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청하촌의 아침은 닭 울음소리보다 소이의 발소리로 시작됐다.
마루를 가로지르는 작은 발이 방문 앞에서 멈추는 소리, 그리고 문틈으로 삐죽 들어오는 얼굴. 나는 그 순서를 이미 삼 년째 듣고 있어서, 눈을 감고도 소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뭔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짓는, 미간을 살짝 좁힌 그 얼굴.
"스승님, 아직 자요?"
나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안 자."
"근데 왜 눈을 감고 있어요?"
"생각 중이었어."
"무슨 생각요?"
"아침에 뭘 할지."
"그거 지금 생각 안 해도 되잖아요. 저 배고파요."
소이는 그 말을 믿지 않는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와 이불 옆에 쪼그려 앉았다. 열두 살짜리 아이답지 않게 표정에 변화가 적은 편이었는데, 나는 그걸 늘 '조용한 성격'이라는 말로 정리해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가끔 그 무표정을 걱정했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종종 나를 붙잡고 "저 아이, 원래 저렇게 말이 없었나요?" 하고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똑같이 대답했다.
"원래 그래요."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니까.'
삼 년 전, 이 마을 어귀 도랑 옆에서 이 아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비를 흠뻑 맞고 앉아서, 울지도 겁내지도 않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눈. 나는 그때 그 눈이 이상하게 낯익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단지 내가 그 무렵 너무 많은 아이를 봐서 생긴 착각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눈이 지금도 그대로였다. 나이만 조금 더 들었을 뿐.
"오늘 국은 뭐예요?"
"된장국."
"어제도 된장국이었잖아요."
"내일도 된장국일 거야."
"모레는요?"
"모레도."
소이가 한숨을 쉬었다. 나이에 안 맞게 어른스러운 한숨이었다. 마치 자기가 데리고 있는 어른이 좀 부족하다는 걸 이미 다 알고,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 사람의 한숨.
"스승님은 요리를 못하니까 그런 거예요."
"할 수 있어."
"된장국밖에 못하잖아요."
정확한 지적이었으므로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일으켜 이불을 걷었다.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마당 가득 퍼져 있었고, 닭들이 벌써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세수를 하러 나갔고, 소이는 부엌으로 들어가 솥에 물을 받았다. 이 정도 손발은 맞아 있었다.
마을 우체부가 사립문을 두드린 건 그 직후였다. 늘 오전 중반쯤에 오던 사람인데, 오늘은 평소보다 일렀다. 그것부터가 뭔가 이상한 조짐이었다는 걸,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청하촌, 한도윤 선생 댁 맞습니까?"
우체부가 내민 것은 두 가지였다. 해동 왕립학술원의 인장이 찍힌 두꺼운 서류 봉투 하나, 그리고 손글씨로 주소를 쓴 얇은 편지 하나. 나는 아침상을 물리기도 전에 마당에 서서 봉투를 뜯었다. 소이가 부엌 문틀에 붙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서류의 첫 줄이었다. 인쇄체로 또렷하게 박힌 글자.
『생명연성학의 어머니 서하은 박사, 이번 학기 학술원 명예 교수로 위촉.』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 제자였던 아이가, 그것도 가장 사고를 많이 쳤던 아이가 학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이었으니까. 서류에는 위촉 경위와 그녀가 이룬 업적이 몇 줄로 요약되어 있었다. 생명연성 분야의 오랜 난제를 해결했다는 것, 그로 인해 학술원 내 반대 세력마저 손을 들었다는 것. 딱딱한 문장들이었지만 나는 그 사이에서 그녀가 얼마나 오래 버텼을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해냈구나.'
짧게, 그리고 뜻밖에 뭉근한 뿌듯함이 올라왔다. 실험 도구를 세 번이나 태워먹고, 밤새 울면서 논문을 다시 쓰던 그 아이가. 나는 서류를 접어 놓고 나머지 편지를 펼쳤다. 익숙한 필체였다. 여전히 각이 진, 힘을 너무 준 글씨. 마치 종이를 뚫을 것처럼 눌러 쓰는 습관은 칠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실은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 저도 청하촌에 도착해 있을 것 같습니다. 뵙고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문장은 짧았다. 평소 그녀답지 않게 짧았다. 원래 서하은은 편지 한 장에도 근황을 세 문단씩 채워 넣는 성격이었다. 실험이 잘 안 됐다는 얘기, 학술원 사람들이 어떻다는 얘기,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묻는 얘기까지. 그런데 이번 편지는 딱 두 문장이었다.
나는 그 짧음이 마음에 걸렸다.
편지를 다시 읽었다. 날짜를 확인했다. 발송일이 벌써 나흘 전이었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마차 한 대가 마을 어귀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스승님?" 소이가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누구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을 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편지 속 그 짧은 문장이,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오는 사람의 문장 같지는 않았다.
"스승님, 왜 그래요? 무서운 얘기예요?"
"아니야."
"근데 왜 얼굴이 그래요?"
"무슨 얼굴."
"화난 사람 얼굴요."
나는 편지를 접었다. 대답 대신 마당으로 나갔다. 소이가 뒤따라 나오며 다시 물었다.
"누구예요, 왜 대답 안 해요?"
마차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청하촌처럼 작은 마을에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잘 손질된 마차였다. 바퀴 소리가 흙길을 따라 또각또각 울렸고, 그 소리에 마을 아이들 몇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마차가 사립문 앞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낯익은 실루엣이 내려섰다.
칠 년 전보다 훨씬 화려한 옷을 입고, 훨씬 지친 얼굴을 한 서하은이었다. 자수가 놓인 겉옷은 그녀의 새 지위에 맞는 것이었지만, 옷깃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며칠은 제대로 못 잔 사람의 것이었다. 눈 밑이 거뭇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선생님."
그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예전 그대로였다. 다만 그 목소리 끝에 붙은 떨림 같은 것은, 예전에는 없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