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한국 귀환, 제 유일한 패입니다

1화

죽음은 순간이었다. 사무실 책상에 엎드린 채 강도윤은 숨을 거뒀다.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였고, 마지막 기억은 모니터에 뜬 결재 문서였다. 야근이 며칠째 이어지던 참이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낯선 풀숲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하늘은 두 개의 달이 걸려 있었다. '꿈이 아니다.' 도윤은 그렇게 판단했다. 팔뚝을 꽉 움켜쥐어 보았지만 통증이 또렷했다. 꿈이라면 이 정도로 생생할 리 없었다. 몸을 일으키자 시야 한켠에 낯선 문구가 떠올랐다. [고유 스킬 : 한국 귀환]. 그는 몇 번이고 눈을 감고 떴지만 문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스킬을 시험해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귀환을 떠올리자 몸이 빛에 휩싸였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원룸 침대 위에 서 있었다. 벽시계는 죽기 전 그 시각에서 멈춰 있었다. 냉장고 안 반찬도 그대로였다. 도윤은 그 사실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군.' 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한국 쪽 세계는 그가 떠난 순간에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창밖의 자동차도, 옆집에서 들리던 텔레비전 소리도 그대로였다. 다시 돌아가는 방법도 같았다—의지만으로 오갈 수 있었다. 다만 시험 중에 알게 된 규칙이 하나 있었다. 생물은 데려올 수 없었다. 화분의 흙까지는 옮겨졌지만 그 안에 있던 작은 벌레는 국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벌레가 사라진 자리를 도윤은 오래 들여다보았다. 살아 있는 것은 넘어오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두 세계를 오가는 능력을 얻었지만, 이세계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버티기였다. 신분을 증명할 것이 없었고, 이곳 화폐도 없었다. 도윤이 가진 건 한국에서 가져온 현금 몇십만 원과 지갑 속 카드 몇 장, 그리고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전부였다. 카드는 이곳에서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현금은 전당포에서 신기한 물건으로 취급받아 근근이 은화 몇 닢으로 바뀌었다. 전당포 주인은 지폐를 요리조리 뒤집어 보며 이상한 그림이라고 중얼거렸다. 왕도 외곽의 싸구려 여관, 그 방 한 칸이 도윤의 유일한 거처였다. 침대는 삐걱거렸고 창문 틈으로 밤바람이 스몄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그는 매일 밤 그렇게 되뇌었다. 이 세계의 언어는 이상하게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물어볼 곳도 없었고, 그저 스킬의 부수효과라 여기고 넘겼다. 낮이면 그는 시장을 돌며 사람들의 대화를 주워 들었다. 마법과 검이 존재하는 세계였고, 모험가라는 직업이 존재했다. 길드라는 곳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도윤에게는 검을 쥐어본 경험도, 마법을 다룰 재능도 없었다. 그는 그저 서른 언저리의 평범한 회사원이었을 뿐이다. 시장 한켠에서 검을 휘두르는 훈련생들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오늘도 안 팔렸나 보군." 여관 주인이 카운터 너머로 흘겨보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은근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도윤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시간, 시간, 그 소리만 벌써 열흘째다." 주인이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다. 그의 눈은 도윤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신분을 알 수 없는 뜨내기, 그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도윤은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열흘 전 그는 남은 돈을 계산했고, 그 계산은 지금 이 순간 완전히 바닥났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팔 수 있는 물건은 이미 다 팔았다. 지갑의 카드조차 전당포에서 거절당했다. 이곳 사람들 눈에는 카드에 그려진 숫자와 문양이 아무 가치도 없는 장식일 뿐이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다.' 그는 방으로 돌아가며 그렇게 생각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왕도의 불빛이 멀리서 흔들리고 있었다. 저 불빛 아래 누군가는 자신처럼 낯선 하늘 아래 던져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곧 지웠다. 지금은 자신의 생존이 우선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곳엔 이제 그의 몸이 없었다—장례가 치러졌는지, 아니면 실종으로 처리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조차 없었다. 스킬로 돌아간 순간에도 그는 유령처럼 존재했다.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고,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여닫는 것 말고는 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존재였다. 언젠가 그는 회사 앞까지 가본 적이 있었다. 동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그를 알아채지 못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이 그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살아야 할 곳은 여기다.' 도윤은 그렇게 결심했다. 결심은 컸지만 방법은 없었다. 검을 배울 시간도, 마법을 익힐 재능도 그에겐 없었다. 유일하게 가진 것은 남들에게 없는 스킬 하나뿐이었다. 그 스킬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창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왕도의 저녁을 알리는 소리였다. 도윤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여관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닥쳐올 순간을 상상하니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 하시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사람은 궁지에 몰려도 다음 발자국을 생각해야 한다.' 그 말이 지금처럼 무겁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쾅쾅- "방 빼라. 오늘까지다." 문 너머로 여관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주인의 얼굴엔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돈이 없으면 나가야지. 여기가 무슨 자선단체인 줄 아나." 주인이 팔을 뻗어 방 안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는 조금의 배려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늘 안에 어떻게든 마련해보겠습니다." 도윤이 답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됐고, 정오까지다. 그때까지 못 채우면 짐 다 밖에 내놓을 거야." 주인은 그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아버렸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윤은 텅 빈 방 한가운데 서서 짐을 챙겼다. 챙길 것이라곤 몇 벌의 옷과 지갑, 스마트워치뿐이었다. 손목의 시계는 여전히 배터리가 남아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 외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정오까지 남은 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은화 몇 닢으로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고, 팔 만한 물건도 이미 다 처분한 뒤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도윤은 창밖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되뇌었다. 왕도의 아침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어디에도 그를 도와줄 이는 없어 보였다.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 상인이 물건을 파는 외침,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신원 없는 이방인에게 이 세계는 친절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낯선 얼굴을 경계했고, 도윤의 말투나 몸짓 하나에서도 이질감을 읽어냈다. 짐을 다 챙긴 그는 방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여관방을 나서면 갈 곳이 없었다. 정오까지 은화를 마련하지 못하면 오늘 밤은 길바닥에서 자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스마트워치를 내려다보았다. 액정에 뜬 시각이 아침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네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 한다.' 도윤은 그렇게 되뇌며 문을 나섰다. 정오까지, 무언가라도 해봐야 했다. 왕도의 아침 공기는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그의 등을 밀어내듯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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