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김덕수라는 노집사는 첫 대면부터 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태도를 보였다. 허리는 굽었지만 눈빛만은 매섭게 살아있는 노인이었는데, 그 시선이 어찌나 집요하던지 나는 몇 번이나 속으로 뜨끔했다. 마치 여섯 살짜리 몸속에 들어앉은 서른 줄의 영혼을 꿰뚫어보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설마 이 노인, 내가 몸을 갈아탔다는 걸 알아챈 건 아니겠지.' 그런 불안한 생각이 스치는 와중에도 나는 손끝 하나 떨지 않고 태연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여섯 살짜리가 어른처럼 담담한 척하는 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지는 알았지만, 이제 와서 어리광이나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 건가?" 여섯 살짜리 입에서 나오기엔 조금 어른스러운 말투였지만, 다행히 김덕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절제된 어조로 답했다. "도련님께서는 우선 마법의 기초와 가문의 예법, 그리고 검술과 승마를 익히셔야 합니다."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항목을 나열하는 모습이 마치 오랫동안 준비해온 대답 같아서, 나는 속으로 이 노인의 성실함에 조금 감탄했다. "대현제국의 귀족이라면 최소한 하나의 속성 마법에 재능을 보여야 하며, 그것이 곧 가문 내 위치를 결정합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보를 정리했다. '이 세계는 마법이 신분과 직결되는군. 판타지 소설 클리셰치고는 나쁘지 않은데.' 전생에 즐겨 읽던 웹소설들의 설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적어도 뭘 준비해야 할지 감이 잡히는 세계였다.
"그럼 검술은 언제부터 배우는 건가?" 내가 다시 묻자 김덕수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검술은 여덟 살부터가 정석입니다. 지금은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나는 그 대답에 속으로 안도했다. 여섯 살짜리 몸으로 검을 휘두르는 상상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급할 것 없지. 천천히 가자.'
그날 오후, 나를 담당하게 된 메이드가 방으로 찾아왔다. 금발에 벽안을 가진 젊은 여성이었는데, 나이는 열여덟 정도로 보였고 이름은 설아라고 했다. 흰 앞치마와 단정하게 묶은 머리카락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에 은은하게 빛났다. "한별 도련님, 오늘부터 제가 도련님의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하자, 나는 그 정중함에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애써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백작가 도련님답게 보일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냥 무게를 잡고 앉아있는 게 최선이었다.
"고맙네.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되겠나?" 내가 묻자 설아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도련님." "마법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건가? 그냥 손을 흔들면 불이 나오고 그런 건가?" 조금 유치한 질문이었지만, 이건 진짜로 알고 싶은 부분이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마법이 뭔지 제대로 알아야 했으니까. 그 질문에 설아는 옅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마력이란 몸속에 흐르는 기운으로, 대개 여덟 살 전후로 각성합니다. 각성한 속성에 따라 화염, 냉기, 대지, 바람 등으로 나뉘며, 각성 이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마법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다만 마력의 흐름을 느끼는 감각을 미리 익혀두면, 각성 이후 성장 속도가 확연히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조금 흥미가 돋았다. '그러니까 사전 훈련이 가능하다는 거군. 게임으로 치면 스탯 찍기 전에 스킬트리 미리 봐두는 셈인가.' "그럼 도련님의 아버님이신 백작님은 어떤 속성인가?" "백작님께서는 화염 계열의 최상급 재능자로 '화염의 현자'라는 별호까지 얻으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스물넷에 백작이면서 별호까지 있다니, 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인가 진짜.' 전생 같으면 그 나이엔 취업 준비나 하고 있었을 텐데, 이쪽 아버지는 대현제국에서 손꼽히는 마법사이자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문득 그 아버지라는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졌지만, 아직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설아와 김덕수는 이후 며칠간 교대로 나에게 이 세계의 구조를 알려주었다. 아침에는 김덕수가 가문의 역사와 예법을, 오후에는 설아가 일상적인 마법 상식과 사교계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었다. 그 정보들이 쌓일수록 나는 대현제국이라는 나라가 상당히 복잡한 정치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황실을 중심으로 여러 대귀족 가문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낙안 백작가는 그중에서도 변방을 지키는 무가 계열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머니 강윤희가 황제의 딸이라는 사실도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 순간 나는 하마터면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다. 뜨거운 찻잔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잔을 내려놓았다. '뭐? 어머니가 공주였다고?' 그러니까 나는 백작가의 후계자 후보인 동시에 황실의 외손이라는 얘기였고, 이건 확실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운 신분이었다. 김덕수는 그런 내 반응을 보며 담담하게 덧붙였다. "강윤희 님께서는 공주의 신분을 내려놓고 백작가에 시집을 오셨습니다만, 그로 인해 낙안 백작가는 황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련님의 위치를 더욱 중요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황위 계승과도 관련이 있는 건가?"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김덕수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직접적인 계승권은 없습니다만, 외척으로서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 삶은 평범한 이세계 전생물치고는 시작부터 너무 판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서는 그냥 회사와 집만 오가던 평범한 인생이었는데, 여기서는 태어난 순간부터 정치판 한복판에 던져진 셈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김덕수가 나를 마구간으로 데려갔다. 마구간에 가까워질수록 짙은 건초 냄새와 말들의 콧숨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고, 아침 공기 특유의 서늘함이 뺨에 와닿았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긴 초록색 머리를 가진 훤칠한 남자였는데, 겉보기엔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지만 그 눈빛에 담긴 세월의 깊이는 그 나이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수십 년의 경험이 그 눈동자 안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낙안 기사단 부단장, 차은호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도련님의 승마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가 정중하게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속으로 살짝 긴장했다. '승마라니, 나는 전생에 자전거도 잘 못 탔는데.' 손바닥에 닿는 그의 손은 단단했고, 오랜 세월 검을 쥐어온 사람 특유의 굳은살이 느껴졌다. "부단장이라니, 대단한 직함이군. 그런데 나 같은 애송이를 직접 가르쳐도 되는 건가?" 내가 능청스럽게 묻자 차은호는 옅게 웃으며 답했다. "도련님의 승마 교육은 백작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부단장이 맡는 것이 이례적인 일은 아닙니다."
그때 마구간 안쪽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는데, 시선을 돌린 나는 그 존재의 정체를 확인하고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거대한 짐승이 붉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통은 어지간한 마차보다 크고, 접혀있는 날개는 펼치면 마구간 천장을 다 가릴 듯했다. 발톱은 사람 손가락 굵기만 했고, 부리는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다. "이 아이는 제 종마인 천익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차은호가 웃으며 말했지만, 그 거대한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나는 여섯 살짜리 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면서, 이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천익이라는 이름의 그 짐승은 붉은 눈동자를 천천히 굴리며 나를 관찰했고, 그 시선 속에는 단순한 짐승의 호기심과는 다른, 뭔가 지적인 판단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눈빛을 마주한 채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