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날 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선유하가 탑으로 돌아온 것은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
그녀는 젖은 외투를 벗어 걸며 낮게 숨을 골랐다.
낮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부엌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려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몸도 없는 내가, 그녀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선유하가 냄비에 물을 올리고, 마른 약초 몇 가닥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마녀라고는 해도, 지금의 그녀는 그저 조용히 저녁을 준비하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 평온한 풍경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어쩐지 알고 있었다.
칼질 소리, 물 끓는 소리, 창밖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
그 모든 소리 사이로, 이질적인 소리 하나가 섞여 들어왔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였다.
선유하의 손이 그 순간 멈췄다.
그녀가 반응할 틈도 없이, 검붉은 기운을 두른 형체가 창을 뚫고 들어왔다.
깨진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몇 개는 그녀의 발치까지 튕겨 왔다.
낮에 봤던 그 후드의 남자였다.
후드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낮보다 더 창백했다.
핏줄이 검붉게 부풀어 오른 것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얼굴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졌다.
인간의 것이라기엔 너무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오래된 관 속에서 울리는 소리 같았다.
"마녀. 천 년 전 그 힘, 아직 갖고 있겠지."
선유하가 지팡이를 들며 뒤로 물러섰다.
눈빛이 순식간에 얼음처럼 굳었다.
방금까지 저녁을 준비하던 손이, 지팡이 끝에서 빛나는 술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냐."
그녀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두려움을 감추는 데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마족 총수의 잔당이라고 해두지."
남자의 팔이 검붉게 부풀어 오르며 발톱처럼 뻗어 나왔다.
살이 뒤틀리며 뼈가 늘어나는 소리가 방 안에 그대로 울렸다.
끔찍한 소리였다.
'저건 인간의 몸이 아니다. 마족의 기운을 억지로 눌러 담은 그릇이야.'
분석이 순식간에 끝났다.
동시에 위기감이 밀려왔다.
저 정도로 기운을 억지로 눌러 담았다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었다.
절박한 자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선유하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쳤다.
사령술의 술식이었다.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위한.
낮에 상인에게서 들었던 것처럼, 그녀는 위험을 감지하면 물러서지 않는 성격인 듯했다.
'저건 위험하다. 저 힘을 그대로 쓰면 몸이 버티지 못한다.'
그녀의 몸은 이미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흔적이 그녀의 손끝 떨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 상태에서 강력한 사령술을 강행하면 반동이 그녀를 죽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그걸 말릴 방법이 없었다.
목소리도, 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발, 안전한 쪽을 택해.'
내가 속으로 그렇게 빌었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남자가 먼저 달려들었다.
발톱이 그녀의 어깨를 노렸다.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인간의 반응 속도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궤적이었다.
선유하가 재빨리 몸을 틀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옷깃이 찢어지고, 어깨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피가 배어 나오는 속도와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속도가 거의 동시였다.
그녀가 이를 악물며 뒤로 물러섰다.
다리가 살짝 휘청였다.
그 순간,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움직였다.
몸이 없다는 사실 따위는 그 순간 아무 의미도 없었다.
머리로 판단하기도 전에, 존재 그 자체가 먼저 반응해 버렸다.
의식이, 아니 존재 그 자체가 남자의 팔을 향해 뛰어들었다.
'막아야 한다.'
그 생각 하나만이 전부였다.
계산도, 망설임도 없었다.
닿는 순간, 무언가 터지듯 강한 힘이 뻗어 나갔다.
마치 오랫동안 눌러 두었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남자가 뒤로 튕겨 나가며 벽에 부딪혔다.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방 안의 촛불이 일시에 꺼지고, 대신 알 수 없는 푸른 빛이 잠깐 번쩍였다.
빛은 짧았지만, 방 안 전체를 파랗게 물들일 만큼 강렬했다.
선유하가 그 빛을 향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이건."
그녀의 목소리에 놀람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방금까지 죽음을 각오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다른 종류의 긴장으로 바뀌었다.
남자는 벽에서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팔의 절반이 검게 그슬려 있었다.
살이 타는 냄새가 방 안에 진하게 번졌다.
"이 기운은……"
남자의 눈이 흔들렸다.
두려움이었다.
방금까지 확신에 차 있던 자의 눈에서, 그런 감정이 나올 거라고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그 영혼이……"
그가 말을 채 끝내지 못한 채 창밖으로 몸을 던져 도망쳤다.
깨진 창틀을 넘어가는 그의 몸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방 안이 다시 정적에 잠겼다.
깨진 유리 조각과, 바닥에 튄 핏자국만이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증명하고 있었다.
선유하는 어깨의 상처를 움켜쥔 채, 여전히 방금 그 빛이 남았던 자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방금까지 이어진 긴장이 아직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듯했다.
"윕이…… 나를 도왔다고?"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그저 이름 모를 힘, 관찰의 대상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힘이 자신을 도왔다는 사실이, 그녀의 사고 체계 안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숨기려던 힘의 흔적이, 방금 그녀의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러면 안 됐는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몸을 던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계산이라는 걸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선유하가 다치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선유하의 눈동자에는 이제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깊은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깨진 유리창, 부서진 벽, 꺼진 촛불, 그리고 방금까지 푸른 빛이 남아 있던 자리.
그녀의 시선이 그 모든 것을 하나씩 훑고 지나갔다.
"너, 대체 뭐야."
그 물음이,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위기의 시작이라는 걸 나는 직감했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알아내야만 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눈빛을 마주할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