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무표정 용사님의 폭주 순정

4화

그날 이후로 며칠이 흘렀는데, 도윤은 유난히 서윤이 자신의 곁에 붙어 있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원래부터 늘 그랬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요즘은 정도가 조금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마치 그림자가 한 뼘 더 가까워진 것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윤의 기척이 바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날이 잦아졌다. 예컨대, 던전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서윤은 도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곤 했다. 은빛 머리카락이 그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었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닿을 때마다 도윤은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걸 느꼈지만, 그저 서윤이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넘겨짚었다.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서윤의 몸이 살짝 기울었고, 그럴 때마다 도윤은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더 낮춰 그녀가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바꾸었는데, 정작 그 사실을 자각한 건 한참 뒤였다. "도윤아, 너 진짜 눈치가 없다." 정훈이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맞은편에 앉은 그는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어디 그냥 잠든 거냐." "그럼 아니에요?" 도윤이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로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됐다, 말을 말자." 정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저 둔감함을 어디서부터 고쳐줘야 하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소소한 접촉은 일상 곳곳에 스며 있었다. 저택 욕실 앞에서 마주치면 서윤이 아무렇지 않게 도윤의 손목을 붙잡고 "머리 좀 말려줘" 하고 부탁했고, 그럴 때마다 도윤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며, 이렇게 곱고 부드러운 비단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이 진짜 사람인가 싶어 묘한 감탄을 느꼈다. 수건 사이로 삐져나온 은빛 머리카락 한 올이 손가락에 감길 때마다, 도윤은 이상하게 숨을 죄어드는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손끝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살살 해." 서윤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하고 있어……." 도윤이 대답하며 수건을 살짝 눌러 물기를 닦아내는데, 그러다 손끝이 서윤의 목덜미에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도윤은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 사과했다. "아, 미안." 서윤은 오히려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마치 방금 놓친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사람처럼. "괜찮은데." 서윤이 말했다. "아, 아니…… 실례가 될까 봐." "실례 아니야." "그, 그래도……." "그래도 뭐." 도윤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냥 수건으로 그녀의 머리를 다시 감쌌다. 이럴 때마다 서윤의 눈동자가 안개 낀 숲처럼 깊어 보여서, 그 속을 들여다보면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윤은 그 대화가 반복될 때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그 낌새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내지는 못했다. 그저 서윤이 원래 사람과의 거리감이 좁은 성격이라고, 아니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편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도윤은 그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 * 한번은 훈련 중에 도윤이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는데, 서윤이 순식간에 그를 붙잡아 품에 안듯이 받아냈다. 훈련장 바닥에 떨어졌던 목검이 탁, 소리를 내며 굴렀고, 그 소리조차 무색하게 만들 만큼 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 도윤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께에 닿았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는 허둥지둥 몸을 떼어냈다. "미, 미안!" 주변에서 훈련을 지켜보던 병사 몇이 힐끔거리며 웃음을 참는 기색을 보였고, 도윤은 그 시선들이 온몸에 꽂히는 것 같아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서윤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붉어진 그의 귀를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며 물었다. "왜 귀가 빨개." "그, 그건…… 더워서 그런가." "지금 겨울인데." "……." "땀도 안 났는데." "그, 그게……." 도윤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도망치듯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등 뒤로 서윤의 시선이 계속 따라붙는 것 같아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뒤에서 수아가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저 둘 진짜 언제까지 저럴 거야." 수아가 팔로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누가 알아. 도윤이가 눈치를 챌 때까지겠지." "그게 언젠데?" "글쎄……. 내년쯤?" 그 대화를 도윤은 다행히 듣지 못했지만, 만약 들었다면 억울함에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이 자식이…… 아니, 내가 왜 이렇게 정신없이 도망친 거지. 도윤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반응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 혼란의 근원을 끝내 들여다보지 않았다. 마치 뚜껑을 열면 무언가 쏟아질까 봐 두려워, 애써 상자를 밀어두는 사람처럼. 저녁이 되어서도 그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 마주 앉은 서윤이 아무 말 없이 국그릇을 밀어주며 "이거 더 먹어" 하고 말했을 때도, 도윤은 심장이 괜히 두근거려 밥알을 몇 번이나 헛삼켰다. 정훈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듯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날 밤, 서윤은 자기 방 창가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창밖으로 흐르는 별빛이 그녀의 옆얼굴을 세필로 그린 그림처럼 비추었고, 그 정적인 아름다움 속에 담긴 다짐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잦아들었다. 그 말이 무엇을 향한 다짐이었는지, 도윤은 결국 알지 못한 채 다음 날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밤, 서윤의 방 창가에 어른거리던 그림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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