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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서아의 검이 대각선으로 떨어졌다. 쉭- 도윤의 몸이 그 궤적을 반보 늦게, 그러나 정확히 피했다. '느리다.' 도윤은 그렇게 느꼈다. 전생의 기억 속 검들과 비교하면 서아의 속도는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 시절, 목숨을 걸고 마주했던 검들은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었다. 지금 서아의 검은 그 잔영에 비하면 느긋하게 흘러가는 물살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판단은 도윤의 의지가 아니었다. 몸이 먼저 알아채고, 머리가 뒤늦게 따라간 것이었다. 발끝이 먼저 움직이고, 어깨가 그 방향을 따라 틀어지고, 검을 쥔 손이 마지막으로 반응했다.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지만, 도윤 자신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서아는 첫 격이 빗나가자 즉시 두 번째 검을 이었다. 손목을 비틀어 궤도를 바꾸는, 12년간 다듬어온 연계기였다. 어릴 적부터 검을 쥐고 살았던 그녀에게 이 초식은 숨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대련장의 사범들도, 동기들도 이 연계를 처음 마주하면 어김없이 당황했다. "이걸 피해봐." 서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퍽! 검과 검이 부딪혔다. 도윤이 무의식적으로 검을 세워 막아낸 것이었다. 충격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지만, 도윤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팔꿈치도, 어깨도 그 힘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냈다. 마치 물이 돌을 타고 넘어가듯, 저항 없이 받아넘긴 것이었다. 서아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막혔다.' 그것이 서아에게는 낯선 감각이었다. 그동안 대련해온 누구도 이 연계기를 첫 시도에 막아낸 적이 없었다. 학원의 상급생들도, 심지어 몇몇 사범들조차 이 초식 앞에서 한 걸음씩 물러섰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런데 눈앞의 이 남학생은, 처음 보는 검로 앞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시." 서아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목소리에 오기가 섞였다. 연속된 삼단 베기가 이어졌다. 상단, 중단, 하단을 잇는 유려한 흐름. 검끝이 허공에 세 개의 선을 그리듯 매끄럽게 이어졌고, 그 사이에는 숨 쉴 틈조차 없었다. 도윤의 검이 그 세 번을 모두 받아냈다. 상단을 막을 때는 검을 세워 흘렸고, 중단을 막을 때는 몸을 반보 틀어 힘을 죽였다. 마지막 하단 베기를 막아내는 순간, 도윤의 검끝이 자연스럽게 서아의 검을 밀어냈다. 서아의 검이 손에서 반보 밀려났다. 관람석이 순간 조용해졌다. "뭐야, 저거..."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놀람과 불신이 뒤섞여 있었다. 옆에 앉은 이가 다급히 되물었다. "저게 무슨 초식이야? 학원에서 저런 거 배운 적 없는데." 아무도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늘은 숨을 죽이고 결투장을 지켜보았다. 도윤의 검이 움직이는 방식은 학원에서 가르치는 어떤 검로와도 달랐다. 그동안 수련해온 정형화된 초식, 사범들이 강조하던 각도와 속도의 규칙, 그 어느 것과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배운 게 아니야.' 하늘은 그렇게 생각했다. '몸에 새겨진 거야.' 그리고 그 생각은 하늘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저건 가르쳐서 얻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오래도록, 어쩌면 목숨을 걸고 반복해야만 몸에 남는 흔적이었다. 서아는 밀려난 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밀린 적은 없었다. 상대는 심지어 공격 한 번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막고, 흘리고, 받아내기만 했을 뿐인데, 그 단순한 방어 앞에서 12년의 연습이 하나둘 무력화되고 있었다. 손끝에 남은 감각이 낯설었다. 검을 놓칠 뻔했던 순간이 벌써 두 번이었다. "그쪽에서 오지 않을 거면." 서아가 낮게 말했다. "내가 끝낸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오기라기보다는 절박함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이 한 수에 걸려 있다는 것을, 서아 자신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서아가 전력을 담아 뛰어들었다. 가장 자신 있는 기술, 12년 훈련의 정수인 회전베기였다. 쉬익- 검이 원을 그리며 도윤의 목을 노렸다. 회전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지금까지 보여준 어떤 초식보다도 매서웠다. 관람석의 몇몇은 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도윤의 몸이 그 순간 처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반응이 아니라, 반격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게가 그 발걸음에 실렸다. 몸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도윤이 처음으로 의지를 담아 앞으로 나선 순간이었다. 도윤의 검이 서아의 회전을 정확히 그 중심에서 끊었다. 퍽! 둔탁한 충격과 함께 서아의 검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결투장 바닥에 검이 나뒹구는 소리가 뒤늦게 울렸다. 쇠붙이가 돌바닥에 부딪혀 튀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서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무기가 사라진 손이 허공을 쥔 채였다. 관람석은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 숨소리 하나도 크게 들릴 만큼, 그 정적은 무거웠다. "거기까지." 한서은이 결투장 중앙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승자, 이도윤." 그 짧은 선언이 결투장 전체에 낮게 퍼졌다. 서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패를 당했다. 준비도, 각오도, 12년의 노력도 그 앞에서 무의미하게 흩어졌다. 검을 쥐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무너져본 적이 없었다. 상대는 공격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결과는 이토록 명확했다. 그녀는 무기 없는 손으로 서서, 검을 늘어뜨린 채 서 있는 도윤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분노도, 슬픔도 아직 담기지 않았다.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뿐이었다. '어떻게.' 서아의 속에서 단 하나의 질문만이 맴돌았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지, 어떻게 배우지도 않은 검로가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패배보다 더 낯설게 다가왔다. 도윤은 검을 늘어뜨린 채 여전히 서아를 마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관람석의 정적 속에서,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그의 목 안쪽을 짓눌렀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말해야 이 낯선 시선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도윤 자신도 알지 못했다.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말이 무엇이 될지, 결투장 안의 누구도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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