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같은 시각, 영지 북쪽 경계에서는 다른 종류의 위협이 자라나고 있었다.
밤바람이 숲의 나뭇잎을 흔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도현은 검을 허리에 찬 채 순찰조 다섯 명과 함께 숲 어귀에 서 있었다.
발밑의 흙은 아직 낮의 열기를 조금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열기도 곧 밤의 냉기에 밀려 사라질 것이었다.
냄새가 났다.
비릿한 냄새.
짐승의 피와는 다른, 썩은 듯한 악취였다.
도현은 코를 찌푸렸다.
숲의 냄새는 익히 알고 있었다.
젖은 흙, 썩은 나뭇잎, 이끼 낀 돌.
그런데 지금 코끝에 닿은 것은 그런 익숙한 냄새들과는 분명 달랐다.
"또 나타났군요."
순찰대장이 낮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익숙함과 지친 기색이 함께 섞여 있었다.
"몇이나 됩니까."
"셋, 아니면 넷쯤 될 겁니다."
"지난달보다 많군."
"예. 확실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도현은 검을 뽑았다.
달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흐릿한 빛을 냈다.
칼날은 차가웠다.
손에 익은 무게였다.
마물.
이 세계에서 마물은 마력이 뒤틀린 짐승, 혹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청하 영지는 왕국 북쪽 변경에 위치해 있어 마물의 출몰이 잦았다.
다른 영지에서는 한 해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일이 이곳에서는 한 달에 몇 번씩 반복되었다.
그래서 청하 가문은 몰락한 뒤에도 검을 놓을 수 없었다.
검을 놓는 순간, 영지 자체가 마물의 먹잇감이 될 것이었다.
숲 속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웅—
땅이 미약하게 울렸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었다.
순찰대원 하나가 창을 고쳐 쥐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젊은 얼굴이었다.
아직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눈치였다.
"침착해."
도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나이보다 훨씬 단단했다.
"눈으로 좇지 말고, 소리로 위치를 잡아. 시선은 오히려 널 늦게 만들어."
순찰대원은 마른 침을 삼켰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 형체 하나가 튀어나왔다.
몸통은 늑대와 비슷했지만, 등에는 뼈처럼 단단한 돌기가 솟아 있었다.
눈은 붉게 빛났다.
붉은 눈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했다.
"블랙팽입니다."
순찰대장이 낮게 외쳤다.
"조심해. 등의 돌기에 마력 저항이 있어."
"마법으로는 안 통한단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검으로 정면을 노려야 합니다."
도현은 정면으로 마주 섰다.
발끝에 무게를 조금 더 실었다.
검을 든 손목이 살짝 돌아갔다.
블랙팽이 낮게 몸을 낮췄다.
근육이 팽창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다음 순간 튀어 올랐다.
도현은 몸을 옆으로 틀었다.
검이 허공을 갈랐다.
블랙팽의 옆구리를 스쳤지만 깊게 베지는 못했다.
짐승이 다시 몸을 돌려 도현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침이 이빨 사이로 흘러내렸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림자가 숲에서 튀어나왔다.
"넷입니다!"
순찰대원이 외쳤다.
도현의 등 뒤로 순찰대원들이 창을 세우고 진형을 갖췄다.
발소리가 겹치며 일렬로 늘어섰다.
하지만 마물 넷을 상대하기엔 인원이 부족했다.
숫자로 보면 승패는 이미 반쯤 기울어 있었다.
도현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겁이 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끝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소리가 귓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블랙팽이 다시 뛰어올랐다.
도현은 검을 낮게 쥐고 자세를 잡았다.
무릎이 살짝 굽혀졌다.
검과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숲을 울렸다.
쇠와 뼈가 맞부딪는 둔중한 소리였다.
도현의 검이 짐승의 목을 정확히 베었다.
검은 피가 흩뿌려졌다.
비릿한 냄새가 한층 더 진해졌다.
하지만 남은 셋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순찰대원 하나가 옆구리를 물렸다.
비명이 숲을 갈랐다.
날카롭고 짙은 비명이었다.
"버텨!"
도현이 외쳤다.
그는 검을 크게 휘둘렀다.
한 마리가 뒤로 밀려났지만, 나머지 두 마리는 여전히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땅을 박차는 발톱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도현의 어깨에 얕은 상처가 생겼다.
피가 흘러내렸다.
셔츠가 금세 젖어들었다.
통증이 번졌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자세를 다시 잡았다.
통증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물러서지 마라!"
순찰대장이 창으로 한 마리의 다리를 꿰뚫었다.
짐승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쓰러진 몸이 흙바닥에 무겁게 떨어졌다.
마지막 한 마리가 도현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붉은 눈이 그를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도현은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짐승의 목덜미와 검이 정확히 부딪쳤다.
짐승이 쓰러졌다.
숲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남은 것은 거친 숨소리와, 흙에 스며드는 검은 피의 냄새뿐이었다.
도현은 숨을 몰아쉬며 검을 늘어뜨렸다.
어깨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팔이 무거웠다.
"괜찮으십니까, 도현 님?"
"괜찮다. 다친 사람은?"
"경상입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순찰대원 하나가 옆구리를 감싸 쥔 채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괜찮나."
"예, 도현 님. 살짝 물렸을 뿐입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도가 잠시 어깨를 스쳤지만, 곧 다시 무거운 생각이 그 자리를 채웠다.
도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흐릿한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 차가워지고 있었다.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째다."
순찰대장이 낮게 말했다.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마물의 출몰 빈도가."
"경계선의 결계는."
"약해지고 있습니다. 손볼 여력이 없어서요."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영지 방어선이 위험한 상태로군."
"게다가 남작가의 재정으로는 용병을 더 고용하기도 어렵습니다."
순찰대장의 목소리에는 원망보다 피로가 더 짙게 묻어 있었다.
그도 이 상황을 오래 견뎌온 사람이었다.
"인원을 더 늘릴 수 없다면, 결계라도 다시 세워야 할 텐데."
"그마저도 마법사를 부르는 비용이 문제입니다."
도현은 검을 검집에 넣었다.
걸음을 옮기며 저택 쪽을 바라보았다.
저택의 불빛이 멀리서 보였다.
동생 도윤의 방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작은 불빛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도현은 문득 오늘 낮 정원에서 본 것을 떠올렸다.
돌멩이가 스스로 굴러가고, 원을 그리며 돌던 모습.
바람도 없었고,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돌은 분명히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력이 최하위라던 동생.
가문에서도, 마력 감정사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최하위라는 말과, 방금 본 광경은 서로 어긋나 있었다.
"만약…"
도현이 중얼거렸다.
"만약 도윤이가 정말 뭔가 특별한 힘이 있다면, 이 영지를 구할 방법이 될지도 몰라."
순찰대장이 그를 바라보았다.
호기심 어린 시선이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도현은 걸음을 재촉했다.
어깨의 상처가 계속 욱신거렸지만, 그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물의 숫자, 결계의 상태, 그리고 낮에 본 돌멩이.
세 가지 생각이 뒤엉켜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저택에 도착하자 서윤이 마당까지 뛰어나와 그를 맞았다.
치맛자락이 급하게 흔들렸다.
"도현아! 다쳤구나!"
서윤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아들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본 순간, 얼굴빛이 변했다.
"괜찮아요, 어머니. 경상이에요."
"경상이라니, 피가 이렇게 흐르는데."
서윤은 도현의 어깨를 살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끝으로 상처 주변을 조심스럽게 짚었다.
도현이 살짝 숨을 들이켰다.
"의사를 불러야겠다."
"그보다 어머니, 오늘 도윤이 일은…"
서윤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피 묻은 아들의 어깨보다도, 그 질문이 더 무겁게 다가온 듯했다.
"태호와 얘기 중이야. 서은도 함께."
"셋이서요?"
"응. 오늘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도현은 서재 쪽을 바라보았다.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틀 사이로 가느다란 빛줄기가 새어 나와 마당 바닥에 짧게 걸려 있었다.
안에서 낮은 목소리들이 들렸다.
무언가 의논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목소리들은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긴장은 결코 낮지 않았다.
"의사는 이따 불러도 돼요. 저는 먼저 저기…"
"몸부터 챙겨야지, 도현아."
"괜찮아요. 정말로."
서윤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고집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현이 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태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약 이 아이의 힘이 정말 특별한 거라면, 왕도에도 알려야 할지도 몰라."
도현의 손이 문고리 위에서 멈췄다.
서은의 목소리가 뒤이었다.
"그건 위험한 생각이에요, 아버지."
"위험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 있겠어. 감정사가 잘못 봤을 리도 없고, 도윤이가 매번 조심할 수도 없어."
"조심하는 것과, 스스로 알리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도현은 문 앞에 멈춰 섰다.
어깨의 상처보다, 방금 들은 말이 더 신경 쓰였다.
통증은 이미 감각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왕도에 알린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현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청하 가문 같은 몰락한 귀족에게 왕도의 시선이 쏠린다는 것은, 기회일 수도 있었지만 그만큼의 위험도 함께 따라오는 일이었다.
왕도의 마법사들은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들어왔다.
발탁이라는 이름으로 불려가는 경우도 있었고,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가문의 손을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서재 안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태호, 만약 알려졌을 때 좋은 쪽으로만 흐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서윤의 목소리도 섞여 들었다.
그녀는 언제 서재로 들어간 것인지, 도현이 미처 알지 못한 사이에 대화에 합류해 있었다.
"나도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가 계속 숨기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우리 손을 떠난 채로 알려질 수도 있어. 그때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거야."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는 침묵이었다.
도현은 문고리를 잡은 채,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어깨의 상처는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문 너머의 정적이 훨씬 더 무겁게 그를 붙잡고 있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던 불빛이 잠시 흔들렸다.
누군가 안에서 자리를 옮긴 모양이었다.
도현은 숨을 죽였다.
문고리를 쥔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