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이 따라잡기도 전에 다리가 땅을 박찼다.
콰직!
바닥이 발자국 모양으로 움푹 파였다.
김도훈은 넘어진 탐험자와 몬스터 사이로 몸을 던졌다.
탐험자는 방독면이 반쯤 벗겨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다리 하나는 이미 감각을 잃은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왜 이렇게 됐지?'
의식은 여전히 뒤늦게 따라오고 있었다.
몬스터의 앞발이 코앞까지 떨어졌다.
비늘로 뒤덮인 앞발은 사람 몸통보다 굵었다.
콰앙!
엄청난 충격음이 통로를 울렸다.
하지만 김도훈은 쓰러지지 않았다.
양손으로 그 발을 그대로 받아낸 것이었다.
바닥에 발이 파고들며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저... 저게 지금 뭘 한 거야?"
누군가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떨림이 섞여 있었다.
김도훈 본인도 눈을 크게 떴다.
'막았다. 내가, 저걸?'
손끝이 떨렸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손바닥에 남은 압력이 아직도 생생했다.
1년 전이었다면 이 무게에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몬스터가 다시 포효했다.
"크아아아!"
두 번째 앞발이 날아들었다.
김도훈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낮췄다.
그리고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몬스터의 앞발이 궤도를 잃고 튕겨나갔다.
비늘 몇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맞았다. 진짜로 맞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1년간 쌓아온 것이 지금 눈앞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산에서 바위를 지고 올랐던 새벽들.
트럭을 밀며 무릎이 꺾이던 날들.
그 모든 순간이 지금 이 한 방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뒤쪽에서 넘어졌던 탐험자가 기어서 도망쳤다.
누군가 그를 부축해 통로 밖으로 끌어냈다.
김도훈은 그 틈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몬스터 네 마리가 통로를 가득 메운 채 몰려오고 있었다.
좁은 공간 안에서 그것들의 몸집은 벽을 긁으며 움직였다.
'혼자서 넷을 상대한다고?'
순간 망설임이 스쳤다.
그러나.
몸은 이미 다음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발끝이 바닥을 딛고, 무릎이 낮게 굽혀졌다.
그때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터졌다.
"현장 인원 전원 즉시 대피! 반복한다, 전원 즉시 대피!"
헌터 몇이 부상자를 끌고 뒤로 물러났다.
그중 하나가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당신도 빨리 나와요! 저건 무리야!"
김도훈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두 번째 몬스터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입에서 끈적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치이익-
바닥에 닿은 순간 돌이 녹아내렸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저건 피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못 맞는 거잖아.'
김도훈은 옆으로 몸을 굴렸다.
콰드득!
등 뒤에서 산이 흘러내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돌아볼 틈도 없었다.
첫 번째 몬스터의 앞발이 다시 떨어졌다.
김도훈은 두 팔을 교차해 막았다.
쿵!
이번엔 발이 뒤로 밀렸다.
신발 밑창이 바닥을 긁으며 자국을 남겼다.
힘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무게 자체가 감당 안 되는 수준이었다.
'버틸 수는 있어도 이대로면 끝이 안 나.'
그 순간이었다.
손끝에서 낯선 감각이 퍼졌다.
뜨거운 게 아니라 오히려 서늘한 느낌이었다.
피부 아래로 무언가 흐르는 듯한 기묘한 감촉이었다.
눈앞에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미분류 스킬 - 발동 조건 충족]
[???]
김도훈의 눈이 커졌다.
'뭐지, 이건.'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다시 움직였다.
주먹을 뻗자 이번엔 궤도가 달랐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부터 달라졌다.
퍼어엉!
첫 번째 몬스터가 그대로 뒤로 튕겨나가 벽에 처박혔다.
비늘이 갈라지고 검붉은 피가 튀었다.
벽에 금이 가며 돌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저, 저게 대체..."
대피하던 헌터들이 멈춰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중 한 명이 무전기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본부! 현장에 단독으로 몬스터를 저지하는 탐험자가 있습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뭐라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지직거리는 잡음에 묻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김도훈은 그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남은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셋을 동시에?'
그러나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자세가 낮아졌다.
그 자세, 1년간 수천 번을 반복했던 것이었다.
산에서 무너지는 바위를 받아내던 자세.
트럭을 밀며 만들었던 하체.
새벽마다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면서도 다시 일어났던 그 자세.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처럼,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콰지직!
두 번째 몬스터의 앞발을 걷어차 궤도를 틀었다.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세 번째 몬스터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퍼억!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몬스터가 비명 같은 울음을 토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네 번째 몬스터가 입을 벌려 산성 침을 뿜으려는 순간.
김도훈은 이미 그 앞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주먹이 목덜미에 꽂혔다.
콰앙!
네 번째 몬스터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먼지가 가라앉는 데 몇 초가 걸렸다.
통로 안에는 무너진 몬스터 네 마리와, 김도훈 혼자만 서 있었다.
숨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끝난 건가...'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손등에 묻은 검붉은 피를 옷깃에 대충 닦아냈다.
그때, 벽 저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이봐요! 괜찮아요?"
던전관리청 조끼를 입은 여자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가슴에 붙은 명찰에 '박서연'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도 무전기가 들려 있었고,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김도훈이 짧게 대답했다.
박서연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쓰러진 몬스터 네 마리와 눈앞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렸다.
"방금, 그거... 혼자서 넷을 다...?"
말끝이 흐려졌다.
그녀는 무언가 더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김도훈은 대답 대신 상태창을 흘낏 확인했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스탯 창의 숫자들이 익숙한 자리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하지만 방금 발동한 그 힘, [???] 표시된 스킬만이 여전히 정체를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뭐지?'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통로 저편에서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빛이 붉게 점멸하며 벽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박서연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