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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무도회 사건이 있은 지 열흘이 지난 어느 오후, 강도현의 저택 대문 앞으로 왕실 문양이 새겨진 마차 한 대가 도착했다. 바퀴 소리가 자갈길 위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고, 창밖으로 그 소리를 들은 하인들이 하나둘 창문에 매달려 밖을 내다보았는데, 마차의 문짝에 새겨진 금빛 문양—왕실의 상징인 사자와 검이 교차한 그 문양을 알아본 순간 저택 전체에 순식간에 긴장이 감돌았다. 마차에서 내린 관리들은 하나같이 짙은 청색 관복을 걸치고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철이 들려 있었는데, 대문을 지키던 하인이 안절부절못하며 안으로 뛰어들어가 소식을 알리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저택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도현은 서재에서 그들을 맞았다. 관리들이 내민 서류에는 도현의 이름과 함께 '폭력 혐의'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고, 그 글자를 눈으로 확인한 순간 도현은 잠시 숨을 삼켰다. "강도현 자작. 열흘 전 무도회에서 한도윤 공자에게 위협적인 언사를 하며 손을 들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다수 접수되었습니다." 관리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으나, 그 말투 어딘가에는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듯한 냉랭함이 배어 있었고, 도현은 그 냉랭함을 마주하며 속으로 되물었다. '……손을 들었다니. 내가 언제……' 도현은 그날 밤의 기억을 되짚었다. 서지아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가 그의 손목을 거칠게 쳐냈고, 그게 전부였다. 한도윤에게 손을 든 적은 없었고, 위협적인 말을 뱉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서류에는 여러 명의 이름이 목격자로 나열되어 있었고, 그중 몇몇은 도현도 익히 아는 얼굴들이었다—평소 서정호와 왕래가 있던 귀족들이었다. '이건…… 처음부터 나를 무너뜨리려던 계획이었던 거야.'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도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고, 그는 관리들 앞에서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저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도현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으나, 관리는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서류를 다시 접었다. "조사가 진행될 것입니다. 그동안 자작가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통보드립니다." 혐의는 다행히도 즉시 구속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그 통보 하나만으로도 저택 전체에 무거운 그늘이 내려앉는 듯했고, 관리들이 마차에 올라 대문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도 도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바퀴 소리가 점점 멀어져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도현은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대체 누가…… 아니, 답은 이미 알고 있잖아.' 서정호. 그 이름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도현의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같은 날 저녁, 한성일보 1면에는 '강도현 자작, 사교계 파혼 자리에서 폭력 행사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르게 도현을 냉혹하고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는데, 그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미리 짜인 각본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기사 말미에는 서정호가 운영하는 서가상회와의 거래 관계를 끊겠다는 여러 상단들의 성명까지 덧붙어 있었다. 서가상회라 불리는 조직은 왕국 내 유통망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거대 상단으로, 곡물과 목재는 물론 옷감과 향료에 이르기까지 왕국 전역의 물류가 그곳을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는데, 도현의 영지가 생산하는 곡물과 목재의 주요 판로 역시 그곳을 거치고 있었기에, 서정호가 마음만 먹는다면 도현 가문의 경제적 숨통을 조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그 주가 지나기도 전에 영지의 상단들로부터 거래 중단을 알리는 서한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핑계를 대며 거래량을 줄이는 정도였으나, 며칠이 지나자 아예 계약 파기를 통보하는 서한이 줄을 이었고, 불과 보름 만에 영지의 수입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다. 서재에 앉아 회계 서류를 넘기던 도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숫자들이 눈앞에서 뒤엉키며 흔들렸고, 어제까지만 해도 흑자였던 항목들이 오늘은 붉은 글씨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 붉은 색이 마치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손가락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하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갈색 머리를 포니테일로 높게 묶은 하윤은 어릴 때부터 도현의 저택에서 자라 그의 동생처럼 여겨져온 존재였는데, 계산과 서류 정리에 있어서는 어떤 상단의 회계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지금껏 저택의 살림을 도맡아 왔다. "도련님, 이대로면 다음 계절 소작료조차 걷지 못할 상황이에요." 차분하지만 단호한 그녀의 말에 도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그 침묵이 방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윤은 그런 도현의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서류 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숫자를 다시 헤아려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자식들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안경 너머로 서류를 훑어보던 소은채가 낮게 욕설처럼 중얼거렸는데, 흑발을 단정하게 땋아 내린 그녀의 청순한 외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투였다. 열 살 무렵부터 도현의 저택에 들어와 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하녀 일을 하며 자라온 소은채는, 사실 가사에는 서툴렀지만 도현을 지키려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강했고, 그 마음이 지금처럼 거친 말투로 튀어나오는 것도 그녀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은채야, 말 좀 곱게 해." 하윤의 잔소리에도 소은채는 코웃음을 치며 서류 뭉치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고, 그 소리가 서재 안을 날카롭게 울렸다. 탁! "곱게 할 상황이 아니잖아. 저 인간들이 우리 도련님을 아예 죽이려고 드는데." 소은채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살의가 담겨 있었고, 그녀는 손끝으로 서류 위의 붉은 글씨들을 신경질적으로 짚어가며 말을 이었다. "서정호 그놈이 서가상회 뒤에서 손 쓴 거 아니겠어? 목격자라는 것들도 다 그놈 밑에서 굽실거리던 얼굴들이잖아." 도현은 그 말에도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이미 자신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지." 도현의 짧은 대답에 은채의 눈썹이 더욱 사납게 치켜올라갔고, 하윤은 그런 은채를 다시 한번 진정시키려는 듯 그녀의 팔을 지그시 붙잡았다. 도현은 그 눈빛을 마주하며 문득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도현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당장 손에 잡히는 해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당 쪽에서 붉은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닥, 파닥— 그 소리에 세 사람 모두 동시에 창밖을 돌아보았고, 도현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저 붉은 빛깔의 날개는, 그가 아는 것과 같다면 결코 좋은 소식을 물고 오는 새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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