 호기심과 경계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러 오신 거예요?" "네." "……지금요?" "지금이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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