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도성 남쪽 시장으로 가는 길은 하루가 걸렸다. 초행길도 아니었건만 이번만큼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도윤은 창밖을 내다보았고, 그때마다 해가 얼마나 더 남았는지를 가늠했다.
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향료 상인들의 좌판이 줄지어 늘어선 거리에서, 도윤은 강혁이 부탁한 물건들을 하나씩 손으로 짚어가며 확인했다.
"이건 서역에서 들여온 침향인데, 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상인 하나가 목청을 높이며 물건을 내밀었다.
도윤은 그것을 코끝에 갖다 대는 대신 무게를 가늠하듯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진품이라면 이 정도 무게가 나와야 했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좌판으로 걸음을 옮겼다.
밤이 깊어지자 상인들의 흥정 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러나 도윤은 여전히 등불 아래에서 품목을 하나하나 대조하고 있었다.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해강성 쪽으로, 정확히는 그 저택 마당 한 켠에 앉아 있을 서리 쪽으로.
'이틀뿐이다.' 그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강혁에게 그렇게 약속했고, 서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이틀이면 돌아온다고, 밥은 꼭 챙겨 먹으라고, 그렇게 몇 번을 다짐받듯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되뇔수록 불안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상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멀어지고, 도윤의 손끝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이 늘어났다.
'괜찮을 거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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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해강성 저택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리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현관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요원들도 별일 아니라 여겼다. 서리는 종종 식사를 미루는 습관이 있었고, 며칠 전에도 한 끼를 걸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조용히 죽 한 그릇을 비운 적이 있었다.
"식사하셔야 합니다." 신참 요원 하나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서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세우고 앉은 채, 문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마당을 지나 담장 너머, 도윤이 떠난 길 쪽이었다.
요원들은 서리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도윤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이런 조짐이 조금씩 있었다. 그러나 늘 도윤이 곁에 있었기에, 이렇게 오래 지속된 침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나절이 지나고, 다시 반나절이 지나도록 서리는 자세를 거의 바꾸지 않았다.
"저희가 특별히 준비한 겁니다." 다른 요원이 값비싼 궁중식 요리를 상 위에 올렸다. 전복과 인삼이 들어간 죽이었다. 그 요원은 나름대로 정성을 쏟았다고 자부하는 눈치였다. 궁중 연회에나 오를 법한 재료들을 구해다가 새벽부터 끓인 것이었다.
서리는 그릇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재료의 값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윤이 지어준 밥과 다른 이가 지어준 밥은, 서리에게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였다.
"입맛이 없으신가 봅니다." 요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시겠지요, 특급 개체가 워낙 예민하다고들 하니까요." 또 다른 요원이 낮게 맞장구쳤다. 그 말투에는 은근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사람 취급을 하면서도, 어딘가 짐승 다루듯 하는 시선이었다.
그들은 서리의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굶는다고 큰일이 나겠냐는, 안일한 판단이 그들 사이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님이 오시면 알아서 드시겠지요." 신참 요원이 중얼거리며 죽 그릇을 다시 부엌으로 물렸다. 아무도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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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저택 마당 한구석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처음에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도 되지 않는 실금이었다. 아무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바닥이 낡아서 그런가 봅니다." 요원 하나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는 발끝으로 균열 위를 슬쩍 밟아보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듯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균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아주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실금이었던 것이 어느새 손가락 한 개가 들어갈 만큼 벌어졌고, 그 틈새에서는 흙먼지가 아니라 서늘한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눈여겨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강혁에게 보고가 올라간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보고를 받은 강혁의 표정이 잠시 굳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서신을 쓰라 지시했을 뿐, 직접 확인하러 나서지는 않았다.
강혁은 곧바로 도윤에게 서신을 띄웠다. 그러나 서신을 쓴 요원의 표현은 정중하지 않았다.
"밥투정 하시는 것 같으니 대충 서둘러 오라고 전해주게." 요원이 서신을 쓰며 웃었다. 그에게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유별난 애완동물의 응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강혁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도, 그 밑에 자신의 사견을 슬쩍 덧붙였다. 별일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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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은 저녁 늦게 도윤에게 도착했다. 강혁의 인장이 찍혀 있었지만, 내용은 다른 요원이 대필한 것이었다. 도윤은 등불 아래에서 봉투를 열었다. 종이를 펼치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리 비운 사이 밥투정이 심하다더군. 이틀 채우지 말고 내일 아침 일찍 오는 게 낫겠소." 강혁의 문장 밑에, 처음 보는 요원의 손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어차피 며칠 굶어도 안 죽으니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사료됩니다만."
도윤은 그 마지막 문장을 읽고 손이 굳었다. 등불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로, 순간 주변의 모든 소음이 멀어졌다.
'며칠 굶어도 안 죽는다니.' 그는 그렇게 되뇌며 종이를 다시 접었다. 화가 나기보다 먼저 두려움이 앞섰다.
서리는 어릴 적부터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유난했다. 도윤이 지어준 밥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았고, 배고픔을 느끼는 순간부터 감정이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였다.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도윤은 그저 입이 짧은 아이라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서리에게 굶는다는 것이 단순한 허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신호였다.
'그 애는 배가 고파지면 다른 것을 잃는다.' 도윤은 오래전 그렇게 짐작했다. 정확히 무엇을 잃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리가 하루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틴 적이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저택의 요원들은 알지 못했다.
'이건 밥투정이 아니다.' 도윤은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이 든 순간, 그는 이미 짐을 다시 싸고 있었다. 향료 상자들을 대충 마차에 던져 넣고, 상인들과의 남은 흥정은 다음으로 미루라는 말만 남긴 채 서둘러 채비를 마쳤다.
밤길을 되짚어 나가려던 그때, 마당에 있던 강혁 소속 전령이 뛰어들어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말을 잇기도 전에 어깨를 들썩였다.
"급보입니다." 전령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저택 마당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담장 한쪽이 이미 기울었답니다."
도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이틀이라는 말이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그는 전령의 어깨를 붙잡았다.
"언제부터입니까." 도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오후부터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는데, 방금 전에는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큼 벌어졌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윤은 이미 마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채찍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향료 상자들이 짐칸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서리야.' 그는 그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밤길을 내달렸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이제는 반나절도 남지 않은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저택의 담장이 무너지기 전에, 그보다 먼저 무너질 것이 있다는 것을 도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