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스물아홉 해를 살면서 딱 하나의 재능만 타고났다.
한국풍 판타지에 미치는 재능.
무협지도 아니고 정통 사극도 아닌, 딱 그 중간 어디쯤 — 도포 자락 휘날리는 검객과 저잣거리를 어슬렁대는 구미호와 부적을 씹어먹는 무당이 한데 뒤섞인 세계. 그 세계 이야기만 나오면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정말이다. 남들은 아이돌 무대에 환호할 때 나는 옛날 사극 재방송에서 검이 칼집을 스치는 소리 하나에 소름이 돋았다. 부채를 촥 펴는 소리, 도포 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 그런 것들이 나한테는 최고의 ASMR이었다.
친구들은 나더러 이상하다고 했다. 남자친구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소개팅에 나가서 "그쪽은 전생에 무당이었을 것 같다"는 말을 진심으로 칭찬이라고 던지는 인간을 누가 만나겠는가. 나조차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안다. 아는데 고쳐지지가 않는다.
문제는 이게 밥이 안 된다는 거였다.
나는 웹소설을 썼다. 제목은 '단천검야'. 무려 삼 년째 연재 중이었다. 조회수는? 화당 열둘. 그중 절반은 나였다. 스스로 새로고침을 몇 번 눌렀는지 세다가 그만뒀다. 세어봤자 뭐 하나, 슬퍼지기만 하는데.
댓글은 딱 하나 달렸었다.
"이거 누가 봄?"
나는 그 댓글에 답을 달지 않았다. 달 수가 없었다. 나도 궁금했으니까. 나 역시 그 답을 구하는 구도자 중 하나였다.
..저요. 제가 봐요. 매일매일 백 번씩 봐요.
이렇게 대댓글을 달았다가 지운 적도 있다. 자존심이라는 게 그럴 때만 살아나서 사람을 참 피곤하게 한다.
편의점 알바는 지난주에 잘렸다. 사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손님 응대하는데 자꾸 무협 대사를 치시면..."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손님이 삼각김밥을 집어 들 때 "그 손놀림, 예사롭지 않구려" 한마디 한 것뿐인데. 담배를 계산하는 손님한테는 "그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소" 정도만 했을 뿐이고. 사장님은 그걸 못 견뎌 했다. 어린 사람이 이해심이 없다.
솔직히 나는 억울했다. 손님 중 몇몇은 오히려 재밌어했단 말이다. 웃어주기까지 한 손님도 있었다. 근데 그 웃음이 문제였나 보다. 사장님 말로는 "손님이 당황해서 웃는 거"라나. 그럼 웃는 거랑 당황해서 웃는 거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따지고 싶었는데, 그 말을 하면 잘리는 이유가 하나 더 늘 것 같아서 참았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내 방문을 열 때마다 한숨부터 쉬었다.
"서른 다 돼서 저게 뭐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 줄 알아요.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럼 또 한숨이 두 배로 늘어날 테니까. 엄마의 한숨은 복리로 늘어난다. 원금은 작아도 이자가 무섭다.
..엄마, 이건 재능이에요. 남들 다 못 보는 걸 보는 재능이라고요.
이 말도 물론 하지 않았다. 했다면 아마 다음 대사는 "그 재능으로 밥 벌어와" 였을 테니까.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알바 잘리고 이력서 쓰다가,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 하나로 저녁을 때우고, 지하철을 탔다. 집에 가는 길이었다. 딱히 갈 곳도 없으면서 굳이 나갔다가 들어오는 삶. 그게 요즘 내 일상의 전부였다.
이력서에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취미: 웹소설 집필' 이라고 써도 될까.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지웠다. 지우고 나니 자기소개서 칸이 텅텅 비었다. 내 인생도 그런 것 같았다. 뭔가를 채우려고 하면 결국 지워야 하는 인생.
승강장은 한산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까.
형광등 몇 개가 깜빡거렸다. 저 멀리서 방송이 흘러나왔는데 뭐라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웹소설 조회수를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열둘. 새로고침. 열둘. 새로고침. 아직도 열둘.
..혹시 열셋 되지 않을까.
그런 실낱같은 기대를 하며 다시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그대로였다. 나는 그 순간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했다. 스물아홉 살이나 먹고도 조회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이 처지가.
그때였다.
발밑에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낡은 팔찌였다.
색이 바랜 흑단목에 은실이 감긴, 딱 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었다. 누가 흘렸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승강장 저 끝에 취객 하나가 벽에 기대 졸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몸을 숙여 팔찌를 자세히 살폈다. 흑단목이라기엔 나무의 결이 너무 뚜렷했고, 은실이라기엔 실이 너무 은은하게 빛났다. 표면에 아주 미세한 문양 같은 게 새겨져 있는 것도 같았는데, 조명이 어두워서 확신할 순 없었다.
주웠다.
왜 주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냥 한국풍 판타지 소설에서 늘 이런 식으로 사건이 시작되니까. 낡은 물건을 줍고, 그 물건이 알고 보니 저주받은 유물이고. 나는 그 클리셰를 사랑했다. 사랑하다 못해 동경했다.
'단천검야'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쓴 적이 있었다. 주인공이 폐허가 된 사당에서 팔찌 하나를 줍는 장면. 그 화의 조회수도 열둘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내가 쓴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온 기분이었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손끝에 팔찌가 닿는 순간이었다.
뜨윽-
뭔가 이상했다. 팔찌 표면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싶어서 다시 만졌다.
뜨으윽-
또였다. 이번엔 확실했다. 손끝에서 심장까지 이어지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게 무슨 심리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무섭다기보다는... 설렜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다. 뭔가 커다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예감.
손을 떼봤다. 진동이 멈췄다.
다시 잡았다.
뜨으윽-
세 번째였다. 이쯤 되니 확신이 들었다. 이건 그냥 낡은 팔찌가 아니다. 뭔가가 있다. 소설을 삼 년이나 쓴 사람의 직감이었다. 근거는 없지만 확신은 있는, 그런 이상한 종류의 감각.
팔찌를 손목에 걸어봤다.
크기가 딱 맞았다.
이런 우연이 있나. 딱 내 손목 사이즈였다. 소설이었다면 여기서 시스템 창이 뜨거나 스탯 창이 열려야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흑단목 팔찌 하나가 손목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실망했다. 조금.
..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어디 있어.
그런데 뭔가 아쉬웠다. 아니, 아쉬웠다기보다는 뭔가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팔찌를 손목에 걸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걸 되찾은 것 같은, 그런 이상한 소속감.
전동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스마트폰을 다시 봤다. 새로고침. 조회수 열둘. 여전히 열둘.
한숨이 나왔다.
..언젠가는 알아줄 사람이 있겠지.
그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전동차의 헤드라이트가 터널 저편에서 빛나고 있었다. 두 개의 하얀 빛이 점점 커지면서 다가오는 걸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손목에 걸린 팔찌가 그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유독 눈에 밟혔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 팔찌가, 이 낡아빠진 흑단목 팔찌 하나가 내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거라는 걸.
승강장 안내음이 울렸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취객은 여전히 저 끝에서 졸고 있었다. 승강장에는 나와 그 취객뿐이었다. 스크린도어 너머로 전동차의 굉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바람이 훅 밀려왔다.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손목의 팔찌가 다시 한번, 뜨윽- 하고 진동했다.
..뭐지. 왜 자꾸 이래.
그런 생각을 하며 팔찌를 내려다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내 등을 세게 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