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정신이 든 곳은 낯익은 천장이었다.
온성 공작가의 내 방. 익숙한 문양의 천장화, 낮게 걸린 샹들리에, 창가에 드리운 옅은 색 커튼까지 전부 그대로였다.
몸을 움직이려 하자 왼쪽 어깨에서 뻐근한 통증이 올라왔다. 단순히 아픈 정도가 아니라, 뭔가 근육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듯한 낯선 감각이었다.
얼굴 쪽은 감각이 더 이상했다. 뭔가 팽팽하게 당겨진 느낌. 마치 얼굴 위에 누군가 얇은 실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조심스레 내 손을 눌렀다. 주치의 로건이었다. 그는 밤을 새운 듯 눈 밑이 거뭇했고, 안경 너머의 눈은 유난히 피로해 보였다.
"얼마나…… 지났지."
목이 갈라져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것처럼 목구멍이 사막 같았다. 로건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이틀입니다. 열이 심하게 올랐다가 오늘 새벽에 내렸습니다."
이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이틀 동안 뭘 했지, 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워서 앓았을 뿐이겠지. 그런데도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왼쪽 얼굴에 손을 대려 했지만, 로건이 그 손을 붙잡았다.
"만지지 마십시오. 아직 회복 중입니다."
"상태가 어떤데."
짧게 물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다. 로건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이미 답이었다.
"치유 마법으로 살은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흉터는, 남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다른 느낌이었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 각오했던 말이었는데도, 실제로 그 문장이 귀에 박히는 순간의 무게는 전혀 달랐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이건 게임 지식이 맞았다는 증거다.'
스스로를 위로하듯 그런 결론을 내려 보았다. 예지가 현실로 확인된 셈이니, 앞으로 벌어질 다른 사건들도 더 신뢰할 수 있게 됐다고. 논리적으로는 완벽한 위로였다.
'……라고 생각하기엔 흉터가 너무 아깟네.'
결론 뒤에 붙는 자기 비웃음이, 통증보다 더 선명했다.
솔직히 말하면 억울했다. 원작에서 이 상처는 윤하은의 것이었다. 여주인공이 다치고, 남주인공이 자책하고, 그 상처가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드는 서사적 장치. 그런데 그 장치가 지금 내 얼굴에 새겨졌다는 게, 뭔가 부조리했다.
'적어도 이 흉터로 얻는 서사적 이득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없을 것이다. 나는 조연이었으니까.
로건이 손거울을 건넸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받아 들었다. 손거울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잠깐 손이 떨렸다.
왼쪽 관자놀이에서 광대 아래까지, 붉은 실선 같은 흉터가 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붓으로 얇게 그어놓은 것 같은 선명한 자국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색이 옅어질 거라고 로건이 덧붙였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말도 함께였다.
"얼굴은 회복 마법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어깨 쪽도 마찬가지고요."
"알겠어."
짧게 답하고 거울을 내려놓았다. 화를 낼 힘도, 슬퍼할 힘도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하나의 데이터로 받아들이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었다.
'그래, 흉터 하나 생겼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시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가씨, 황태자 전하께서 문안 오셨습니다."
뭔가 낯선 조합이었다. 원작에서 황태자가 위로 방문하는 대상은 늘 윤하은이었다. 그 장면들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셀 수도 없었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이해했다.
'아, 맞다. 다친 게 나니까.'
당연한 논리인데도 낯설었다.
이현이 방으로 들어왔다. 훤칠한 체격에 정중한 태도, 그러나 표정에는 미묘한 불편함이 배어 있었다. 그가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가 얼른 표정을 고쳤다. 그 순간의 미세한 변화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살아 있으니 됐습니다."
건조하게 대답하자,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손을 뒤로 모으고, 뭔가 결심한 듯한 자세였다.
"그날,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전하가 늦어서 제가 다친 게 아니라, 제가 빨랐던 겁니다."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는 더 불편한 얼굴이 됐다. 나는 굳이 위로할 생각이 없었다. 위로한다고 해서 흉터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원작대로라면 그가 영웅이 됐어야 할 장면에서, 조연이던 악역 영애가 대신 다쳤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도 편한 결말은 아니었다.
이현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결국 삼켰다. 그의 표정에는 죄책감과 곤란함이 뒤섞여 있었다. 자신이 위로해야 할 대상이 원작 속 여주인공이 아니라 낯선 조연이라는 사실에, 그도 어색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쾌차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가 형식적인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가 돌아간 뒤, 또 다른 방문객이 있었다.
윤하은이었다.
그녀는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들어왔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손에는 뭔가를 꼭 쥐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수건이었다. 이미 눈물로 젖어 있는 듯 구겨진 손수건.
"저, 강서리 양……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녀는 침대 옆까지 다가오지도 못하고, 방문 근처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당신 때문이 아니야."
"하지만 저를 구하려다가……"
말끝이 흔들리며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커다란 눈동자가 순식간에 물기로 가득 차더니, 이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눈물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계획에는 없던 반응이었다.
'울지 말라고 해도 안 들을 것 같은데.'
경험상 이런 부류는 말로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울지 마."
짧게 말했지만, 그녀는 결국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흐느꼈다. 어깨가 작게 들썩였고, 손에 쥔 손수건은 이제 완전히 젖어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눈물이, 낮에만 흐르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