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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저녁 식사 시간, 강준호의 집은 늘 조용했다. 낡은 나무 상, 삐걱거리는 의자 하나. 밥상 위엔 된장국과 나물 반찬 몇 개. 구수한 된장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잘 먹겠습니다. 준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안 하는 인사였다. 전생의 습관이었다. 그래도 준호는 매번 그렇게 했다. 김순희가 국을 떠주며 웃었다. 많이 먹어. 김순희가 말했다. 네. 준호가 숟가락을 들었다. 국그릇에서 김이 올라왔다.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익숙한 맛이었다. 전생에서는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었지. 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던전에서 죽어라 굴려지던 시절엔 이런 저녁상 같은 건 상상도 못 했다. 오늘도 일찍 끝났다고 들었다. 강만석이 밥을 뜨며 말했다. 운이 좋았어요. 준호가 대답했다. 말수가 적은 아버지였다. 강만석은 그 대답에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밥그릇을 긁는 숟가락 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달그락. 김순희가 나물 반찬을 준호 쪽으로 밀어주었다. 이것도 먹어. 김순희가 말했다. 준호는 나물을 집어 들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삶이다. 준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식사 후, 준호는 아버지를 따라 밭으로 나갔다. 달빛 아래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흙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내년엔 이쪽에 콩을 심을까 하는데. 강만석이 흙을 만지며 말했다. 준호는 밭을 훑어보았다. 한쪽 구석에 물이 고여 있는 흔적이 보였다. 이 흙, 배수가 안 좋아요. 준호가 무심코 말했다. 강만석이 손을 멈췄다. 뭐? 강만석이 고개를 들었다. 골을 세로로 파야 물이 빠져요. 준호가 손으로 방향을 그렸다. 그리고 콩보다 옆에 감자를 먼저 심는 게 나아요.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니까. 강만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준호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또 튀어나왔다. 전생의 지식이라는 게 이렇게 쓸데없이 입 밖으로 나올 때가 있었다. 너 그런 걸 어디서 배웠냐. 강만석이 물었다. 전생에서. 준호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냥, 어디서 들었어요. 준호가 웃으며 넘겼다. 강만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들의 얼굴을 오래 쳐다보았다. 뭔가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둘 다 알면서도 묻지 않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강만석이 흙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보자. 강만석이 말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밭 위로 달빛이 길게 늘어졌다. 내일도 무사히 지나가면 좋겠다. 준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준호가 길드에 도착하자 게시판 앞이 북적였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 모험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에요. 준호가 서연에게 물었다. 마을 뒤편에 이상한 공간이 열렸대요. 서연이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특수 공간 발견: 균열 잔재 - 청명 마을 동편] [선착 입장 가능, 클리어 보상 지급] 대괄호 문구가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준호는 문구를 두 번 읽었다. 균열이랑 관련된 건가요. 준호가 물었다. 협회에서 조사 나온다는데, 그 전에 마을 모험가들한테 먼저 열어준대요. 서연이 설명했다. 그럼 그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거네요. 준호가 되물었다. 그렇죠. 근데 보상이 꽤 세다는 소문이 있어서. 서연이 목소리를 낮췄다. 준호는 게시판을 다시 훑어보았다. 선착순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식으로 급하게 열리는 공간은 대체로 뭔가 이유가 있었다. 전생에도 이런 게 있었지. 성급하게 들어간 놈들 절반은 못 나왔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눈빛이 달라진 모험가 몇 명이 보였다. 정도현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턱을 치켜든 채 게시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부터 들어간다. 정도현이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준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도현이 준호를 힐끗 쳐다보았다. 뭐야, 안 들어갈 거야? 정도현이 물었다. 들어갈 건데요. 준호가 대답했다. 그럼 순서 지켜. 정도현이 눈을 부라렸다. 순서요? 준호가 웃었다. 이런 데 무슨 순서가 있어요.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거지. 정도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건방진 새끼. 정도현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입구는 하나였고, 이미 준호의 발이 먼저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야, 새치기하냐. 정도현이 소리쳤다. 먼저 온 사람이 임자죠. 준호가 웃었다. 주변 모험가들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정도현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준호는 개의치 않고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균열의 잔재. 낡은 문틀 같은 형태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입구 앞에 선 순간, 알림음이 울렸다. 삐- [특수 공간 입장 자격 확인 중...] [입장 승인] 준호의 발밑에서 빛이 퍼졌다. 발바닥부터 서서히 저려오는 감각이 올라왔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들어가지는 게 맞나. 승인이라는 말이 이렇게 빨리 떨어질 일인가. 전생에서도 이런 조사되지 않은 공간은 협회가 먼저 통제부터 걸었는데. 하지만 이미 몸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주변 소음이 점점 멀어졌다. 뒤에서 정도현이 소리치는 게 들렸다. 야, 강준호! 야! 준호는 대답할 틈도 없었다. 빛이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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