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검을 처음 쥐었을 때부터 알았다. 나는 마력이 없는 게 아니라, 지지리도 없는 쪽이었다.
단월 왕국 자작가의 삼남으로 태어나 마력 감응 시험을 세 번 다시 쳤다. 세 번 다 결과는 같았다. 담당 마도사는 종이를 접어 넣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얼굴이 더 짜증났다. 동정은 필요 없었다. 대신 검이 필요했다.
그때 나이가 열 살이었다. 형들은 이미 마력 등급을 받아 아버지 앞에서 어깨를 펴고 있었고, 나는 마도사가 접어 넣은 종이 한 장에 인생이 결정된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딱 한 마디를 했다.
"검이라도 잡아라."
그 말이 위로인지 처분인지 지금도 헷갈린다. 아무튼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열 살부터 검을 잡았고, 매일 같은 동작을 천 번씩 반복했다. 손바닥이 갈라지고 굳은살이 겹겹이 쌓였다. 남들은 마력으로 검에 속성을 씌워 휘두르는데, 나는 순전히 근력과 반복으로 그 격차를 메워야 했다. 그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나중에야 알았다. 마력 없는 검사가 마력 검사를 상대하는 건, 총 없는 사람이 총 든 사람과 맨손으로 싸우겠다는 것과 비슷한 셈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패가 없었으니까.
스물일곱까지 그렇게 검만 잡았고, 그 결과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병력 1,500명을 이끌고 국경 성벽 위에서 20,000명의 적군을 내려다보는 자리였다.
숫자만 놓고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열세 배 차이라니, 이건 전략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격차가 아니라 그냥 산수로 끝나는 문제였다.
"장군님, 척후병 보고입니다. 적 본대가 어제보다 이 킬로미터 더 전진했습니다."
윤세아 소위가 지도 위에 붉은 표식을 찍으며 보고했다. 초콜릿색 단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원래는 우리 집 시녀였는데 검을 곧잘 다뤄서 내가 데려왔다. 지금은 내 유일한 부관이자, 솔직히 말하면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킬로미터라. 그럼 사흘."
"길게 잡아도 사흘입니다."
"우리 쪽 마도 병기는?"
"···여덟 기 남았습니다."
나는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덟 기라니, 유란 제국은 최소 이백 기를 끌고 온다는 첩보가 있었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도살이었다.
"유란 제국 마도 병기 기술이 우리보다 최소 이십 년은 앞서 있다던데, 그것도 낙관적으로 본 수치라면서요."
"낙관적이라니, 그게 낙관인 건가."
"비관적으로 보면 삼십 년입니다."
윤세아는 그 말을 하면서도 웃지 않았다. 나만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는 놈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안 웃으면 다리가 풀릴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당겼다.
"병사들 사기는 어때."
"낮습니다. 낮다고 표현하는 게 예의를 차린 겁니다."
"바닥이라고 해도 돼."
"···바닥입니다."
그럴 만도 했다. 밥은 하루 두 끼로 줄었고, 화살은 배급제로 지급됐다. 성벽 위에 서 있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피로가 먼저 앉아 있었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을 뿐이다.
총사령관은 강신우라고 했다. 강씨 공작가의 적남이며, 열몇 살 때부터 전장을 굴러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내. 화염 속성 마법과 검술 모두 최상급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명주 왕국의 왕가 혈통을 이었다는 뜬소문까지 돌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내 목을 자르러 오는 놈의 족보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첩자들이 물어온 정보에 따르면 그는 지금까지 열두 개 성을 함락시켰고, 그중 항복을 받아준 성은 셋뿐이었다. 나머지 아홉은 전멸이었다. 그 숫자를 듣고 나는 속으로 계산을 다시 했다. 항복을 받아줄 확률 사분의 일. 낮은 확률이지만 영이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됐다. 위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성벽 위에서 사흘을 버텼다. 정확히는 버틴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매일 밤 회의를 했고, 매일 밤 결론은 같았다. 우리 전력으로는 정면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첫째 날엔 원군 요청을 논의했다. 왕도까지 전령을 보냈지만, 답이 오려면 최소 열흘. 우리에겐 사흘밖에 없었다. 둘째 날엔 야습을 검토했다. 여덟 기뿐인 마도 병기로 이만 명의 진영을 기습한다는 건, 성냥불로 산불을 끄겠다는 소리와 같았다. 셋째 날, 결론이 하나로 좁혀졌다.
"항복 교섭을 하겠다."
내가 그렇게 말한 날,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부하들 몇몇은 고개를 숙였고, 몇몇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누군가는 낮게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장군님, 항복이라니요. 저들이 받아준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보장은 없다. 근데 다른 선택지도 없어. 여기서 다 죽느냐, 아니면 살아남을 가능성에 걸어보느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항복 교섭이 성공하면 병사 1,500명 중 절반은 살릴 수 있다. 실패하면 전멸이다. 이길 확률이 오 퍼센트도 안 되는 도박이지만,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성벽만 믿고 버티면 안 되겠습니까."
"버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식량은 열흘치, 화살은 이미 배급제야. 저쪽은 병력이 열세 배인데 뭘 더 버텨."
누군가 반박하려 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다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장군님이 직접이요?"
"내 목을 걸어야 진지하게 받아줄 거 아니야."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부관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리로 보낼 사람은 없습니까. 굳이 장군님이 직접 가실 필요가."
"대리를 보내면 저쪽에서 우습게 볼 거다. 대표자의 격이 곧 협상의 무게야. 지휘관이 직접 가야 최소한의 진지함을 인정받는다."
이 말도 절반은 계산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하급 장교라면 강신우 쪽에서 아예 만나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목숨을 걸어야 겨우 대화가 성립되는 판이었다.
윤세아가 내 소매를 잡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안 돼. 넌 남아서 지휘를 맡아."
"장군님이 안 오시면 지휘가 무슨 소용입니까."
말을 잃었다. 그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 최악의 결정이 될 줄은 그때 몰랐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윤세아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지도 앞에 서서 붉은 표식들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낮게 물었다.
"정말 살아 돌아오실 계획은 있으신 겁니까."
"계획은 있어. 죽지 않는 거."
"그게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까."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녀는 대답 대신 지도 위 붉은 표식 하나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애초에 지워질 게 아니었으니까.
다음 날 새벽, 백기를 든 전령을 먼저 보냈다. 답신은 반나절 만에 왔다. 짧은 문장 하나였다.
[협상에 응한다. 대표자만 오라.]
그 짧은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대표자만 오라는 말은 곧 나 혼자 오라는 뜻이었고, 그건 곧 인질이나 볼모로 잡히기 딱 좋은 조건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갑옷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검은 챙겨가지 않았다. 항복하는 자가 검을 차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던 옛말이 떠올랐고, 예의보다는 목숨이 우선이었다. 무장을 하고 가면 협상이 아니라 도발로 읽힐 수도 있었다. 계산은 이럴 때 빨라졌다.
부관 몇이 성문까지 배웅을 나왔다. 다들 말이 없었다. 누군가는 내게 짧게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등을 돌린 채 어깨만 떨었다. 나는 그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걸었다.
성문을 나서기 전, 윤세아가 다시 다가왔다.
"살아 돌아오세요."
"약속은 못 해."
"그럼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하고 가세요."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목구멍 어딘가에 말이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등을 돌려 걸었다. 등 뒤에서 그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는데,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면 발이 멈출 것 같았다.
내일 아침, 나는 그 자의 진영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 마지막 하루가 될 것이라는 걸, 나는 그때까지도 계산에 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