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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입학식이 끝난 이튿날,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명 검술학원은 첫날의 감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신입생들은 새벽부터 훈련장으로 소집되었고, 그곳에서 자신들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평가받을지를 곧바로 통보받았다. 훈련장 중앙에 커다란 나무 게시판이 세워졌다. 사람 키 두 배는 될 법한 크기였다. 학생들이 그 앞으로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인파가 겹겹이 쌓였다. "결투 배정표다." 누군가 외쳤다. 목소리에는 흥분이 섞여 있었다. 검을 배우겠다고 이곳까지 온 자들에게, 결투라는 단어는 두려움보다 먼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청명 검술학원은 신입생 전원에게 상대를 지정해 일대일 대결을 치르게 했다. 실력을 가늠하는 첫 시험이자, 서열을 정하는 첫 무대였다. 이곳에서의 위치는 앞으로 사 년간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니 다들 게시판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이름과 상대의 이름을 확인했다. 도윤은 사람들 뒤에서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나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밀치고 들어가 이름을 확인하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이미 부담이었다. '이름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군.' 글자가 작아서가 아니라, 사람들 어깨 너머로 보이는 시야가 좁아서였다. "저기, 이도윤 맞지?" 누군가 옆에서 물었다. 밝은 갈색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여학생이었다. 표정에 경계심이 없었다. 오히려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성격인 듯, 도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바로 웃음을 지었다. "...맞습니다." 도윤이 짧게 답했다. "나는 박하늘이야. 네 이름 저기 있네." 하늘이 게시판의 한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손끝이 정확했다. 이미 몇 번이나 훑어보고 위치를 외운 눈치였다. 도윤의 이름 옆에 적힌 상대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주변이 다시 웅성거렸다. 윤서아. "윤서아랑 붙는다고?" 누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입학식 때 그 평민이랑?" 다른 누군가가 낮게 웃었다. "운도 없지. 첫 상대부터 저건..." 누군가 말을 흐렸다. 윤서아는 이 학년 신입생들 사이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공작가의 딸이자, 왕국 기사단장의 딸. 검술 실력만으로 신동이라 불렸다. 입학 전부터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심지어 상급생들 사이에서도 윤서아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괜찮으려나." 하늘이 도윤을 힐끗 보며 말했다. 걱정보다는 흥미가 앞서는 목소리였다. "...뭐가요." 도윤이 되물었다. "서아, 저런 상대한테 자비 없어." 하늘이 웃으며 답했다. "본인이 워낙 노력파라서." "노력파요." 도윤이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응. 재능만 믿고 안주하는 애가 아니라는 소리야. 오히려 그 반대지." 하늘이 팔짱을 끼며 덧붙였다. "그런 애들이 더 무서운 법이거든." 도윤은 그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다만 대결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만은 뚜렷했다. 배정표 앞에 선 순간부터 속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사흘 뒤.' 게시판 하단에 적힌 날짜를 보며 도윤은 생각했다.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될지, 아니면 더 두려워질 시간이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주변 학생들은 이미 다른 화제로 옮겨가 있었다. 누구는 자신의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며 안도했고, 누구는 반대로 얼굴이 굳었다. 결투 배정표 하나가 훈련장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셈이었다. 하늘은 도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이 흥미로운 대결의 결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는 얼굴이었다. +++ 윤서아는 게시판을 확인하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멀리서도 자신의 이름 옆에 적힌 상대의 이름을 읽었다. 이도윤. 입학식에서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그 학생이었다. 다만 마음속에서 오래된 장면 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다섯 살 때였다. 아버지, 왕국 기사단장이 훈련장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처음 본 날이었다. 상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역 국경에서 넘어온 아룡, 인간의 언어를 쓰는 붉은 비늘의 짐승이었다. 그날 훈련장 흙바닥에는 아버지의 검이 반으로 갈라져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십 년 검을 쥔 사람이었다. 왕국에서 그를 이길 자가 없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단 세 번의 격검 만에 무릎을 꿇었다. "타고난 것에는 한계가 없다." 그날 아룡이 남긴 말이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조롱기라곤 없었다. 오히려 사실을 말하듯 건조했다. 그게 더 서아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서아는 그 말을 부정하기 위해 살아왔다. 검을 쥐지 않은 날이 없었다. 손바닥의 굳은살은 열두 살 때부터 벗겨진 적이 없었다. 겨울에는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났고, 여름에는 손잡이가 땀에 미끄러웠다. 그래도 검을 놓은 적은 없었다. '노력 없는 재능은 없다.' 그것이 서아가 12년간 되뇐 유일한 문장이었다. 새벽 훈련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서아는 검을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저택 담벼락을 넘어갈 때쯤, 이미 해가 뜨기 시작했다. 그것이 서아의 하루였고, 그것이 서아가 아룡의 말을 부정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러니 이번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다만 입학식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얼어붙은 그 남학생을 떠올리면, 서아의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무시할 만한 상대라는 확신과,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 애랑 붙는다고?" 하늘이 다가와 물었다. 도윤과의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서아를 찾아온 참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똑같아." 서아가 짧게 답했다.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도 좀 안됐잖아. 말도 제대로 못 하던데." 하늘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말을 잘하는 게 검을 잘 쓰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서아가 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아 자신도 그 말이 스스로에게 향한 위로인지, 상대에 대한 경고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도 세간 소문으로는..." 하늘이 말을 이었다. "평민 출신이라던데. 검술 배운 적도 거의 없다고." "그럼 사흘 안에 뭘 배우겠어." 서아가 답했다. 냉소가 아니라 사실을 짚는 어조였다. "너무한다, 서아." 하늘이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난 다만 최선을 다할 거야.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니까." 서아가 답했다. "이도윤이라고 했지." 서아가 훈련장 저편,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시선을 피하고 있는 도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도윤이 잠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도윤은 이내 눈을 피했다. '말은 못 해도, 검은 다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서아 나름의 예의였다. 결투 날짜는 사흘 뒤로 정해졌다. 사흘. 서아에게는 준비할 시간이었고, 도윤에게는 두려워할 시간이었다. 서아는 그 사흘 동안 평소와 다르지 않게 새벽 훈련을 이어갈 생각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것, 그것이 서아가 지켜온 유일한 원칙이었다. 게시판 앞의 웅성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는 이미 승패를 점치는 목소리가 오갔다. "뭐, 뻔한 거 아냐?" 한 학생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평민 출신이 윤서아를 이긴다는 게 말이나 되나." 다른 학생이 거들었다. 그 목소리 중 도윤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도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시판 앞을 떠나면서도,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패배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끝내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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