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무표정 용사님의 폭주 순정

5화

탈퇴 신청서가 접수된 지 보름쯤 지났을 무렵, 왕도 모험자 길드에서 뜻밖의 호출이 왔다. 그것도 서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길드마스터 곽태식이 직접 도윤을 부른 것이었다. 호출장을 받아 든 도윤은 한참 동안 그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길드마스터가 직접 부른다는 건, 좋은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이 왕도에서 3년을 굴러먹은 도윤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길드 본관으로 걸어가는 내내 그는 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았다. 탈퇴 신청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면 위약금 얘기라도 나오는 걸까…… 설마 정말로 서윤이한테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온갖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정작 진짜 이유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곽태식의 집무실 문을 열자, 스킨헤드와 얼굴을 가로지르는 큰 흉터를 가진 거구의 남자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도윤을 훑어보고 있었다. S랭크 원년 모험가라는 명성에 걸맞은 위압적인 인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두꺼운 서류철이 몇 개나 쌓여 있었고, 벽에는 그가 젊었을 적 던전을 정복하고 찍었다는 낡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그 사진 속 청년의 눈빛과 지금 이 남자의 눈빛이 똑같이 날카로웠다. 정작 입을 열자 나온 말투는 예상외로 부드러웠다. "한도윤 군, 앉게." 도윤이 자리에 앉자, 곽태식은 서류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 서류에는 도윤이 제출한 탈퇴 신청서의 사본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여기저기 붉은 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국선 파티 탈퇴 규정을 아나?" "대략은…… 압니다." "대략이 아니라 정확히 알아야 해." 곽태식이 흉터 진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국선 파티는 왕실이 직접 관리하는 조직이야. 특히 성검에 선택된 용사가 속한 파티는 더 엄격하지. 자네가 나가려면, 대체 인원을 세워야 하고, 그 인원이 최소 한 달간 파티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네. 그런데……" 곽태식이 잠시 말을 끊고 도윤을 똑바로 바라보았는데, 그 시선이 마치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서 도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걸 느끼며, 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서윤 양이 자네 말고 다른 사람이 파티에 들어오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고 있어." "……네?" "지난주에 후보로 올린 정찰병 셋이 전부 서윤 양한테 면담 신청도 못 해보고 쫓겨났다는 얘기, 못 들었나?" 도윤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곽태식은 놓치지 않았다. "세 사람이나요……?" 도윤이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저는,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당연히 몰랐겠지." 곽태식이 서류를 뒤적이며 덧붙였다. "그 아이가 자네 앞에서는 절대 그런 얘기 안 할 테니까. 첫 번째 후보는 면담실 문턱에서 검기에 밀려 나갔고, 두 번째는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당했어. 세 번째는……" 곽태식이 잠시 헛기침을 했다. "세 번째는 서윤 양이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노려보기만 했다는데, 그 정찰병이 그날로 왕도를 떠났다더군." "그, 그건……" 도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그가 예상했던 어떤 시나리오와도 달랐다. "이보게, 도윤 군." 곽태식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자네가 평민 출신이라는 거, 나도 알아. 전투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도 알고. 하지만 그게, 자네가 이 파티에 필요 없는 이유는 못 된다는 걸 왜 모르나." "그건……" 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그냥, 서윤이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저 없이도 서윤이는, 이제 혼자서도 충분히……" "짐이라니." 곽태식이 헛웃음을 흘렸다. "자네가 없으면 그 아이가 폭주할 거라는 걸, 정작 자네만 모르는 것 같군." "폭주요……?" 곽태식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침묵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가 책상 아래에서 또 다른 서류철을 꺼내 도윤 앞으로 밀었는데, 그 표지에는 '기밀'이라는 도장이 붉게 찍혀 있었다. "서윤 양의 힘은 5년 전보다 지금이 몇 배는 강해졌어. 강해질수록, 그 힘을 억제하는 이성의 끈도 점점 아슬아슬해지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네. 지난 던전 토벌 때, 자네가 잠깐 후방으로 물러났던 순간 기억하나." 도윤은 기억했다. 그날 서윤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색이 변했던 것을, 그리고 그 직후 서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다가왔던 것을. "그때, 자네가 물러난 그 짧은 순간에도 이미 반응이 나타났었어." 곽태식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끈을 붙잡고 있는 게 누군지 아나?"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고,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책상 위 서류의 글자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바로 자네야." 곽태식이 못을 박듯 말했다. "자네가 나가면, 그 아이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나도 감당 못 해. 정훈이도 못 해. 이 왕도 전체를 뒤져도 오직 자네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왜 자꾸 못 본 척하려는 건가." 도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지난 몇 달간 자책해왔던 무력함이,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전투력이 없어서, 아무런 도움이 안 돼서, 그래서 짐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나날들이…… 만약 정반대였다면. 만약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 서윤이 무너지는 거라면. 그리고 그 순간, 문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성급하고, 다급하고,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발걸음 소리였다. 서윤이었다. 곽태식의 얼굴이 순식간에 긴장으로 굳었다. 그는 재빨리 책상 위의 기밀 서류를 서랍에 쑤셔 넣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필 지금." 문이 벌컥 열리고, 은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들어선 서윤의 붉은 눈동자가, 곧장 도윤을 향해 꽂혔다. 그 시선에는 방금 전까지 곽태식이 말했던 '아슬아슬한 끈'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어딘가 위태로운 빛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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