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조정 회의장의 천장은 높고 어두웠으며, 그 위로 매달린 등불들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가 관료들의 얼굴 위로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오그라들었다. 늘어선 이들의 표정에는 저마다 다른 계산이 얼비쳤는데, 그 계산들이 향하는 방향은 대체로 하나였다 — 이 사건이 어느 쪽에 유리하게 흘러가느냐는 것이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는 얼굴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몇몇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이미 결론을 내린 듯한 표정을 지었고, 또 몇몇은 서류를 뒤적이며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딴청을 부렸다. 강도현은 황서린의 뒤에 종자로서 자리하며 그 회의장의 공기를 읽었는데, 이곳에서 오가는 말들이 결국은 힘과 힘 사이의 거래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회의장 바닥에 깔린 대리석은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발끝을 통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이곳이 결코 정의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새겼다.
회의를 주재하는 대신이 사건 개요를 낭독했다. "지난 사흘간 사망한 세 궁인은 각기 다른 부서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사망 직전 모두 동뢰궁 인근에서 목격되었다는 증언이 확보되었습니다. 사망 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세 사건 모두 외상 없이 급작스레 숨이 끊긴 것으로 보아 독살 혹은 원인 불명의 초자연적 현상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회의장 안에 낮은 소요가 일었다. 그 단어는 사건을 신비화시키는 동시에, 책임 소재를 흐리기에 딱 좋은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몇몇 관료는 낮게 수군거리며 부적이나 저주 따위의 말을 입에 올렸는데, 그 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자리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장태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을 청했다. "제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세 사망자 모두 최근 동뢰궁의 유폐가 풀린 직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우연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가 말하며 황서린을 향해 시선을 던졌는데, 그 시선에는 표면적인 유감의 표정 아래 승리를 예감하는 자의 여유가 숨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낭랑했고, 마치 오래전부터 이 발언을 준비해둔 사람처럼 매끄러웠다. "동뢰궁의 사정을 잘 아는 분들이라면 이것이 단순한 사고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실 겁니다." 그가 좌우를 둘러보며 덧붙이자, 몇몇 관료가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도현이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대신 나서서 말했다.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물증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제시된 것은 시간적 근접성뿐이며, 그것은 정황일 뿐 증거가 아닙니다." 그의 말에 회의장 몇몇 관료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계산을 이어갈 뿐이었다. 장태오가 그 말을 듣고 입가에 얕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정황이 세 번 쌓이면 그것도 증거가 되는 법이지요, 강 기사."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그 부드러움 안에는 명백한 도발이 섞여 있었다. 강도현은 대답 대신 그의 눈을 응시했는데, 그 시선 속에서 상대가 이미 여론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조은채도 참석해 있었다. 백작가의 사법적 역할을 이어받은 그녀는 이번 조사에서 실질적인 증거 수집을 담당하는 위치였는데, 그녀가 자리에서 서류를 펼치며 발언하는 순간, 강도현은 그녀의 눈빛에서 익숙한 경계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는 목격 증언과 사망 시각의 기록뿐입니다. 사인을 특정할 만한 부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말은 담담했으나, 그 담담함 속에는 어느 쪽에도 쉽게 기울지 않으려는 신중함이 배어 있었다. 서류를 넘기는 손끝이 정확했고,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사실만을 말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일 것이라고, 강도현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조은채가 강도현을 처음 경계하게 된 것은 사실 오래전의 일이었다. 황서린을 만나러 동뢰궁을 드나들기 시작하던 무렵, 그녀는 '흉전사'라는 별명을 가진 근위기사가 그 담장을 넘나든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했다. 학교 시절부터 실력만으로 상대를 스무 번 넘게 짓밟았다는 소문, 그리고 그 무자비함이 실전에서는 더 지독하다는 풍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흉전사라는 이름 그대로, 흉포하고 감정 없는 검을 다루는 자. 소문 속의 그는 상대를 벤 뒤에도 눈빛 하나 바뀌지 않는다고 했고, 동료들조차 그와 나란히 서길 꺼린다는 말도 있었다. 처음 강도현을 마주쳤을 때 그녀가 유독 말을 아끼고 거리를 두었던 것도 그 상상 속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는 인사조차 짧게 끝내고 자리를 피했는데, 그것이 예의가 아니라 경계였다는 것을 강도현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상상이 정확히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녀 자신도 이제는 흐릿하게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회의는 결론 없이 마무리되었다. 대신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며칠간의 유예를 선언했는데, 그 유예 기간 동안 황서린의 근신 여부를 두고 다시 논쟁이 붙었다. 한쪽에서는 완전한 유폐를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근거 없는 처벌이 오히려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신중론을 펼쳤다. 그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절차를 논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각자의 이해가 얽힌 진영 다툼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절충안으로, 황서린은 궁 밖 출입은 허용되나 특정 인원의 감시 아래 두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지만, 완전한 유폐도 아니었다. 그 애매한 결정에 만족하는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이 회의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었다.
회의장을 나서며 장태오가 강도현 곁을 지나치듯 말을 건넸다. "두고 보자고, 강도현. 이번엔 검이 아니라 증거로 승부를 보는 거니까." 그 말투에는 여전히 여유가 묻어 있었으나, 강도현은 그 여유 아래 감춰진 조급함을 읽어냈다. 물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저쪽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강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뒷모습이 회의장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는데, 그 시선 속에는 경계심과 함께 알 수 없는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증거로 승부를 본다는 말이 진짜 위협이 되는 것은, 증거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회의장을 나온 뒤, 조은채가 강도현을 잠시 붙잡았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녀의 말투는 격식을 갖췄지만 눈빛에는 오래 눌러온 질문이 담겨 있었다. 강도현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정말로 서린을 지키려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겁니까." 그 질문에 강도현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 물음이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오래 쌓인 오해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것을 그도 느꼈기 때문이다.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관료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채웠고, 그 소음 속에서 조은채의 목소리만이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강도현은 무언가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입을 열지 못한 채 그녀의 시선을 마주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