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만년 백수 히든랭커

2화

서울 던전관리청 임시 통제소 앞, 새벽 공기가 서늘했다. 김도훈은 줄 맨 끝에 서 있었다. 등록 탐험자 명찰을 목에 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진짜 여기가 뚫린다고?" "협회에서 발표했잖아. 오늘 열린다고." "근데 왜 이렇게 갑자기래? 조사도 제대로 안 됐다던데." "몰라, 나도 어제 문자 받고 왔어." 주변에서 오가는 말소리가 새벽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김도훈은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손끝을 말아쥐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혀 있었다. 1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새벽 다섯 시,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었다. 팔굽혀펴기 삼백 개, 스쿼트 오백 개, 그리고 산을 올랐다. 근처 헬스장에서는 다들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미친놈 아니냐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상관없었다. '오늘, 확인한다.' 스마트폰 화면에 상태창이 떠 있었다. [김도훈] STR 417 / VIT 391 / AGI 302 (측정 오차 가능성 있음. 재확인 요망.) 숫자를 볼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남들은 팔굽혀펴기 백 번에 0.1이 오르네 마네 하며 웃었다. SNS에서는 유명한 헌터들의 능력치가 공개될 때마다 난리가 났다. STR 200만 넘어도 국가대표급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혼자 산을 올랐다. 혼자 바위를 밀었다. 혼자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렸다. 동네 뒷산 정상 부근에 있는 집채만 한 바위. 처음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그 바위가, 여섯 달째 되던 날 밀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숫자가 남았다. '말도 안 되는 수치야. 근데... 진짜라면?'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비교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헌터 등록을 하려 해도 실전 경험이 없으면 심사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기다렸다. 협회가 새로운 던전을 개방한다는 소식이 뜨기만을. 그래서 오늘, 던전이 필요했다. 통제소 문이 열렸다. "등록번호 순서대로 입장하십시오!" 마이크를 든 직원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인파가 한 걸음씩 앞으로 밀렸다. 김도훈도 발을 뗐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로 덧댄 벽면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페인트 냄새가 남아 있었다. 급하게 공사한 티가 역력했다. 서울 지하 380미터. 협회가 측정한 던전의 깊이였다. 계단 끝에서 서늘한 바람이 올라왔다. 흙과 돌 냄새,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 나오는 비릿한 냄새. '이게 던전 냄새구나.'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코끝을 찌르는 그 이질감에 옆에 있던 누군가가 헛구역질을 했다. 입구를 지키던 헌터 하나가 소리쳤다. "전원 안전선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벽 붕괴 위험 구간이 있습니다!" 김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탐험자들도 긴장한 얼굴로 안전선 안쪽에 붙었다. 몇몇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또 몇몇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저기, 처음이세요?"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김도훈에게 말을 걸었다. "네." "저도요. 근데 다들 처음이 아니면 여기 왜 왔겠어요. 신규 던전인데." 남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김도훈은 대답 대신 옅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지하 깊은 곳에서 낮은 진동이 올라왔다. 쿠구구-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뭐, 뭐야 이거?" 누군가 소리쳤다. 김도훈은 발밑의 떨림을 그대로 느꼈다. '지진인가? 아니, 방향이 다르다.' 진동은 벽 쪽에서 오고 있었다. 안쪽 깊숙한 곳, 지금까지 조사조차 못한 미개방 구역. 헌터들의 무전기에서 잡음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현재 위치, 진동 감지. 진원지 파악 중." "뭐라고? 다시 말해봐!" 무전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오갔다. 통제소 쪽 헌터들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스쳤다. 쩌저적!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헌터들이 일제히 무전기에 손을 댔다. "본부, 여기 벽면 이상 징후 발생!" 대답이 오기도 전에. 콰직! 벽이 통째로 무너졌다. 먼지 구름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기침 소리와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시야가 뿌옇게 가려졌다. 그 안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넷. 비늘로 뒤덮인 몸체가 어둠 속에서 꿈틀거렸다. "몬스터다! 몬스터 출현!" "전원 퇴각! 퇴각하세요!" 비명과 고함이 뒤섞였다.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며 계단 쪽으로 몰려갔다. 넘어진 사람을 밟고 지나가는 이도 있었다. 아비규환이었다. 김도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리가 얼어붙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눈이 부릅떠졌다. '저게... 이번 던전의 몬스터?' 체고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몸체가 통로를 가득 메웠다. 입가에서 끈적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비늘 갑주 같은 외피가 조명을 받아 번들거렸다. 붉은 눈동자 네 쌍이 동시에 통로를 훑었다. 헌터 하나가 무기를 겨눴다. "물러서! 물러서라고!" 목소리가 떨렸다. 창을 쥔 손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앞발이 휘둘러졌다. 콰앙! 헌터의 몸이 벽까지 날아가 부딪쳤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축 늘어진 몸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주변 탐험자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으아아악!" 누군가 뒤늦게 도망치려다 넘어졌다. 발버둥 치는 소리, 흙바닥을 긁는 손톱 소리가 뒤섞였다. 김도훈의 눈앞으로 몬스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대한 앞발이 천천히 들려 올라갔다. 침 냄새가 코앞까지 스며들었다. '이건...' 숨이 턱 막혀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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