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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우리 조 할래?" 이서연이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되물었다. "…나?" "응, 너."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고, 나는 그 웃음 앞에서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걸 느끼며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몇 번이나 돌리다가, 그녀가 눈치챌까 봐 슬그머니 필통 속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반의 조 편성표에 이름을 올렸는데, 놀랍게도 그 옆 칸에는 한소율의 이름도 함께 적혀 있었다. 칠판 앞에 붙은 종이를 다시 확인하러 갔을 때도 내 이름은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꿈이 아니었다. 반 전체가 그 조합을 신기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저 조는 뭐야, 갑자기?" 하는 웅성거림이 곳곳에서 들려왔고, 나는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워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누군가는 대놓고 나를 힐끔거리며 옆자리 친구와 귀엣말을 주고받았고, 또 누군가는 아예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 채 노골적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반의 가장 예쁜 여학생과 두 번째로 예쁜 여학생, 그리고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내던 전학생이 한 조가 된다는 게 아이들 눈에는 이상해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럴리가, 이건 그냥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시선을 책상 위로 떨어뜨렸지만, 등 뒤로 쏟아지는 눈길들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마치 내가 갑자기 반의 중심 무대에 떠밀려 올라간 기분이었다. 그때 준혁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치며 낮게 속삭였다. "너, 요즘 뭔가 달라졌다. 알아?" 나는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쳐다봤다. "전에는 교실에 있어도 없는 사람 같았는데, 요즘은… 뭐, 존재감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준혁이 팔짱을 끼며 씩 웃었다. "이서연이 먼저 말 걸었다는 게 벌써 애들 사이에 소문 다 났어. 몰랐지?"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마음 어딘가가 뭉근하게 데워지는 걸 느꼈다. 존재감이 생겼다는 말이, 아무도 없는 사람처럼 지냈던 지난 몇 달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동시에 낯선 온기를 안겨줬다. 그날 저녁, 나는 침대에 누워 며칠 전 이서연과 처음 대화를 나누던 순간을 자꾸만 떠올렸다. 천장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그 장면을 되짚었는데, 아무리 되짚어도 믿기지 않는 건 여전했다. 그날, 그 짧은 순간. 필통에 붙어 있던 낡은 스티커 하나를 알아본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반짝였는지, 그리고 그 반짝임이 나에게로 향했을 때 내가 얼마나 낯설고도 벅찬 기분을 느꼈는지. '어, 이거 이터널가든 아니야?' 그 한 문장이 내 하루를, 아니 내 며칠을 통째로 바꿔놓았다는 걸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여겼던 그 스티커를, 그녀는 단번에 알아봤다. 반년 넘게 필통 구석에 붙어 있으면서도 누구 하나 눈길 준 적 없던 그 작은 캐릭터를. 왜 하필 그녀였을까, 하는 물음이 자꾸만 맴돌았지만 답은 없었다. 혹시 나 같은 애를 놀리려고 일부러 아는 척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잠깐 스쳤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그런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저 순수하게, 반가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서연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왔다. "토요일에 조 모임 전에 시간 되면 같이 서점 갈래? 이터널가든 신작 나왔대." 나는 그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이게 정말 나에게 오는 메시지인가 하는 의심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켜서 확인하기를 세 번쯤 반복했을까, 그제야 이게 착각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다. 손끝이 떨리는 채로 답장을 눌렀다. "좋아."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도 한참을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봤다. 이서연이 곧바로 하트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왔을 때는, 별것도 아닌 그림 하나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끼며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토요일, 대전 시내의 작은 서점 앞에서 이서연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나와버린 탓에, 서점 근처를 두 바퀴나 돌며 시간을 보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리는 것 같았고, 심장은 쉴 새 없이 쿵쾅거렸다. 혹시 오늘 못 온다는 연락이 오면 어쩌나, 혹시 잘못 나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스치며 몇 번이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어오며 손을 흔들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방금 왔어." 나는 거짓말을 했지만 그녀는 별로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숨을 고르며 씩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여기까지 서둘러 왔다는 게 느껴져서 괜히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서점 안에서 우리는 게임 신작 관련 책자와 잡지를 함께 뒤적였고, 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놀랍도록 편안하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신작 일러스트가 실린 페이지를 발견할 때마다 낮게 탄성을 내지르며 내 팔을 붙잡고 흔들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옆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계산대 앞에서 그녀가 지갑을 뒤적이며 "이건 내가 살게" 하고 말했을 때는, 괜찮다고 말리는 것도 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혼자였던 금요일 밤, 피자 한 조각과 게임 화면만이 유일한 위로였던 그 조용한 시간들이 이제는 조금씩 다르게 채워지고 있다는 걸 나는 실감했다. 서점을 나오며 그녀가 문득 말했다. "다음에는 소율이도 데려올게. 걔도 이런 데 오는 거 되게 좋아해."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순간 마음 한구석이 미묘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는데, 그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어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좋은 일이잖아, 셋이 함께라도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지만, 가슴 한켠에 남은 미묘한 앙금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되짚던 나는 문득 낮에 서점 계산대 앞에서 마주쳤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이서연이 계산을 마치고 뒤돌아섰을 때, 서점 유리문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을.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곱씹을수록 그 실루엣이 한소율과 닮아 있었다는 게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밀어내며 이불을 끌어당겼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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