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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청명 마을의 아침은 늘 비슷했다. 닭 울음소리가 두 번 울리고, 은월 길드의 문이 열렸다. 낡은 나무문이 삐걱, 소리를 냈다. 길드 안은 아직 한산했다. 벽에 걸린 오래된 검들과 방패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강준호는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나무판에 붙은 종이들이 바람에 팔락거렸다. [의뢰: 폐광 슬라임 무리 토벌 - D급] [보상: 은화 30냐] 적당한 난이도, 적당한 보상. 준호는 그런 걸 좋아했다. 너무 쉬운 것도 안 되고, 너무 어려운 것도 안 되고. 딱 남들 눈에 걸리지 않을 정도. 정도현이 옆에서 종이를 힐끔거렸다. 표정이 벌써 삐딱했다. 이거 누가 하냐. 정도현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제가 할게요. 준호가 담담하게 손을 뻗었다. 너가? 정도현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왜요, 안 됩니까. 준호가 종이를 뜯어냈다. 몸도 못 쓰는 놈이. 정도현이 콧방귀를 뀌었다. 됐다, 마음대로 해. 정도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준호는 별다른 반응 없이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삼 년 전, 준호가 신입이었을 때 정도현은 이런 식으로 굴었다. 잔심부름이나 하라고, 검이나 제대로 잡으라고. 힘도 없는 놈이 왜 검사를 하냐고 비웃었다. 준호는 그때도 지금처럼 웃어넘겼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조용히 사는 게 목표였으니까. 눈에 띄면 피곤해진다. 피곤해지면 손해다. 준호가 오래전에 세운 원칙이었다. 폐광은 마을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였다.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고, 양옆으로 마른 풀들이 무성했다. 준호는 걸으면서 딱히 서두르지 않았다. 폐광 입구에 도착했을 때,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습한 공기가 더 짙어졌다. 슬라임 무리는 생각보다 많았다. 스무 마리는 되어 보였다. D급 의뢰치고는 과한 숫자였다. 의뢰서에 적힌 숫자랑 안 맞잖아. 준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대충 세고 붙인 건지. 준호는 검을 뽑았다. 표면상 그는 검사였다. 검이 슬라임 하나를 갈랐다. 물컹,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갈라졌다. 다음, 다음, 다음. 준호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동작에 낭비가 없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움직였다. 옆으로 한 걸음, 검을 내리긋고, 다시 반대편으로. 슬라임들이 튀는 방향을 미리 계산한 움직임이었다. 이 정도는 검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그는 필요하면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굳이 보여줄 이유가 없으니까. 슬라임 하나가 등 뒤에서 튀어올랐다. 준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검을 뒤로 뻗어 갈랐다. 퍽. 잔해가 바닥에 떨어졌다. 삼십 분 뒤, 폐광 안에는 슬라임의 잔해만 남았다. [퀘스트 완료: 폐광 슬라임 무리 토벌] [보상 지급: 은화 30냐] 알림음이 귓가에 울렸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준호가 검을 검집에 넣었다. 숫자가 두 배였는데도 시간은 절반이었다. 이걸 누가 보면 곤란하겠는데. 준호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뒤 폐광을 나섰다. 길드로 돌아왔을 때, 서연이 눈을 크게 떴다. 벌써 끝났어요? 스무 마리였는데. 서연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운이 좋았어요. 준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슬라임들이 한곳에 모여 있어서요. 준호가 덧붙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전부는 아니었다. 서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도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운이 좋았다고. 정도현이 중얼거렸다. 그런 것 같은데요. 준호가 웃으며 돌아섰다. 정도현은 팔짱을 낀 채 준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뭔가 께름칙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길드 문이 벌컥 열렸다. 덜컹. 길드원 하나가 큼직한 공고문을 벽에 붙였다. 종이가 아직도 손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모험가 협회 긴급 공표: 대륙 전역에 균열 현상 발생] [원인 불명, 대응 지침 하달 예정] 길드 안이 순식간에 소란해졌다. 균열이라니, 그게 뭔데. 누군가 소리쳤다. 세상 망하는 거 아니야. 다른 누군가 대답했다. 우리 마을도 위험한 거야? 또 다른 목소리가 겹쳐졌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 발소리가 뒤섞였다. 준호는 그 공고문을 흘깃 보았다. 대륙 전역 균열이라. 뭔가 큰일이 벌어질 모양이었다. 나랑 무슨 상관이야. 준호는 곧 시선을 거뒀다. 서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준호 씨는 안 걱정돼요? 서연이 물었다.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준호가 대답했다. 그건 그렇죠. 서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좀 무섭잖아요. 서연이 팔을 슬쩍 감싸며 말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은화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막으로 향하는 길, 이만수가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왔냐. 이만수가 반가운 얼굴로 맞았다. 한 잔 주세요. 준호가 자리에 앉았다. 낡은 나무 탁자, 짙은 술 냄새. 안쪽 자리엔 벌써 박태호가 앉아 있었다. 잔이 벌써 반쯤 비어 있었다. 오늘도 일 빨리 끝냈다며. 태호가 술잔을 밀어주었다. 운이 좋았어. 준호가 잔을 받았다. 태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요즘 좀 이상해. 태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가. 준호가 시선을 피했다. 네가 운이 좋다는 말, 벌써 열 번째다. 태호가 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열 번씩이나. 태호가 손가락을 세다가 관두고 팔짱을 꼈다. 너 원래 그렇게 운 좋은 놈이 아니었잖아. 준호는 대답 대신 잔을 들이켰다.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뜨끈한 감각이 퍼졌다. 창밖으로 균열 공고문 얘기를 하는 사람들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균열이 우리 동네까지 온다는데, 준호는 그 소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태호의 눈초리는 여전히 준호를 향해 있었다. 의심스럽다는 눈빛. 확인하고 싶다는 눈빛. 준호는 그 시선을 못 본 척, 빈 잔을 다시 이만수 쪽으로 밀었다. 한 잔 더요. 준호가 말했다. 이만수가 술병을 들고 다가오며 웃었다. 오늘 뭐 좋은 일 있었나 보네. 준호는 그저 웃기만 했다. 창밖 소란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균열이라는 두 글자가 마을 전체를 흔들기 시작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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