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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날 이후 나는 마법 서적을 서고에서 몰래 빌려 오는 것에 더해, 리아가 낮잠 자는 틈을 타 정원 구석에서 감응 훈련을 반복했다. 훈련서에 적힌 방법대로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숨을 고르며 몸속 파동을 느껴보려 애썼는데, 처음 며칠은 정말 아무 감각도 잡히지 않아서 이게 다 헛수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는 코드를 짜고 시나리오를 썼지, 마법은 써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지.' 손끝이 저릿한 것도 그냥 자세가 불편해서 생긴 저림이었고, 눈앞이 어질어질한 것도 배고파서 그런 거였다. 나는 매번 그렇게 자기 위로를 하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나흘째 되던 날, 아예 요령이 생겨서 숨을 들이쉴 때 배가 부풀고 내쉴 때 어깨가 내려가는 리듬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그날 오후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손끝에서 아주 작은 온기 같은 파동이 스치는 걸 느꼈다. 그 순간 눈을 번쩍 뜨고 확인해봤지만 손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는데, 오히려 그 사실이 나를 더 흥분시켰다. '이게 마력 감응이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벤치 등받이를 두 번이나 두드리며 혼자 조용히 좋아했다. 남이 봤으면 정신이 나간 시녀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지만, 다행히 정원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리아와의 거리는 그 사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답도 잘 안 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방에 들어오면 슬쩍 곁눈질을 하고, 식사 시간에는 먼저 말을 거는 일도 생겼다. "이 스튜, 어제도 먹었잖아." 리아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을 때, 나는 그 투덜거림이 사실은 대화를 이어가려는 시도라는 걸 눈치챘다. '다섯 살짜리가 투덜거리는 걸로 애정을 표현하는 건 좀 서글프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일은 다른 걸로 준비해달라고 할게요." 그 말에 리아는 별말 없이 다시 숟가락을 들었지만, 입꼬리가 아까보다 살짝 올라간 게 보였다. 그 뒤로도 리아는 비슷한 방식으로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하루는 그림책을 보다가 "이 용은 왜 착한 사람만 도와줘?" 하고 불쑥 물었고, 나는 답을 고르느라 잠깐 뜸을 들였다가 "글쎄요, 나쁜 사람 도와주면 은혜도 모르고 잡아먹으려고 할 수도 있잖아요" 하고 대충 넘겼다. 리아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그 책만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이 아이가 나를 경계 대상에서 조금씩 지워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다행이야. 이러다 진짜 애착 관계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걱정이라기보다는 은근한 기대였다는 걸, 나는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정원에서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리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무 그늘 아래를 응시했는데, 나는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 이상함을 느꼈다. "령녀님, 뭐 보세요?" 리아는 대답 없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나무 그늘의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더니,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지금 저게, 광학 위장이잖아.'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 감각을 숨기려고 일부러 팔짱을 꼈다. 리아는 자기가 방금 한 일을 스스로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람쥐가... 숨어 있었어. 근데 내가 보이게 만든 것 같아." 나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원작 설정에서 광학 위장은 리아 자신이 스스로를 숨기는 방어형 마법으로 등장했는데, 지금 보인 건 정반대로 다른 대상의 위장을 강제로 해제하는 방식이었다. '설정이 완전히 다르게 발현되고 있어.' 이건 단순한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방향성 자체가 원작과 다르게 뻗어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령녀님, 방금 하신 거 다시 해보실 수 있어요?" 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손을 뻗었지만, 이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 돼. 방금은 됐는데." 아이의 목소리에 실망이 섞여 있었다. 리아는 몇 번이나 같은 자세로 손을 뻗었다가 내리고, 다시 뻗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마치 리모컨 배터리가 다 됐는데도 계속 버튼을 눌러보는 사람처럼 안쓰러웠다. 나는 그 반응을 보며 이 능력이 아직 의지로 통제되는 게 아니라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우연히 발현되는 초기 단계라는 걸 짐작했다. '통제 안 되는 힘이 제일 무서운 건데.' 그날 저녁, 나는 방에 홀로 앉아 리아의 능력이 원작과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지 정리해보려 했다. 원작에서 리아는 열 살 무렵까지 광학 위장과 중력 조작을 각각 독립적으로만 사용했는데, 지금은 그 두 능력이 다섯 살에 벌써 뒤섞여 나타나고 있었다. 게다가 원작 속 광학 위장은 위기 상황에서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 스킬이었지, 남의 위장을 벗겨내는 식의 공격적 활용은 단 한 번도 묘사된 적이 없었다. 나는 노트에 원작의 능력 발현 시기를 적어놓고 그 옆에 지금까지 관찰한 내용을 나란히 써봤는데, 두 줄이 점점 더 벌어지는 걸 보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내가 개입한 게 원인일까.' 나는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내가 리아에게 보여준 관심과 반응, 그리고 두려움 없이 대하는 태도가 어쩌면 아이의 마력 발현 양상을 바꾸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게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판단하기엔 아직 정보가 너무 적었다. 다음 날, 헤르타 언니가 나를 불러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공작님께서 사람을 보내셨다. 령녀님 근황을 물으시더구나." 그 말에 나는 순간 긴장했다. 원작에서 선현강덕 공작은 리아가 열여섯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 딸을 찾지 않는 인물이었는데, 지금 이 시점에 근황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설마 벌써 뭔가 눈치챈 건가.' 나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애쓰며 물었다. "혹시 서면으로 뭘 요구하신 건 아니죠?" 헤르타 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별다른 요구는 없으셨고, 그냥 잘 지내시는지만 물으셨다더라. 아마 형식적인 절차겠지." 언니는 그 말을 하면서 손에 든 빨랫감을 옆구리에 다시 끼우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 몇 초 더 서서 방금 들은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형식적인 절차라는 말에 나는 애써 안심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공작이 여태 단 한 번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딸에게 갑자기 사람을 보낸 이유가 정말 형식뿐일까. 리아의 능력이 원작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가 하필 공작 측의 관심이 살짝이라도 움직인 시점과 겹친다는 것이 우연으로 넘기기엔 너무 절묘했다. 나는 저녁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손목을 매만졌는데, 그것도 모자라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풀이했다. '우연일 수도 있어. 아니, 우연이 아니면 어떡하지.' 나는 그날 밤 리아의 방문 앞에 앉아 안쪽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숨소리를 들으며, 이 세계가 내가 쓴 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예감을 처음으로 확신에 가깝게 느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온기를 손끝으로 느끼면서, 나는 이 작은 방 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앞으로 내가 알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오래지 않아 훨씬 더 구체적인 형태로 나를 찾아올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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