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3번 방문을 열자 안에서 축축한 공기가 확 밀려나왔다.
곰팡이 냄새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래된 우물 속에서나 날 법한, 물이끼와 흙이 뒤섞인 냄새였다. 나는 숨을 참았다가 그게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자연스럽게 내쉬었다. 손님 앞에서 코를 막는 통역사라니, 첫날부터 시급 깎일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방 한가운데 놓인 침대 위에 뭔가 웅크리고 있었다. 형체가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눈만 두 개, 아니 정확히는 여러 개 반짝였는데 나는 그걸 세다가 그만뒀다. 세어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넷까지 셌을 때 이미 손끝이 시려왔다.
"저, 안녕하세요. 통역 및 간호를 맡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뭔가 흘러들어왔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언어라기보다 감정에 가까운 것이 그대로 전달됐다. 배고픔. 그리고 지루함.
머릿속에 남의 감정이 툭 떨어지는 느낌은 처음 겪어봤다. 뇌 속에 누가 젖은 수건을 던져놓은 것 같았다. 불쾌하진 않았지만 익숙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가 곧 이해했다. 그게 통역이었다. 이 존재가 말하는 걸 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번역해주는 것 같았다. 계약서에 적혀 있던 "통역 업무"라는 문구가 이런 뜻이었다니. 이럴 거면 미리 말이나 해주지.
"배고프세요? 뭐 좀 드릴까요?"
웅크린 형체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 순간 다시 감정이 흘러들었다. 이번엔 놀람이었다. 상대가 놀란 감정이었다.
[너, 말이 통하는구나.]
목소리가 처음으로 언어처럼 들렸다. 예스러운 말투였다.
"네. 근데 저도 처음이라 익숙하진 않아요."
[재밌군. 사람 아이가 이렇게 빨리 대화를 트는 건 오랜만이거늘.]
목소리에 반가움 같은 게 섞여 있었다. 적어도 이번 손님은 나를 잡아먹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할 예정이었다. 나만 몰랐을 뿐이다.
대화가 이어졌다. 알고 보니 이 손님은 오래된 산신에 가까운 존재로, 몇백 년간 인간과의 접촉이 거의 없어 말이 어눌해졌다고 했다.
"몇백 년이나요?"
[셀 필요가 있느냐. 산은 셀 줄 모른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산이 숫자를 세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배가 고픈 건 몸이 아니라 뭔가 다른 종류의 결핍이었는데, 그걸 채워줄 요리를 부탁하러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정확히 뭐가 부족한 건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산신도 자기 결핍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뭔가 헛헛하다, 라는 감정만 계속 흘러들어왔다. 사람도 아니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그 내용을 정리해서 주방으로 전달하러 갔다.
*
강다연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이번엔 내가 말을 끝내자마자 재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다듬어놓은 듯한 정갈한 손짓이었다. 도마 위에 뭔가 하얀 뿌리 같은 걸 올리고, 칼끝으로 톡톡 두들기며 상태를 확인했다.
"뭘 만드는 거예요?"
"결핍은 재료로 못 채워. 다만 흉내는 낼 수 있어."
짧은 대답이었지만 처음으로 두 마디 이상 들었다. 오유슬이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다연이 말 많이 하네."
"조용히 해."
"거봐, 또 하잖아. 세 마디."
"넌 셀 시간에 그릇이나 꺼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그 잠깐의 균열이 반가웠다. 나는 요리가 완성되는 걸 지켜보며 손님 방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냄비 안에서 뭔가 뭉근하게 끓는 소리가 났는데, 김이 뿌옇게 올라오는데도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결핍을 흉내 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평범한 요리는 아닌 게 확실했다.
*
첫날 업무는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산신은 요리를 받아먹고 흡족한 감정을 흘려보냈고, 나는 그걸 강다연에게 다시 전달했다. 강다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 같았는데,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원래 표정이 없는 사람인지, 지금 웃고 있는데 티가 안 나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손님이 만족하셨대요."
"그래."
그게 다였다. 나는 뭔가 더 큰 반응을 기대했다가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여기서 일한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인정 욕구를 느끼고 있다니, 정신 차려야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오유슬이 갑자기 나를 복도 구석으로 잡아끌었다. 손목을 잡는 힘이 생각보다 셌다.
"야."
"네?"
"너 오늘 너무 잘하네."
좋은 말인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뭔가 불편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웃고는 있는데 눈은 웃지 않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게 문제예요?"
"보통 신입은 첫날 최소 한 번은 사고를 쳐. 그래야 우리도 도와주는 척 하면서 관계를 만들거든. 근데 넌 너무 매끄러워."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되물었다.
"그게 왜 나쁜데요?"
"나쁜 게 아니라···"
오유슬이 말을 삼켰다. 순간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
"넌 여기 규칙을 몰라. 순응이 빠른 게 항상 좋은 건 아니야."
"규칙이 뭔데요? 저 아직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들었으면 이렇게 태평하게 있진 못했을걸."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말투였다. 나는 뭘 더 물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그 고민할 틈도 없었다.
그 순간 관 전체가 흔들렸다. 벽에 걸린 등불이 일제히 깜박였고 바닥이 낮게 진동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떨림이 심장까지 그대로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뭐예요, 이거?"
"손님이 바뀌었어."
오유슬의 목소리가 확연히 떨렸다. 방금까지 나를 붙잡고 있던 손이 어느새 내 팔뚝을 더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봉인 방이 열렸어."
아까 그 붉은 실선이 그려진 문양. 오늘 안 쓴다던 방.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첫날부터 이런 걸 겪을 줄은 몰랐는데, 시급 계산할 여유도 없이 몸이 먼저 굳었다.
복도 저쪽에서 강다연이 뛰어왔다. 창백한 얼굴이 한층 더 하얘져 있었다. 손에는 아직도 칼을 쥔 채였다.
"관주님한테 연락했어?"
"안 받아."
"세 번 걸었어."
"네 번 더 걸어."
둘이 나누는 대화가 심각했다. 나는 슬금슬금 물러서려 했다. 존재감 없는 인생 17년 동안 갈고닦은 유일한 생존 기술이었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조용히 사라지는 것.
그런데 그게 통하지 않았다.
봉인 방문이 안쪽에서부터 쩌엉,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붉은 실선이 산산조각 흩어지고, 문 자체가 문틀에서 통째로 튕겨나갔다. 콰앙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등불이 일제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나는 그 짧은 암전 동안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문 안에서 걸어나온 존재는 그림자처럼 검었다. 형체는 사람 같았지만 윤곽이 계속 흔들려서 잔상이 겹쳐 보였다.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잔상이 한 박자씩 늦게 따라오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릿속으로 아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배고픔이나 지루함 같은 게 아니었다. 그건 순수한 적의였다.
[아, 여기 새로운 게 있구나.]
목소리가 뇌를 직접 긁는 것처럼 울렸다. 나는 무릎이 저절로 꺾이는 걸 느꼈다. 이빨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입을 억지로 다물었다.
"오유슬, 뭐예요, 저거···"
"저건···"
오유슬이 대답을 못했다. 평소 같으면 뭐라도 능글맞게 받아쳤을 사람인데, 지금은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강다연이 그 앞을 막아섰지만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손에 쥔 칼끝도 같이 흔들렸다.
[통역자라니. 오랜만이군. 마지막으로 봤을 땐 다 죽었었는데.]
죽었었는데, 라는 말이 너무 태연하게 들려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마치 어제 저녁 반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존재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 방금까지 아무도 나를 제대로 못 봤던 인생이었는데,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한테 정확히 지목당하고 있었다. 하필. 이럴 때만 존재감이 생기다니, 정말이지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너로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