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황무지로 가는 마차 안.
나는 창밖을 봤다.
풀 한 포기 없는 땅이 이어졌다.
하늘은 회색이었다.
바람 소리만 들렸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몸이 좌우로 쏠렸다.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계속 말을 걸었지만 나는 반쯤만 들었다.
"저기가 서부 황무지야."
옆자리 학생이 말했다.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이천 년 전에 마물이 다 죽은 땅이래."
"용사 하람이 봉인을 걸었다지."
"그 이후로 아무도 못 들어갔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창밖을 봤다.
용사 하람.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렸다.
삼 년 전, 처음 이 학교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 이름을 동경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그냥 성적표에 박힌 F 세 개가 더 익숙했다.
마차 바닥이 삐걱거렸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있었다.
손끝이 시렸다.
앞자리에서 태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태오에게 뭘 물었고, 태오는 여유롭게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애써 지웠다.
오전 11시.
마차가 멈췄다.
바퀴가 마지막으로 한 번 크게 흔들리고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마른 흙냄새가 확 밀려들었다.
정민호 선생님이 앞장서서 걸었다.
"정해진 경로만 걷는다."
선생님이 말했다.
"경로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평소라면 웃으면서 지시했을 텐데, 오늘은 웃지 않았다.
태오가 웃으며 말했다.
"위험이라니, 여긴 봉인된 땅이잖아요."
"봉인은 완전하지 않다."
선생님이 대답했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말이 계속 신경에 걸렸다.
봉인은 완전하지 않다.
그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완전하지 않다면, 얼마나 불완전한 걸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안전하고, 어디부터가 위험한 걸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 채로 마차에서 내렸다.
땅을 밟는 순간, 발밑에서 이상한 흙먼지가 일었다.
마른 흙이 신발 속으로 스며들었다.
오전 11시 40분.
일행이 걷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진 자리마다 검은 흙이 드러나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다.
갈라진 틈은 어른 손바닥만 한 것도 있었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것도 있었다.
나는 그 틈들을 지나칠 때마다 괜히 눈을 피했다.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과, 들여다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윤서아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귀족 학생, 빛의 마법 전공.
날카로운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서아는 걸음이 빨랐다.
남들보다 반보씩 앞서 걸으며 계속 주변을 훑었다.
빛의 마법사답게 눈이 예민했다.
그 예민함이 지금은 불안처럼 보였다.
"뭐가 이상해."
서아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는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서아가 말한 '이상함'이 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물어보면 서아가 나를 쳐다볼 것 같았다.
나는 그 시선이 싫었다.
삼 년 동안 F를 받아온 학생을 보는 시선.
동정도 아니고 무시도 아닌, 그냥 무관심에 가까운 시선.
그게 제일 싫었다.
계속 걸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흙먼지가 옷자락에 붙었다.
멀리서 태오와 다른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웃음소리에서 점점 멀어지듯 걸었다.
오후 1시.
휴식 시간이었다.
나는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다른 학생들은 태오 주변에 모여 있었다.
혼자 있고 싶어서였다.
어차피 포기했으니까.
어차피 이 마법이라는 것과는 이별할 거니까.
가방에서 마른 빵 하나를 꺼내 씹었다.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았다.
보라 얼굴이 떠올랐다.
원장님이 마지막으로 해준 말도 떠올랐다.
"무리하지 마라."
그 평범한 말이 지금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멀리서 태오가 뭔가 마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불꽃이 손끝에서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다들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를 등지고 앉아 빵을 씹었다.
그런데 발밑에서 이상한 감각이 났다.
땅이 살짝 울린 것 같았다.
빵을 씹던 턱이 멈췄다.
다시 한번, 아주 작게, 땅이 울렸다.
나는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태오는 여전히 불꽃을 만들며 웃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그쪽만 보고 있었다.
나만 이 진동을 느낀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겼다.
아니, 호기심이 아니었다.
뭔가에 끌리는 느낌이었다.
발바닥을 통해 땅속에서 뭔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경로를 벗어나 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경로를 표시한 붉은 깃발이 점점 작아졌다.
뒤에서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오후 1시 20분.
갈라진 땅 사이로 좁은 틈이 있었다.
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은 이상했다.
햇빛이 반사된 것도 아니고, 불빛도 아니었다.
푸르스름한, 은은한 빛이었다.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일행의 소리도 멀어졌다.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발이 저절로 앞으로 나갔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다른 감정 때문인지 구분이 안 갔다.
틈으로 들어섰다.
몸을 옆으로 눕혀 좁은 틈을 통과했다.
차가운 돌벽이 어깨에 스쳤다.
좁은 동굴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공간이 넓어졌다.
발소리가 동굴 벽에 부딪혀 울렸다.
공기가 서늘했다.
땅속인데도 바람이 도는 느낌이 있었다.
벽에 낡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용사의 갑옷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손끝으로 문양을 만져봤다.
돌이 차가웠다.
문양의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천 년 전의 무언가가 여기 새겨진 걸까.
그리고 그 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형체가 뚜렷하지 않았다.
사람 같기도 하고 그림자 같기도 했다.
숨이 턱 막혔다.
발을 뒤로 빼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같기도, 여자 같기도 한 목소리였다.
나는 뒷걸음질쳤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질문이 틀렸어."
그것이 말했다.
"넌 뭘 원하는지부터 물어야 해."
손끝이 차가워졌다.
"저는 아무것도."
"거짓말."
그것이 한 발 다가왔다.
형체가 조금씩 사람 모양을 갖췄다.
윤곽이 잡히는 걸 보면서 나는 눈을 깜빡였다.
사람인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넌 마법사가 되고 싶었지."
"용사가 되고 싶었지."
"그런데 재능이 없지."
세 문장이었다.
숨이 막혔다.
세 개의 문장이 정확하게 심장에 꽂혔다.
어떻게 저렇게 정확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알아요."
"보이니까."
그것이 말했다.
"시장에서 버려진 주식 같은 냄새가 나거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버려진 주식.
그 표현이 이상하게 정확했다.
삼 년 동안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그냥 바닥에 붙어 있던 주식.
아무도 사지 않는 주식.
"난 거래를 해."
그것이 말했다.
"힘을 사고, 대가를 받아."
"대가요."
"뭐가 됐든."
그것이 짧게 웃었다.
"시장은 늘 그렇게 굴러가."
웃음소리에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즐거워서 웃는 것도, 비웃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웃음의 모양만 하고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등이 차가운 돌벽에 닿았다.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저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필요 없다면 여기까지 왜 왔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다.
포기했다고 했다.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그런데 발이 이 동굴로 들어왔다.
발이 나를 이끌었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이었다.
발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었다.
포기했다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냥 포기한 척했을 뿐이다.
"넌 삼 년 동안 매일 실패했어."
그것이 말했다.
"오늘도 실패했고."
"내일도 실패할 거야."
세 번째 문장에서 목소리가 낮아졌다.
"평생."
그 한 마디가 동굴 벽에 부딪혀 울리는 것 같았다.
평생.
평생 실패할 거라는 말.
나는 이를 악물었다.
턱에 힘이 들어갔다.
눈물이 나야 하는데 나오지 않았다.
분노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랑 계약하면 달라져."
그것이 손을 내밀었다.
형체가 없는 손이었다.
검은 안개가 손가락 모양으로 뭉쳐 있었다.
"마력을 줄게."
"태오보다 강한 마력을."
"네가 원하는 만큼."
귀가 뜨거워졌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태오보다 강한 마력.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흔들렸다.
삼 년 동안 참았던 뭔가가 흔들렸다.
"대가가 뭔데요."
"별거 아니야."
그것이 대답했다.
"살면서 어차피 쓸 일 없는 것들."
"그게 뭐냐고요."
목소리가 떨렸다.
"글쎄."
그것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시장 규칙은 매입 후에 확인하는 거야."
너무 태연한 말투였다.
매입 후에 확인한다는 말이, 마치 물건 하나 파는 것처럼 가벼웠다.
그런데 그 가벼움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손을 봤다.
그것의 손을, 그리고 내 손을.
내 손은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마법 연습을 하고, 매번 실패한 손이었다.
그것의 손은 형체가 없는 검은 안개였다.
저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보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장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용사 하람의 온기가 떠올랐다.
보라가 웃던 모습.
원장님이 마지막으로 안아주던 순간.
용사 하람이 처음 내 손을 잡아줬을 때의 그 따뜻함.
그런데.
삼 년째 F였던 성적표도 떠올랐다.
태오의 웃음소리도 떠올랐다.
식당 설거지물의 비린내도 떠올랐다.
성적표에 찍힌 붉은 F.
태오가 나를 지나칠 때마다 짓던 그 웃음.
매일 밤 손에 배어 있던 비린내.
두 개의 기억이 서로 부딪혔다.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지키고 싶은 것과 버리고 싶은 것.
나는 손을 뻗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멈추고 싶었는데 멈춰지지 않았다.
손끝이 그것의 손에 닿았다.
차가웠다.
뜨거웠다.
둘 다였다.
"계약."
그것이 말했다.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숨이 멎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