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오전 7시 40분.
종이 울렸다.
나는 지팡이를 쥐었다.
손끝이 떨렸다.
청명 마법학원 실기장.
삼 년째 같은 자리였다.
맨 뒤, 맨 구석, 창가 옆.
창밖으로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실기장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그 빛이 닿는 자리마다 학생들의 지팡이가 반짝였다.
내 지팡이는 반짝이지 않았다.
"이도현, 시전."
정민호 선생님이 말했다.
안경 너머 눈이 이미 지쳐 있었다.
그 눈빛을 나는 알고 있었다.
기대가 없는 사람의 눈빛.
삼 년 동안 봐 온 눈빛이었다.
나는 주문을 외웠다.
입술을 움직였다.
가슴 속에서 뭔가를 끌어올리려 했다.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손끝이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졌다.
그래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세 번째 시도.
이마에 땀이 났다.
그래도, 역시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또 실패.
삼 년째, 또 실패.
오늘도, 역시나, 실패.
실기장 반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강태오였다.
"저건 뭐 하는 거야."
태오가 옆의 학생에게 말했다.
일부러 크게 말했다.
목소리가 실기장 전체에 울렸다.
일부러 그런 거였다.
"마법사 지망생이 마력도 못 모으는데."
옆에 있던 학생들이 조용히 웃었다.
누구도 나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팡이를 내렸다.
손이 뜨거웠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힘을 쓴 탓인지 몰랐다.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고 싶었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강태오, 시전."
태오가 앞으로 나섰다.
금발이 햇빛에 빛났다.
걸음걸이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지팡이를 들자마자 빛이 터졌다.
상급 화염구.
실기장 바닥에 검은 자국이 남았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학생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훌륭하다."
정민호 선생님이 말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나에게는 한 번도 짓지 않은 웃음이었다.
삼 년 동안, 단 한 번도.
"왕실에서 벌써 추천서가 왔다지."
선생님이 덧붙였다.
태오가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아니에요."
태오가 말했다.
말투에는 별거 아니라는 뜻이 조금도 없었다.
그 광경을 나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할 말이 없어서였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는 지팡이를 다시 들지 않았다.
들 필요가 없었다.
오후 3시.
수업이 끝났다.
나는 곧장 뒷문으로 나갔다.
교복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다.
가방을 메고 뛰었다.
다음 일터로 가야 했다.
첫 번째는 식당 설거지.
두 번째는 마구간 청소.
두 곳을 오가며 번 돈으로 학비를 냈다.
삼 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식당에 도착하자 이미 그릇이 산더미였다.
찬물에 손을 담갔다.
손끝이 얼얼했다.
기름때가 낀 그릇들을 하나씩 닦았다.
백 개, 이백 개, 셀 수 없이 많았다.
손에서 비린내와 거름 냄새가 동시에 났다.
씻을 시간도 없었다.
식당 주인이 말했다.
"오늘도 늦었네."
"죄송합니다."
"월급에서 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그릇을 집어들었다.
접시 하나를 놓쳤다.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이거 물어내야 해."
주인이 말했다.
"네."
나는 깨진 조각을 주웠다.
손끝이 베였다.
피가 조금 났다.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익숙한 통증이었다.
오후 6시.
식당 일이 끝나고 마구간으로 갔다.
말들이 나를 보고 콧김을 내뿜었다.
나는 삽을 들었다.
거름을 퍼내는 일이었다.
냄새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 않았다.
말 한 마리가 발굽으로 바닥을 찼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
말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말을 걸었다.
작업을 마치니 팔이 저렸다.
어깨도 아팠다.
삼 년째 반복되는 통증이었다.
오후 7시.
마구간 청소를 마치고 고아원으로 돌아갔다.
걸음이 느렸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원장님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박정숙 원장님.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쏘아봤다.
"학비 남은 거 언제 낼 거니."
"이번 주 안으로 낼게요."
"지난주에도 그렇게 말했잖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
"돈이 남 얘기가 아니야."
원장님이 말했다.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여기 애들이 몇인 줄 알아. 너 하나만 봐줄 수가 없어."
"알아요."
"아는데 왜 안 고쳐지니."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래도 원장님의 눈빛에는 다른 게 있었다.
걱정, 이라고 부를 만한 것.
나는 그걸 알았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밥 먹었니."
원장님이 물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아니요."
"들어가서 먹어라. 남겨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원장님이 다시 불렀다.
"도현아."
"네."
"너무 무리하지 마라."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오후 8시.
마당 텃밭에서 보라를 만났다.
서보라.
십 년을 같이 자란 아이.
붉은빛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볕에 상해서 원래보다 색이 옅었다.
손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텃밭 일을 하다 온 모양이었다.
"오늘도 늦었네."
보라가 웃으며 말했다.
"미안."
"뭐가 미안해. 밥은 먹었어?"
"아니."
"그럴 줄 알았어."
보라가 감자 하나를 건넸다.
구운 감자였다.
따뜻했다.
나는 그걸 받으며 잠시 멈췄다.
손끝에서부터 온기가 퍼졌다.
"맛있어?"
보라가 물었다.
"응."
"거짓말. 아직 안 먹었잖아."
나는 웃음이 났다.
오늘 처음으로 웃은 것 같았다.
"도현아."
보라가 나를 불렀다.
"나 오늘 텃밭 뒤쪽 땅 봤어."
"어."
"거기 밭으로 쓰면 좋겠더라. 물도 잘 빠지고, 볕도 잘 들고."
나는 감자를 씹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콩이랑 감자 심으면 잘 될 것 같아."
보라가 계속 말했다.
목소리에 기대가 섞여 있었다.
"내년에 학원 졸업하면."
보라가 말을 이었다.
"우리 여기서 농사지으면서 살자."
나는 보라를 봤다.
볕에 그은 얼굴, 흙 묻은 손톱.
십 년 전 그날, 처음 이 고아원에 왔을 때도 보라가 저렇게 웃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 웃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그러자."
나는 말했다.
"내년에."
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밤 10시.
나는 방에서 성적표를 꺼냈다.
종이가 손에서 바스락거렸다.
이미 몇 번이나 접었다 편 자국이 있었다.
실기 F.
이론 D.
마력 측정 최하위.
삼 년 연속.
삼 년 내내.
삼 년째, 변함없이.
숫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바뀌지 않는 숫자였다.
용사가 되겠다고 했었다.
어릴 때, 그 마을에서.
은강마을에 마물이 쳐들어왔던 밤.
불이 났고, 사람들이 뛰었고,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황금빛 갑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용사 하람.
그 손이 나를 붙잡아 끌어냈다.
따뜻했다.
그 온기를 아직도 기억했다.
그날 하람의 목소리도 기억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날부터 나는 용사가 되고 싶었다.
그 온기를 나도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났다.
마력도 못 모으는 채로.
나는 성적표를 접었다.
서랍 안에 넣었다.
서랍 안에는 지난 학기 성적표들도 쌓여 있었다.
전부 같은 숫자였다.
다시는 펼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보라 말이 맞아."
혼자 중얼거렸다.
농사를 짓자.
그게 맞는 길이었다.
용사는 재능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
나는 아니었다.
확실히, 아니었다.
세 번을 되뇌었다.
아니었다.
아니었다.
아니었다.
나는 지팡이를 벽에 세워두었다.
다시는 쓰지 않을 것처럼.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지팡이 끝이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그 빛조차 나에게는 낯설었다.
다음 날 아침.
학원 게시판 앞에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시끌시끌한 소리가 복도까지 들렸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다.
[3학년 현지학습 안내]
[목적지: 서부 황무지]
[기간: 1일]
[특이사항: 인솔 교사 외 단독 행동 금지]
서부 황무지.
용사 하람이 이천 년 전 마지막으로 봉인을 걸었다는 곳.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는 곳.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
"거긴 왜 가?"
누군가 물었다.
"교육청 방침이야."
정민호 선생님이 대답했다.
표정이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거긴 위험한 곳 아니에요?"
다른 학생이 물었다.
"봉인이 걸려 있어서 안전하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런데 말투가 미묘했다.
확신이 없는 사람의 말투였다.
주변 학생들도 그걸 눈치챘는지 잠시 조용해졌다.
태오가 끼어들었다.
"저는 상관없어요. 봉인이든 뭐든."
자신만만한 말투였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게시판을 보며 생각했다.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왜 마지막으로 그 땅을 밟게 되는 걸까.
용사가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곳으로.
용사를 꿈꾸다 포기한 내가 가게 됐다.
묘한 우연이었다.
아니, 그때는 우연이라고만 생각했다.
게시판 앞을 떠나면서도 그 이름이 머릿속에 남았다.
서부 황무지.
왜인지, 지팡이를 벽에 세워둔 순간부터, 뭔가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