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왕도 외곽, 국선 파티에게만 배정된다는 그 낡은 저택은 겉보기와 다르게 안은 제법 아늑했다. 대리석이 깔린 복도와 오래된 태피스트리, 그리고 저녁마다 벽난로에 장작을 때는 관리인까지 딸려 있는, 소위 '영웅 대접'을 받는 자들만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 아늑함은 도윤에게 그저 숨 막히는 무게로 느껴질 뿐이었다.
식당의 긴 테이블에는 늘 그렇듯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상석에는 강서윤, 그 맞은편에는 박정훈,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이수아와 한도윤이 나란히. 5년째 반복된 자리 배치였고, 5년째 익숙해진 식사 시간이었는데, 오늘은 뭔가가 달랐다. 도윤은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다시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목이 메는 기분을 느꼈다. 국물이 코앞에 있는데도 삼켜지지 않았다.
오늘 정찬 자리는 유난히 조용했는데, 그건 벽난로 장작이 타는 소리마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다들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도윤이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멍하니 접시만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걸 세 사람 모두 눈치채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 저, 이렇게 몇 번을 우물거리다가, 도윤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 파티에서 나가고 싶습니다."
숟가락이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방패를 든 거한, 박정훈이 씹던 빵을 삼키다 말고 사레들려 기침을 했고, 회복 마법사 이수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손에 든 물잔을 그대로 떨어뜨릴 뻔했다. 물이 조금 튀어 테이블보에 얼룩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상석에 앉아 있던 강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포크를 쥔 손을 멈춘 채로,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붉은 눈동자를 도윤에게 고정하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마치 방금 세필로 그려낸 그림이 갑자기 살아 움직이며 균열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서윤은 원래도 표정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녀가 웃는 걸 본 것도, 화를 내는 걸 본 것도 도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무표정 아래에서 뭔가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다는 걸, 도윤은 어쩐지 직감으로 느꼈다. 정적 속에서 뭔가가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으니까.
"도윤아." 정훈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냈다. 그는 기침 끝에 눈물까지 살짝 고인 채로,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도윤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우리가 뭘 잘못했어?"
"아니요, 형님. 그런 게 아니라……" 도윤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정훈이 자책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이 사람은, 던전에서 몬스터의 발톱을 대신 맞아주면서도 웃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오해를 사는 건 정말 싫었다.
"저는……" 도윤은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자꾸만 잦아들어서, 스스로도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이번 던전에서도 저는 아무것도 못 했잖아요. 형님이 방패로 다 받아주시고, 수아 누나가 힐 다 넣어주고, 서윤이가 몬스터 다 잡고…… 저는 그냥, 감정안으로 위험 감지나 하는 게 다였어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데." 수아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그녀는 물잔을 아예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도윤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감지 못 했으면 우리 셋 다 그 트랩에 걸렸을 거야. 그 던전 3층에서, 벽 전체가 무너지는 함정 있었잖아. 그거 네가 아니었으면 몰랐어. 나였으면 그냥 밟고 지나갔을걸."
"그래도요." 도윤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입술 끝을 억지로 끌어올린 모양에 가까웠다. "저는 이 파티에서, 그, 그냥…… 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형님이랑 누나는 최전선에서 싸우고, 서윤이는 거의 혼자서 보스를 잡아버리는데, 저는 뒤에서 '위험해요' 소리만 지르고 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저 없어도 셋이서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이 더 많았어요."
말을 마친 도윤의 귀가 붉어졌다. 스스로도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게 부끄러웠는데, 5년째 함께해 온 파티원들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이렇게 낱낱이 고백하는 건, 마치 옷을 벗고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이런 말은 혼자 삭이고 삭여서, 조용히 짐을 챙겨서 나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이었다.
그때,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의 손에 들려 있던 포크가, 어느새 반쯤 휘어져 있었다.
식당 안의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정훈도, 수아도 그 포크를 보고는 숨을 죽였다. 서윤의 악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감정을 그렇게 눈에 보이게 드러낸 적은 없었으니까. 던전에서 몬스터의 목을 단칼에 베어낼 때도, 그녀의 표정은 늘 저 정도의 무심함을 유지했었다.
"……서윤아?" 정훈이 조심스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 목소리에 조심스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서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휘어진 포크를 접시 옆에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손가락 사이로 은은하게 남아 있던 힘의 흔적이, 그제야 조금씩 풀리는 것이 보였다.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 속에 도윤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팽팽함이 서려 있었다.
"안 돼."
짧은 두 마디였다. 하지만 그 두 마디가 식당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것 같았고, 도윤은 왠지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것이 흘러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수아와 정훈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뭐라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벽난로의 장작이 타 들어가는 소리만이, 유독 크게 식당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도윤은 이 순간까지도, 자신이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켼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