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끼익. 끼이익.
온천 데크로 통하는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나는 마당 창고에서 수건을 정리하다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수건은 총 열두 장. 손님용 여섯 장, 내가 쓰는 것 여섯 장. 오늘은 손님이 둘이니 계산이 틀어졌다. 나중에 더 삶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창고 문을 반쯤 닫아뒀다.
이설아가 로브를 벗고 있었다. 로브 아래에는 신전에서 입는 얇은 속옷 같은 게 있었는데, 강태희가 급히 자기 겉옷을 벗어 그 위에 씌워주며 성난 목소리로 뭔가 말하고 있었다.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어조로 짐작이 갔다. 성녀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대충 이런 말이었을 거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남의 사생활에 끼어드는 취미는 없다. 특히 성기사가 무장을 하고 있을 때는.
첨벙.
물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창고 정리를 마치고 수건 뭉치를 옆구리에 낀 채 슬쩍 데크 쪽을 살폈다. 강태희는 여전히 겉옷 없이 서 있었다. 셔츠 하나 걸친 상태로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그 자세가 경비병처럼 딱딱했다.
"...뜨겁다." 이설아의 목소리였다. 놀랍게도 감정이 실려 있었다.
"당연히 뜨겁죠. 온천이니까요."
나는 데크 앞까지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물속에서 이설아가 나를 돌아봤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표정은 여전했지만, 눈가가 살짝 풀려 있었다. 그 표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냥 "괜찮으신가요"라고만 물었다.
"이런 게... 왕궁에도 없습니까."
"왕궁 목욕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런 온도 조절식 자연 온천은 아마 없을 겁니다. 여기는 지하 수맥이 좀 특별해서요."
"이걸 매일 할 수 있습니까."
"네, 저는 매일 합니다."
"매일."
이설아는 그 말을 되씹듯 반복했다. 뭔가 계산을 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계산이 뭔지 짐작이 갔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사흘짜리 예약을 한 손님이 매일이라는 단어에 저렇게 집착하면 답은 하나뿐이다.
이설아는 물속에 목까지 담근 채로 나를 한참 쳐다봤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부담스러워서 나는 슬쩍 뒤로 물러섰다. 옆에서 강태희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표정이 복잡했다. 경계와 곤란함이 반쯤씩 섞인 얼굴이었다.
"성녀님, 그만 나오셔야 합니다. 감기 걸리십니다."
"조금만 더."
"성녀님. 밤바람이 찹니다."
"조금만 더."
"...알겠습니다."
강태희는 결국 포기한 얼굴로 데크 옆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이 성기사가 생각보다 물러 터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명령조로 말하다가도 성녀 말 한마디에 바로 꺾이는 걸 보면, 저 갑옷 안에 든 게 강철은 아닌 모양이었다.
결국 이설아는 삼십 분을 더 있었다. 강태희는 그 삼십 분 동안 데크 옆에서 정자세로 서서 물끄러미 물을 바라봤다. 중간에 한 번, 데크 나무판이 뜨거워졌는지 발을 슬쩍 옮기는 것도 봤다. 그래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손님 앞에서 웃으면 실례다. 특히 그 손님이 초월적 존재를 모시는 기사일 때는 더욱.
저녁 식사 시간이 됐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간단한 걸 준비했다. 라면이었다. 이 세계에서 밀가루 면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마을 밀밭에서 나는 밀로 도윤식 즉석 국수를 만들어보는 실험을 몇 달째 하고 있었다. 반죽을 얇게 밀어서 칼로 썰고, 육수는 멸치 대신 이 세계에서 잡히는 은빛 물고기 말린 걸로 냈다. 매운맛은 마을 시장에서 파는 붉은 열매 가루로 흉내를 냈다. 완벽한 라면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비슷한 결과물이 나왔다. 그날은 컨디션이 좋았는지 국물 간이 딱 맞았다.
이설아는 그릇을 받아 들고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그리고 잠시 굳었다.
"...이게 뭡니까."
"국수입니다."
"이런 맛이 존재합니까."
"매콤한 맛을 좀 넣었어요. 안 매우신가요?"
이설아는 대답 없이 계속 먹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숟가락질이 점점 빨라졌고, 면을 건져 올리는 손목 움직임에도 힘이 들어갔다. 무표정한 얼굴에 국물이 튀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 걸 보니, 이건 예의를 차릴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는 국수를 두 그릇째 내줬다.
강태희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녀님, 저것도... 좀 드시겠습니까?"
말과는 다르게 강태희의 눈은 이미 이설아의 그릇에 고정돼 있었다. 목젖이 한 번 움직이는 것도 봤다. 나는 못 본 척 세 번째 그릇을 준비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가스 불을 켜고 물을 올리면서 생각했다. 이 두 사람, 사흘 치 식재료로는 부족할 것 같다. 장을 다시 봐야겠다.
세 번째 그릇이 나왔을 때, 이설아는 이미 두 그릇을 비운 상태였다. 그릇을 내려놓으며 짧게 말했다.
"더."
"...한 그릇 더 삶아 오겠습니다."
강태희가 자기 몫으로 받은 그릇을 반도 못 먹고 이설아에게 밀어주는 걸 봤다. 성녀님, 이거 드시라고 하면서. 성기사의 희생정신이 이렇게 발현되는 줄은 몰랐다.
식사가 끝난 뒤, 나는 두 사람에게 이 집의 몇 가지 규칙을 설명했다.
"밤 열 시 이후엔 온천 사용 금지입니다. 보일러 점검 시간이라서요. 그리고 침구는 매트리스 아래 서랍에 여분이 있으니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화장실은 저쪽입니다. 아, 그리고 마당 창고는 함부로 열지 마세요. 관리 도구들이 있어서 위험합니다."
강태희가 수첩을 꺼내 받아 적었다. 성실한 사람이었다. 글씨체도 반듯했다. 딱딱 끊어 쓰는 필체가 딱 그 성격 같았다.
"규칙은 준수하겠습니다. 다만 성녀님의 안전에 관련된 사항은 예외로 하겠습니다."
"네, 그건 당연히 그러셔야죠."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안전 예외에 해당하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 사람, 생각보다 꼼꼼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화재나 침입 같은 상황이면 규칙 무시하고 움직이셔도 됩니다. 그것 말고는... 그냥 상식적으로 판단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기록하겠습니다."
강태희는 정말로 그걸 수첩에 적었다. "화재, 침입 시 규칙 예외"라고 쓰는 걸 옆에서 봤다. 이 정도면 성실이 아니라 결벽이다.
이설아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딸깍.
그걸로 첫날이 끝나는 줄 알았다.
밤이 깊어지고, 나는 마당에 나와 온천 보일러 점검을 하고 있었다. 밸브를 돌려 수온을 확인하고, 배관 이음새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손으로 짚어봤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이 정도 온천을 유지하려면 매일 이 짓을 해야 한다. 손님들은 모르는 노동이었다. 그때 뒤에서 낯익은 기운이 느껴졌다.
"자네 집에 대단한 손님이 왔더구먼."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온천 데크 아래, 이 집터의 원래 주인이었던 노인의 영이었다. 이 자리에 살다가 30년 전에 돌아가신 분인데, 죽고도 자기 집터를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고 있었다. 나는 이분과 계약 같은 걸 맺었다. 집터에 계속 머물게 해주는 대신, 손님들 앞에는 절대 나타나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할아버지, 규칙 지키셔야 해요. 손님 앞에 안 나타나기로 했잖아요."
"아직 안 나타났잖은가. 자네한테만 말하는 거지."
"그것도 위험해요. 저 사람들, 성녀랑 성기사예요. 뭐가 보이는지 모르잖아요."
"성녀라는 여자, 물속에서 얼굴이 그렇게 풀린 건 처음 봤네. 아까 온천에서 웃음소리도 좀 냈던 것 같은데."
"웃음소리요?"
"자네는 못 들었나? 아주 작게, 딱 한 번."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설아의 무표정한 얼굴을 떠올리면 웃음소리라는 게 상상이 안 갔다. 하지만 죽은 자의 감각이 산 자보다 더 예민하다는 건 이미 여러 번 겪은 사실이었다. 할아버지가 헛소리를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30년 동안 이 마당을 지키면서 산 자들의 표정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다 듣고 살아온 분이다.
"어느 타이밍에 웃었어요?"
"자네가 국수 얘기 하고 나서, 그 옆의 갑옷 입은 처자가 쩔쩔매는 걸 보고 나서였네. 아주 짧게, 코로."
"...진짜요?"
"내가 헛것을 볼 사람인가. 나야말로 헛것이지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말투였다. 이 노인 영은 늘 이런 식이었다. 죽은 지 30년이나 됐는데도 유머 감각은 살아있을 때보다 더 날이 서 있었다.
"그 여자, 뭔가 오래 참아온 사람 같더구먼. 자네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조심이요? 뭘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냥 느낌이 그래. 저런 눈빛 하는 사람들은 뭔가 하나 무너지면 크게 무너지더라고."
할아버지의 기운이 스르륵 사라졌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30년 산 자들 표정을 봐온 영의 감이라면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때 별채 쪽에서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났다.
끼익.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봤다. 이설아가 로브를 걸치고 조용히 마당을 걷고 있었다. 온천 데크 쪽으로.
밤 열 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규칙을 설명한 지 두 시간도 안 된 시점이었다.
강태희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방에서 잠들었거나, 아니면 성녀가 방을 나선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성실한 성격에 이걸 알면 또 수첩을 꺼내 뭔가 적을 텐데.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인지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설아의 걸음걸이에는 뭔가 결심 같은 게 실려 있었다. 단순히 목욕이 좋아서 다시 들어가는 사람의 걸음이 아니었다. 발끝이 땅을 밀어내는 힘이 달랐다.
데크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끼이익.
이어서 첨벙. 물소리.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소리를 듣기만 했다. 규칙을 어긴 손님을 나가서 붙잡아야 하나,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나. 고민은 짧았다. 어차피 사흘짜리 예약이 아니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이미 있었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 사흘짜리 손님이 사흘 만에 떠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이 집에 계약을 맺고 있는 존재가 하나 더 늘어나는 예감과도 이상하게 겹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