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아원의 낡은 천장에는 물 자국이 몇 개 있었다.
그게 마치 지구에서 보던 자취방 천장 같아서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하필 이런 데서 위안을 받네.' 나는 스스로가 좀 한심하게 느껴졌다.
'회귀도 아니고 이세계 전송인데, 천장 얼룩 보고 안심하는 거, 이거 정상인가.'
'벌써 소문 났을까.' 나는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낮에 숲에서 만난 아이는 돌아오자마자 원장에게 다 이야기한 것 같았다.
저녁 식사 시간에 원장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게 그 증거였다.
수프를 뜨는 내 손을 어찌나 유심히 보던지, 나는 숟가락질 하나에도 죄인처럼 움츠러들었다.
다른 애들이 눈치 없이 내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게 오히려 고마웠다.
"리아, 잠깐 얘기 좀 할까." 원장이 나를 불러 세운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설마 벌써 쫓겨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부터 그려봤다.
'힘 있는 애는 여기서 필요 없다, 이런 전개면 진짜 억울한데.'
"요마를 혼자 처치했다고 들었는데." 원장이 물었다.
"운이 좋았어요."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둘러댔다.
원장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그런 힘이 있다는 걸, 함부로 밖에 알리지 마라. 이곳은 강한 힘을 가진 아이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곳이 아니야." 원장이 낮게 경고했다.
'좋은 대우가 아니면... 나쁜 대우인 거잖아.'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뒤늦게 실감했다.
힘을 가진 게 축복이 아니라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곳에서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원장의 눈빛엔 걱정과 경계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차라리 화를 내지, 왜 그렇게 봐...'
나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였다.
낡은 매트리스가 뻐걱, 소리를 냈다.
옆 침대에서 자는 아이의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평화롭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너는 참 좋겠다. 걱정이 없어서.'
창밖으로 별이 보였다.
지구에서 보던 별자리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여기서도 별을 보는구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국자도 없고, 오리온도 없고... 그냥 낯선 점들 뿐인데, 그래도 별은 별이네.'
그때였다.
창문 밖에서 뭔가 미세한 빛이 반짝였다.
'뭐지?' 나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심장이 괜히 두근거렸다.
'설마 또 요마인가. 이 나이에 밤중에 요마랑 붙는 건 좀 사양인데.'
창문을 열자, 작은 빛의 알갱이가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빛은 마치 반딧불이가 여러 마리 뭉친 것처럼 부드럽게 일렁였다.
그리고 그 빛이 서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얀 날개.
꿀색 생머리.
동그란 광환.
'이거... 그때 그 견습생?'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안녕하세요." 반투명한 형체가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목소리는 확실히 기억 속의 그 목소리였다.
조금 떨리는, 그러면서도 또박또박한 그 말투.
"너, 살아있었네!" 나는 저도 모르게 반갑게 소리쳤다.
목소리가 좀 컸는지, 옆 침대의 코 고는 소리가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낮췄다.
"살아있다는 표현은 좀 이상하지만... 네, 저예요." 견습생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근데 어떻게 여기까지... 아니, 이거 몰래 온 거 아니야?"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휴식 시간을 좀... 아껴서 왔어요." 견습생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껴서 왔다니, 그거 몰래 온 거잖아.' 나는 속으로 웃었다.
'회사원이 반차 쓰고 몰래 딴 회사 면접 보러 가는 거랑 뭐가 다른데.'
"위에서 알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나는 재차 물었다.
"들키지 않으면 괜찮아요." 견습생이 당당하게 말했다.
'들키지 않으면 다 되는 거구나.' 나는 그 논리에 왠지 정이 갔다.
'천사도 사람 사는 거랑 똑같네. 위에서 안 보면 그만이라는 마인드,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근데 이름이 뭐야? 그때 못 들었는데." 나는 궁금했던 걸 물었다.
견습생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직... 정식 이름이 없어요. 견습 등급이라서요." 견습생이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럼 내가 불러도 돼?" 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네?" 견습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귀여운 애한테 별명 붙이는 거, 이거 못 참는데.' 나는 이미 신나 있었다.
'고양이 이름 지어주는 것도 아니고, 천사 견습생 이름을 내가 지어준다니, 이거 나름 영광 아닌가?'
"음... 하양이 어때? 날개도 하얗고, 딱 어울리는 것 같은데." 나는 제안했다.
견습생은 잠시 그 이름을 곱씹더니, 살짝 웃었다.
날개 끝이 조금 파르르 떨리는 것도 같았다.
"좋아요." 견습생이 대답했다.
'좋대, 성공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러다 나중에 정식 이름 대신 하양이로 불리면 그것도 좀 웃길 것 같은데.'
"그래서, 하양이는 왜 온 거야? 그냥 안부 인사?" 나는 본론을 물었다.
하양이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그 순간 방 안 공기마저 조금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당신을... 감시하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하양이가 말했다.
'감시?' 나는 순간 긴장했다.
'이거 뭐야, 벌써 나 관심 인물 된 거야? 데뷔도 안 했는데 팬클럽 생긴 느낌이잖아.'
"상급 천사님이... 당신의 존재를 계속 주시하고 있어요." 하양이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왜?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나는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양이는 잠깐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눈빛이 꼭 '정말 몰라서 물어요?' 하는 것 같았다.
"오늘 숲에서... 요마를 혼자 처치했잖아요." 하양이가 조용히 말했다.
'벌써 알고 있어?'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신기의 힘이 너무 크게 반응했어요. 그 파동이... 위쪽까지 감지됐어요." 하양이가 설명을 이었다.
'파동까지 감지된다고? 그럼 내가 여기서 조심해봤자 의미 없는 거잖아.'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이거 뭐, CCTV도 없는데 어떻게 다 아는 거야. 하늘에 감시 카메라라도 달아놓은 건가.'
"그거 혹시... 안테나 같은 거야? 아니면 알람 같은?" 나는 얼떨결에 물었다.
"비슷해요. 신기의 파장이 클수록... 위에서 더 잘 들려요." 하양이가 성의 있게 대답해줬다.
'성의는 고마운데, 그게 더 무섭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 저는 당신을 도우러 왔어요." 하양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우러?" 나는 반문했다.
"제가 아는 걸 알려드릴게요. 신기를 다루는 법, 힘을 숨기는 법. 대신..." 하양이가 말끝을 흐렸다.
"대신?" 나는 재촉했다.
"이건... 저도 규정 위반이에요. 그러니까 비밀로 해주세요." 하양이가 작게 속삭였다.
'또 규정 위반이래.' 나는 속으로 실소했다.
이 아이는 만날 때마다 규정을 어기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규정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만날 때마다 위반이면 그게 이제 새로운 규칙이지.'
"알겠어, 비밀로 할게. 근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나는 물었다.
"네." 하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서... 나 어떻게 할 생각인 거야?" 나는 가장 걱정되던 걸 물었다.
하양이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창밖의 별빛이 방 안으로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그 정적이 몇 초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 사이 오만 가지 상상을 다 했다.
'설치류처럼 잡혀가는 건가, 아니면 그냥 관찰만 하는 건가.'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하양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상급 천사님이 직접 관심을 보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에요." 하양이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나, 이미 찍힌 거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전생에는 존재감 없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여긴 존재감 너무 있어서 문제네. 이것도 참 아이러니야.'
"그럼 나 그냥 계속 숨어 지내야 되는 거야? 평생?" 나는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양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눈에 띄지 않는 거, 그거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양이는 그 뒤로도 잠시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신기를 다루는 기초적인 방법 몇 가지, 이 세계의 위험한 지역들, 그리고 리시엘 시에서 조심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였다.
특히 신기의 파동을 억누르는 방법에 대해 하양이는 꽤 자세히 설명해줬다.
숨을 고르는 방식, 마음을 가라앉히는 이미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힘을 아예 쓰지 않는 것.
'마지막 게 제일 확실한 방법 아니야?' 나는 속으로 태클을 걸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또 리시엘 시에는 신기를 탐내는 상인들, 그리고 그보다 더 위험한 밀수업자들이 있다고 했다.
"특히 뒷골목 쪽은... 절대 혼자 가지 마세요." 하양이가 유난히 강조하며 말했다.
'뒷골목이라니, 이거 완전 판타지 세계 클리셰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 도중, 하양이의 몸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날개의 윤곽부터 흐릿해지더니, 발끝이 점점 투명해졌다.
"시간이 다 됐나 봐요." 하양이가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올 거지?" 나는 물었다.
"네, 몰래... 또 올게요." 하양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웃음이 꼭 몰래 야식 먹으러 가는 애 같아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하양이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조심하세요. 당신을 노리는 건 위쪽만이 아니에요." 하양이가 말했다.
그 말과 함께, 방 안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노리는 게... 위쪽만이 아니라고?'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럼 밑에서도 누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거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상급 천사라는 존재가 하늘 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거기다 다른 뭔가가 또 있다는 소리였다.
리시엘 시의 밤거리 저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미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나는 다시 창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방금까지 방을 채우던 은은한 빛이 사라지자, 방은 다시 원래의 어둠으로 돌아왔다.
그 어둠이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내일부터는 진짜 조심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했지만, 어쩐지 그 다짐이 오래갈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도 함께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