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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다음 날부터 나는 리아의 방에 상주하다시피 했는데, 그러자 저택 안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채미리가 령녀님을 어떻게 그렇게 잘 다루는지 모르겠다"는 게 소문의 요지였고, 그 소문은 헤르타 언니를 통해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네가 뭐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들 신기해하더라." 나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충 넘겼지만, 속으로는 진땀이 났다. '재주가 있긴 있죠, 다만 그게 이 세계관을 직접 설계한 사람만 아는 재주라서.' 실제로 나는 리아가 언제 손이 차가워지는지, 언제 방 안 공기가 미묘하게 무거워지는지를 남들보다 먼저 감지하고 있었는데, 그건 관찰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원작 설정을 외우고 있어서였다. 문제는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정식 시녀 몇 명이 나에게 노하우를 물어봤을 때, 나는 그냥 "감으로 안다"는 애매한 대답으로 넘겼는데, 그 대답이 오히려 신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버려서 저택 안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거 잘못하면 이상한 소문으로 번지겠는데.' 실제로 며칠 뒤에는 주방에서 일하는 시녀 하나가 나를 붙잡고 "너 혹시 점 볼 줄 아니"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나는 기겁하며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지만, 그 시녀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럼 내 손금이라도 봐줘"라며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나는 결국 대충 "장수하실 손금이네요"라고 아무 말이나 지어냈는데, 그게 또 소문의 재료가 됐다. 채미리가 손금까지 본다더라, 하는 식으로. '이러다 진짜 신전에 끌려가서 심문받는 거 아니야.' 헤르타 언니는 어느 날 나를 따로 불러 조금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채미리, 너 혹시 신전에서 축복이라도 받았니? 아니면 마법 재능이 있는 거야?" 나는 순간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실대로 '전생에 이 세계를 만든 작가였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었고,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하기에는 이미 벌어진 사건들이 너무 정확했다. 결국 나는 어중간한 대답을 골랐다. "령녀님이 절 편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요. 그냥 운이 좋은 거겠죠." 헤르타 언니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 눈치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고 넘어갔다. 다만 자리를 뜨기 직전에 "그래도 조심해. 저택 사람들 눈은 생각보다 매서워"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 말이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제는 리아 쪽에서도 나에 대한 오해가 쌓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오후, 리아가 창가에 앉아 손끝으로 허공을 살짝 짚으며 물었다. "너는 내가 뭘 할지 미리 아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심장이 철렁했는데, 그건 정확히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눈치가 빠른 거예요." 리아는 그 대답을 듣고 잠깐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눈치가 빠른 거랑 다른 것 같은데." 다섯 살짜리가 그런 통찰을 내놓는 게 무서웠다. '얘가 눈치도 빠르고 마력도 세면 대체 뭘로 속여야 하지.' 리아는 그 뒤로도 종종 나를 시험하듯 질문을 던졌다. "내가 다음에 뭐 할지 맞혀봐." 그러면 나는 원작 지식을 슬쩍 꺼내서 "간식 드시고 싶으신 거 아니에요?" 같은 무난한 답을 내놨는데,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리아는 그럴 때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관찰했는데, 그 시선이 다섯 살짜리답지 않게 집요했다. '이거 완전히 들킨 거 아니야.' 나는 매번 등에 땀이 흥건해질 때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을 유지해야 했다. 나는 이쯤에서 결심을 하나 했다. 리아의 마력 상태를 좀 더 정확히 감지하려면, 나 역시 최소한의 마법 지식이 필요했다. 지금까지는 원작 지식에만 의존해서 미리 대비하는 식이었지만, 그건 언젠가 원작에 없던 변수가 생기면 무용지물이 될 방법이었다. 나는 저택 서고에 들어가 마법 관련 서적을 찾기 시작했고, 그중 초급자용 마력 감응 훈련서를 발견했다. '이거다.' 시녀 신분으로 마법 서적을 빌려도 되는지 걱정했지만, 서고 관리인은 별 의심 없이 대출을 허락해줬다. 아마 저택 안의 시녀가 취미로 마법 공부를 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관리인은 오히려 "요즘 젊은 시녀들 사이에서 유행이더라"며 다른 초급서 몇 권을 더 추천해줬는데, 나는 감사한 마음보다 안도감이 더 컸다. '들키지 않았다.' 밤마다 나는 몰래 서적을 펴놓고 마력을 감지하는 기초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서에 따르면 마력 감응은 우선 자신의 신체 안에 흐르는 미세한 파동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는데, 나는 며칠 동안 손끝이 저릿한 감각조차 느끼지 못해 좌절했다. '역시 재능이란 게 그냥 생기는 게 아니구나.' 책에는 호흡을 가라앉히고 손바닥을 마주 대라거나, 눈을 감고 심장 박동에 집중하라는 식의 지침이 잔뜩 적혀 있었는데, 나는 그걸 하나씩 따라 하다가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날이 이어졌다. 낮에는 리아를 돌보고 밤에는 마법 훈련을 하는 이중생활이 계속되면서 나는 점점 얼굴이 초췌해졌고, 헤르타 언니는 그런 나를 보며 "요즘 왜 그렇게 다크서클이 심해졌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잠을 설친다고만 답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리아 방을 지키며 반쯤 잠에 취해 있던 중에 문득 손끝에서 미묘한 진동을 느꼈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째 훈련서를 붙잡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넘기려 했는데, 그 진동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나는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리아가 다시 손을 뻗어 뭔가를 만지려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나는 그 진동이 리아의 마력에서 새어 나온 파동이라는 걸 직감했다. "령녀님, 지금 뭘 만지려고 하세요?" 나는 재빨리 다가가 물었다. 리아는 흠칫 놀라며 손을 거뒀는데, 그 표정에 당황이 스쳤다. "그냥... 궁금해서." 나는 리아가 가리키던 방향을 살폈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느꼈던 진동은 분명 그쪽에서 왔다. 나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설마 벌써.' 원작 설정에서 리아가 광학 위장을 처음 발현시키는 시기는 이보다 훨씬 나중이었는데, 만약 지금 그게 앞당겨지고 있는 거라면 내가 알고 있는 시간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다시 물었다. "혹시 아까부터 계속 그쪽이 궁금하셨어요?" 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허공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 뭔가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는데, 방 안의 촛불이 흔들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끝의 진동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건 광학 위장이 아니야.'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 뭐가 보이세요?" 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보여. 그냥... 느껴져." 그 말에 나는 확신했다. 이건 광학 위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현상—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마력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였다. 원작에는 없던 반응이었다. '내가 쓴 이야기가 벌써 어긋나고 있어.' 나는 리아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손끝이 유난히 차가웠다. 원작에서 묘사됐던 그 어떤 증상보다도 차가운 온도였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리아는 내 손을 마주 잡으며 작게 물었다. "언니, 나 이상해?"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상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괜찮다고 말하기에도 확신이 없었다. "아니요,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냥... 조금 특별한 거예요." 리아는 그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생각이 들자 등에 식은땀이 흘렀는데, 그 어긋남이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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