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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포효가 다시 울리는 순간, 반 전체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누군가는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고, 누군가는 냅다 뛰기 시작했는데 방향조차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고, 또 누군가는 옆에 있는 애를 붙잡고 "야, 야 어떡해" 하는 말만 반복했다. 사방에서 비명과 발소리,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뒤섞여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 혼란 속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시스템 창을 곱씹고 있었다. '크래프트, 크래프트라...' 하고 되뇌면서, 나는 반사적으로 시야 한쪽에 떠 있던 스킬 아이콘을 손끝으로 눌러보았다. [크래프트 목록을 확인합니다.] [제작 가능 항목: 목재 방벽, 함정(단순형), 화살촉, 간이 텐트, 화로, 목검, 사다리...] 그 목록이 펼쳐지는 순간, 나는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 예상보다 항목이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목재 방벽부터 시작해서 함정, 화로, 목검까지,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항목이 이어졌는데, 그 순간 든 생각은 '이게, 되네...?' 하는 반쯤 놀람 반쯤 의심이었다. 물론 화려한 마법을 쏘는 것에 비하면 당장의 전투력은 형편없어 보였지만, 적어도 뭔가 만들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손이 떨렸다. 남들은 불덩이를 쏘고 얼음창을 만든다는데 나는 목검이나 깎고 있어야 하나 싶어 순간 억울한 기분도 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 억울함 따위를 따질 여유는 없었다. [재료: 주변 자원(나무, 돌, 흙 등)을 자동으로 인식하여 소모합니다.] [제작 시간: 항목에 따라 차등 적용됩니다.] 그 설명을 읽으며 나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야영지로 정한 공터 주변에는 나무가 제법 우거져 있었고, 발밑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재료는 부족하지 않겠다' 하는 계산이 섰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저 포효 소리의 주인이 언제 여기까지 도달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방벽을 세우는 데 얼마나 걸릴지도 가늠이 안 됐으니까. 시간과 재료,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방벽이고 뭐고 다 무의미해질 거라는 불안감이 뒷골을 스쳤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하고 누군가 다급하게 물었는데, 돌아보니 강다홍이었다. 갈색 숏컷을 흔들며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짜증과 불안이 섞여 있었고, 두 손은 이미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방벽 만들려고" 하고 대답하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벽? 지금 저게 오고 있는데 방벽 짓는다고 뭐가 되겠냐" 하고 그녀가 쏘아붙였지만, 나는 그 말에 대꾸할 겨를도 없이 손을 뻗어 스킬을 발동시켰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설명보다 결과로 보여주는 게 빠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크래프트: 목재 방벽]"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자, 놀랍게도 발밑의 나무들이 순식간에 잘려나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눈앞에서 뚝딱뚝딱 조립되기 시작했다. 톱질 소리도 없고 못 박는 소리도 없이, 그저 마법처럼 목재가 서로 맞물려 들어가는 광경이었는데, 나뭇조각들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맞춰지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 빠른 배속으로 조립 영상을 재생시켜놓은 것 같았다.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어른 키만 한 방벽 한 조각이 완성됐다. "...개사긴데?" 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방벽 하나를 짓는 데 든 시간이 체감상 오 초도 안 됐으니까. 물론 아직 방벽 한 조각으로는 야영지 전체를 감쌀 수 없었지만, 이 속도라면 얼마든지 계속 지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손끝에 남은 감각은 마치 방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웠는데, 그것이 스킬 사용의 여파인지 단순한 흥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다홍도 그 광경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는데, 곧 표정을 바꾸며 소리쳤다. "뭐 하냐, 계속 만들어! 내가 시간 벌게!" 하고 그녀는 목검조차 없는 맨손으로 앞으로 뛰쳐나갔는데, 그 무모함에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저게 정말 사람 팔뚝만 한 어금니를 가진 놈 앞에서 맨손으로 버틸 수 있는 몸짓인가 싶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갈라졌다. "잠깐, 검도 없이 어쩌려고" 하고 소리쳤지만 그녀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갈색 숏컷이 바람에 휘날리는 뒷모습만 보였는데, 그 뒷모습에는 망설임 같은 게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나는 급히 목록을 다시 뒤져 목검 항목을 찾아냈다. [크래프트: 목검] 주변 나무 한 그루가 순식간에 깎여 나가며 매끄러운 목검 한 자루가 손에 쥐어졌다. 나무껍질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쳤고, 손바닥에는 아직 온기 같은 게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방금까지 나무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것을 강다홍을 향해 던지듯 외쳤다. "이거라도 써!" 하고 소리치자, 그녀는 한 손으로 그것을 척 받아채더니 무게를 가늠하듯 몇 번 휘둘러보고는 씨익 웃었다. "오, 쓸만한데?" 하는 그 웃음이 상황에 안 맞게 태평해서, 나는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죽고 사는 문제인데 저 여자는 무기 품평을 하고 있다니, 강심장인 건지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 사이 포효의 주인이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온몸이 짙은 갈색 털로 덮인 커다란 멧돼지형 몬스터였다. 어금니가 사람 팔뚝만 했고, 눈은 핏빛으로 번뜩였으며, 콧구멍에서는 뜨거운 숨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흙먼지가 풀썩 일었다. 그것이 땅을 박차고 돌진해오는 소리가 지진처럼 울렸는데, 발굽이 지면을 찍을 때마다 내 발밑까지 진동이 전해질 정도였다. 나는 그 순간 다급하게 시스템 창을 다시 열었다. [크래프트: 함정(단순형)] 놈이 달려오는 경로 바로 앞에 얕은 구덩이가 순식간에 파였고, 그 위로 흙과 나뭇가지가 덮이며 위장됐다. 위장이 끝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이삼 초, 놈이 그 거리를 좁히는 시간과 거의 비슷했으니 사실상 도박에 가까운 타이밍이었다. 놈은 그 구덩이를 미처 보지 못한 채 그대로 앞다리를 헛디뎠고, 크게 균형을 잃고 옆으로 굴렀다. 콰크작!! 놈의 몸이 옆으로 넘어지며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다홍이 목검을 휘두르며 뛰어들었다. 퍼억! "좋았어!" 하고 그녀가 소리치며 놈의 옆구리를 연달아 후려쳤는데, 그 타격이 제법 묵직했는지 몬스터가 고통스러운 울음을 내질렀다. 목검이라는 게 원래 저렇게 사람 팔뚝만 한 짐승을 아프게 할 수 있는 물건이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그녀의 팔놀림에는 헛스윙이 없었다. 나는 그 틈에도 계속해서 방벽을 이어붙였고, 조각조각 완성되던 목재 벽들이 어느새 야영지 절반을 둘러싸는 형태로 자리를 잡아갔다. 방벽 하나를 세울 때마다 팔이 아니라 정신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느낌이었는데, 이게 마나를 쓰는 감각인가 싶으면서도 확실하지 않아 그냥 계속 손을 놀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구서연이 어느 순간 내 옆으로 다가왔는데, 그녀의 시선이 완성되어가는 방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금발 머리 아래로 보이는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방벽의 이음새를 하나하나 훑고 있었다. "이거...너 혼자 다 만든 거야?" 하고 그녀가 물었는데, 그 목소리에서 놀람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 뭐...스킬이 그런 거라서" 하고 대답하자, 그녀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쓸만한 능력이었네" 하고 그녀가 중얼거렸는데,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학교에서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 없던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인정 비슷한 말을 들은 셈이었으니까. 원래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라 얼굴만 알던 사이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통성명 이상의 말을 섞게 될 줄은 몰랐다. "...근데 얼마나 더 만들 수 있어?" 하고 그녀가 다시 물었는데, 그 질문에는 순수한 궁금증보다 뭔가 다른 계산이 섞여 있는 듯했다. "모르겠어, 아직 마나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감이 안 잡혀서" 하고 대답하자,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다시 방벽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방벽 너머 숲속에서, 방금 쓰러진 몬스터보다 훨씬 더 큰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뭇가지들이 그 그림자의 움직임에 맞춰 부러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고, 그 소리는 아까 넘어진 멧돼지형 몬스터가 만들어낸 소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고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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