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젖먹이 시절은 솔직히 별로 할 얘기가 없다. 먹고 자고 싸고, 가끔 다른 아기들이 시끄럽게 울면 나도 반사적으로 따라 울고. 몸이 성인의 판단력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느낀 시기였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몸이 안 움직이니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천장을 보면서 '아 저거 곰팡이 핀 거 같은데 누가 청소를 좀' 하고 생각해봐도, 입에서 나오는 건 그냥 "응애"였다. 서른 넘게 산 인간의 정신이 이런 데서 무력해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두 살, 세 살, 다섯 살. 몸이 자라면서 조금씩 손발이 내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이 세계에 적응하는 연습을 했다. 걷는 것부터 다시 배우고, 숟가락 쥐는 법도 다시 배우고. 전생에는 젓가락질도 예쁘게 한다고 칭찬받던 인간이 이번 생엔 숟가락 하나 제대로 못 쥐어서 밥알을 다 흘렸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자존심을 세울 처지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평민 고아라는 사실이었다.
고아원 아이들은 나름의 서열이 있었다. 부모가 죽기 전에 뭘 좀 남겨준 아이들, 후원자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들, 그리고 나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아이들. 나는 확실히 마지막 부류였다. 이름도 없이 발견됐다고 해서 원장님이 대충 붙여준 이름이 이도윤이었다. 성까지 붙어 있는 걸 보면 나름 신경 써서 지어준 것 같긴 한데, 정작 나를 낳은 사람이 누군지는 아무도 몰랐다.
"야, 이도윤. 너 밥 남았으면 나 줘."
"싫은데."
"싫은데? 너 지금 나한테 싫은데라고 했냐?"
이런 대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됐다. 상대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성민이라는 놈이었는데,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는 이유로 고아원의 자칭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칭 타이틀에 별로 감명받지 않았지만, 몸이 다섯 살짜리 어린애인 이상 저 녀석 힘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전생의 나였으면 삼십 초 안에 제압했을 텐데, 지금 몸으로는 팔씨름도 질 것 같았다.
그날도 성민은 내 밥그릇을 뒤집었다. 그것도 다섯 살 생일이라고 특별히 나온 계란 반찬이 있던 날이었다. 원장님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계란을, 그것도 부쳐서 반찬으로 내주신 날. 고아원에서 계란 반찬이 나오는 건 일 년에 몇 번 없는 일이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계란을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와.
진짜 치사하다.
내 인생 두 번째로 살면서 계란 하나에 이렇게 서러울 줄 몰랐다. 전생에 편의점에서 계란말이 삼각김밥을 사 먹을 때는 이게 이렇게 귀한 건지 몰랐는데.
"너 자꾸 이러면 원장님한테 말할 거야."
"말해봐, 어디. 원장님이 너 편들어줄 것 같아? 너 부모도 없는 애잖아."
그 말에 주변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 없는 애라니, 여기 있는 애들 전부가 부모 없는 애들 아닌가. 그런데도 그 말이 유효한 조롱거리가 되는 게 이 세계의 논리였다. 뭐라도 하나 다른 게 있으면 그게 곧 표적이 됐다. 후원자가 없는 애, 이름을 원장님이 지어준 애, 아무도 면회 오지 않는 애. 이 셋 중에 하나만 걸려도 놀림거리가 됐고, 나는 셋 다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미 서른 넘게 살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사람 입장에서 다섯 살짜리 애들 텃세가 그렇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달까. 대신 다른 종류의 서글픔이 밀려왔다.
나는 이 세계에서 아무도 아니었다.
부모도, 배경도, 이름도 특별한 게 없는, 텍스트 한 줄에도 등장하지 않는 조연. 게임 원작이라면 아마 튜토리얼 배경 그림 속 이름 없는 아이 1 정도였을 거다. 주인공이 지나가는 마을 배경에 서 있는 엑스트라. 대사 한 줄도 없이 그냥 서 있다가 화면 전환되면 사라지는 그런 존재.
그날 밤 나는 창고 옆 계단에 앉아 별을 보고 있었다.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전생에서는 도시 미세먼지 때문에 별 보기가 힘들었는데, 여기 별은 진짜 쏟아질 듯 많았다. 이런 거 하나는 이 세계가 낫다고 생각하며 앉아 있는데, 원장님이 지나가다 나를 발견했다.
"또 여기 있었구나."
원장님은 성별을 딱 구분하기 어려운, 늘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사람에게만은 마음이 편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사람은 나를 다른 애들처럼 대충 취급하지 않았다.
"밥 뒤집혀서 못 먹었어요."
"성민이가 또 그랬니."
"네."
원장님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숨을 쉬며 내 옆에 앉았다. 계단이 차가운지 몸을 살짝 웅크리면서.
"미안하구나. 내가 다 챙겨주지 못해서."
나는 그 말에 뭐라 답하지 않았다. 어른이 애한테 사과하는 상황이 낯설었던 건 아니고, 그냥 이 사람의 죄책감이 나한테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원장님은 마음이 여렸지만, 여기 있는 애들이 전부 다 이런 상황이었다. 스무 명이 넘는 애들을 혼자 돌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챙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사람이 다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배 안 고파요."
거짓말이었다. 배는 고팠다. 근데 이걸로 원장님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원장님은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내일 아침엔 네 몫 따로 챙겨줄게."
"고맙습니다."
원장님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나는 한참 별을 봤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 세계에서 진지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밥그릇을 뒤집는 놈한테 계속 당하고 살 수는 없었다. 전생의 나는 회사에서 상사한테 갈굼당해도 어떻게든 버텼는데, 이번 생에는 다섯 살짜리한테까지 밀리고 있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몸이 자라면 힘도 자연스럽게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것만 믿고 기다리기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뭐라도.
다음 날 아침, 성민이 또 내 앞에 나타났다. 이번엔 밥그릇이 아니라 내가 아끼던 나뭇가지 검을 뺏으려 들었다. 그 나뭇가지 검은 내가 뒷산에서 직접 주워다가 며칠에 걸쳐 다듬은 거였다. 딱히 대단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 세계에서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 만든 '내 것'이었다.
"이거 내놔."
"싫어."
"싫다고? 너 뭐 믿고 그러는데."
성민의 손이 내 목덜미를 향해 뻗어왔다. 나는 그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내 의지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할 틈도 없었다. 눈앞에 손이 다가오는 걸 본 순간, 몸이 그냥 알아서 대응했다.
성민의 손목을 잡아 비틀고, 뒤로 넘어뜨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 나조차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손목을 잡은 각도, 체중을 이용해 넘긴 방식, 전부 내가 배운 적 없는 움직임이었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성민은 바닥에 넘어진 채 나를 올려다봤고, 나조차도 방금 내가 뭘 한 건지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다섯 살짜리 몸으로, 다섯 살짜리치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이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