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나는 해치를 조용히 닫았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계기판을 살폈다.
엔진은 정상이었다.
연료도, 탄약고도 이상 없었다.
적재된 포탄은 훈련용 몇 발과 실탄 두 발이 전부였다.
(이걸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좁은 조종석 안에서 심장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쿵, 쿵, 쿵.
바깥의 정적과 대비되어 그 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조종 레버가 미끄러웠다.
(정신 차려. 여기서 죽으면 다 끝이야.)
그 거대한 형체는 잠시 멈춰 서 있다가, 방향을 돌려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조종석에 등을 붙였다.
목덜미까지 흘러내린 땀이 척추를 타고 식어갔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
엔진을 저속으로 걸었다.
궤도가 나뭇가지를 밀어내며 낮은 소음을 냈다.
숲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없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나는 조준경을 통해 사방을 살피며 천천히 전차를 몰았다.
나뭇가지가 궤도에 부러지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숲을 벗어나자 완만한 능선이 보였다.
그 아래로 작은 불빛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을이었다.
나무 울타리와 초가지붕, 그리고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등불.
(사람이 있어.)
안도감이 잠깐 스쳤다.
나는 전차를 그쪽으로 몰았다.
가까워질수록 마을의 형태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낮은 지붕들이 줄지어 있었고, 마당마다 작은 텃밭이 딸려 있었다.
평범한 시골 마을 같았다.
누군가 살아가고 있는, 온기가 있는 곳.
(여기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등불 사이로 붉은 불길이 섞여 있었다.
비명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나는 속도를 올렸다.
궤도가 흙을 파고들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제발 아니길.)
하지만 그 바람은 이내 무너졌다.
능선을 넘자마자 나는 눈앞의 광경에 숨이 막혔다.
마을 절반이 불타고 있었다.
지붕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조금 전 숲에서 봤던 그 형체가 있었다.
용이었다.
검붉은 비늘, 날개를 펼치면 마을 하나를 덮을 것 같은 크기.
거리를 두고도 그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땅이 흔들릴 정도로 무거운 발소리가 울렸다.
쿵. 쿵.
울타리가 그 진동만으로 부서져 내렸다.
(저게 진짜… 용이라고?)
전차 안에서도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용이 입을 크게 벌렸다.
안쪽에서 붉은 빛이 응축되는 게 보였다.
(저거… 불을 뿜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조종석 레버를 당겼다.
엔진이 굉음을 내며 반응했다.
화아아악—
불길이 마을 광장을 훑고 지나갔다.
열기가 전차의 장갑판까지 밀려왔다.
사람들의 비명이 더 커졌다.
나는 전차를 몰아 그대로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울타리가 궤도에 부서지며 튕겨 나갔다.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광장 한가운데, 한 여자가 아이들을 등 뒤로 감싸고 있었다.
짧은 검을 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을을 지키려는 건가.)
그 여자 앞으로 아이들이, 아니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족히 열 명은 넘어 보였다.
귀가 뾰족한 아이, 이마에 작은 뿔이 난 아이, 고양이 귀를 가진 어린아이까지.
여자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결기가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검을 쥔 자세는 서툴렀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이들을 등지고 선 그 뒷모습이 눈에 박혔다.
(저 사람은… 도망칠 수 있는데도 안 가고 있어.)
나는 조종 레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용이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 상병, 정신 차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왔다.
손끝이 조종 레버 위에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포탑이 돌아갔다.
끼기긱—
낡은 유압장치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냈다.
나는 조준경을 통해 용의 몸통을 겨눴다.
조준선이 흔들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맞아도 될까. 실탄 두 발뿐인데.)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쿠웅—
첫 발이 용의 옆구리를 때렸다.
비늘에 부딪혀 불꽃이 튀었다.
용이 고개를 돌려 나를, 아니 전차를 노려봤다.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형광처럼 빛났다.
(반응이… 별로 없어.)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용의 시선이 정면으로 나를 향했다.
그 눈빛에는 분노도, 두려움도 아닌 어떤 무심함이 있었다.
마치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그냥… 방해물로 보는 건가.)
그 생각이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용이 다시 입을 벌렸다.
이번엔 그 방향이 나였다.
나는 급하게 전차를 옆으로 돌렸다.
궤도가 진흙을 튀기며 미끄러졌다.
화르르르—
불길이 아슬아슬하게 전차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장갑판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계기판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삐이- 삐이-
(온도 상승. 이러다 못 버텨.)
나는 두 번째 실탄을 장전하며 이를 악물었다.
남은 건 한 발.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 시야가 흐려졌다.
손등으로 대충 닦아냈다.
(집중해. 지금 놓치면 끝이야.)
조준경 안에서 용의 몸통이 다시 잡혔다.
하지만 그 순간, 용의 고개가 다른 방향으로 꺾였다.
그 짧은 순간, 여자가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은아! 하늬야! 뒤로!"
아이들이 우르르 몸을 낮추며 뒤로 밀려났다.
용의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향했다.
(안 돼.)
나는 이를 악물고 조종 레버를 끝까지 밀었다.
전차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용과 아이들 사이, 정확히 그 자리로.
엔진이 한계까지 비명을 질렀다.
궤도 아래로 진흙과 잔불이 튀어 올랐다.
포신이 용을 향해 다시 겨눠졌다.
(맞아라, 제발.)
손끝이 발사 스위치 위에서 멈췄다.
용이 거대한 앞발을 들어 올렸다.
그 발톱이 전차의 장갑판을 향해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
발톱 끝의 검붉은 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피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