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서울 지하 380미터.
던전의 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구-!
먼지 구름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사이로 사람의 형체 하나가 걸어 나왔다.
발걸음에 서두름이 없었다.
그 뒤로 거대한 몬스터 무리가 있었다.
수십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비늘 갑주를 두른 것들, 아가리에서 침을 흘리는 것들.
하지만 누구도 다가서지 않았다.
다가설 수 없었다.
협회 소속 헌터들은 이미 벽 쪽으로 몸을 붙인 채였다.
방패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마른침을 삼켰다.
"...뒤로."
남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한마디에 몬스터들의 대열이 그대로 무너졌다.
마치 명령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몇 마리는 몸을 웅크렸고, 몇 마리는 뒷걸음질쳤다.
콰직! 콰지직!
앞선 몇 마리가 허공에서 터져나갔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지켜보던 헌터 하나가 헛구역질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뒤편에서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도훈 탐험자, 응답 바랍니다! 지금 몇 마리를..."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던전 심층부를 향해 있었다.
마치 그 너머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등급불명.
칭호 [규격 외].
협회의 그 어떤 서류에도 정상적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름이었다.
1년 전.
서울 한 구석, 반지하 원룸.
방 안은 컴컴했다.
모니터 불빛만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창문엔 두꺼운 암막커튼이 쳐져 있었고, 그 틈으로도 햇빛 한 줄기 들지 않았다.
김도훈, 서른 살.
직업란에 넣을 말이 없었다.
백수였다.
정확히는 3년째 백수였다.
키보드 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딸깍, 딸깍.
화면 속 캐릭터의 레벨이 하나 올랐다.
'좋아.'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그게 전부였다.
하루의 유일한 감정 표현.
책상 위엔 식어버린 컵라면 용기가 세 개나 쌓여 있었다.
어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도훈아, 밥은 먹었니."
"...나중에요."
대답은 짧았다.
문 너머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천천히 멀어졌다.
그는 이미 다시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귀에 남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과 연락은 끊긴 지 오래였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했다.
동창 모임에 나갔던 날, 누군가 지나가듯 말했다.
"도훈이는 아직도 게임만 하고 사냐?"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그는 그저 술잔을 들었을 뿐이었다.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수치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그게 그의 신조였다.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오르는 숫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력서를 백 통 넣어도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현실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갈라졌다.
전 세계 사람들의 눈앞에 똑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전 인류에게 '스탯' 개념이 부여됩니다.]
처음엔 다들 열광했다.
뉴스는 온종일 그 얘기뿐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상태창을 확인하며 환호했다.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의 스탯을 비교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대부분의 스탯은 미미하게 오르다 말았다.
팔굽혀펴기 백 번을 해도 STR이 0.1 오를까 말까였다.
노력 대비 보상이 형편없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열기는 순식간에 식었다.
다시 다들 일상으로 돌아갔다.
김도훈은 달랐다.
그는 상태창을 확인한 순간, 숨을 삼켰다.
'이거다.'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평생 그가 원했던 것.
노력하면 정직하게 오르는 숫자.
그것이 이제 현실에 존재했다.
게임 속 숫자가 아니라, 그의 몸에 새겨지는 숫자.
그날부터 그는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아무도 몰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머니에게조차 어디 가는지 밝히지 않았다.
동네 뒷산.
한밤중.
가로등도 없는 산길, 인적조차 드문 곳이었다.
김도훈은 바위를 밀고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팔이 후들거렸다.
손바닥 살갗이 벗겨져 피가 배어 나왔다.
'조금만 더.'
[STR 스탯이 상승했습니다.]
메시지가 눈앞을 스쳤다.
그는 웃지 않았다.
다만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 다시 바위를 밀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새벽 다섯 시, 산에서 내려와 집에 도착하면 곧바로 씻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몇 시간 뒤 다시 눈을 뜨면 근력 운동을 반복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웬만한 트럭도 밀어젖힐 수 있었다.
몸이 달라진 걸 스스로도 느꼈다.
거울 속 자신의 팔뚝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협회는 아직 그를 몰랐다.
세상 그 누구도 그를 몰랐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스마트폰 알림이 요란하게 울렸다.
[속보] 서울 시내 신규 던전 개방 확정.
[탐험자협회] 등록 탐험자 전원 참여 가능.
김도훈은 화면을 오래 들여다봤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드디어.'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1년 가까이 갈고닦은 몸이었다.
이제야 그 결과를 확인해볼 시간이었다.
방 안 어딘가, 낡은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효율 극대화 계획서』.
그가 지난 1년간 채워온 훈련일지였다.
날짜별로 스탯 변화, 훈련 강도, 회복 시간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마지막 장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노트를 조용히 덮었다.
창밖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이었다.
서울 첫 던전이 열리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