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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이서연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부터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뇌고 있었다는 걸 스스로도 이상하게 여겼다. 어제 그녀가 갑자기 다가와 게임 얘기를 쏟아내고 간 뒤로, 나는 쉬는 시간마다 괜히 필통을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다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그 기대가 우습다는 자각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필통 지퍼를 열었다가 다시 닫고, 또 열었다가 닫으면서 나는 스스로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그 손짓만 반복하고 있었다. 안에 든 캐릭터 스티커 하나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어제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애써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굴었다. 그럴리가, 어제는 그냥 신기해서 한 번 말 걸어본 거겠지. 그런 생각으로 애써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데, 정작 아침 조회 시간에 이서연은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담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동안에도 나는 곁눈질로 그녀의 자리를 몇 번이나 살폈지만, 그녀의 시선은 단 한 번도 나를 향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옆자리, 창가 쪽 맨 앞줄에 앉은 여학생에게 계속 웃으며 말을 걸고 있었는데, 그 여학생을 본 순간 나는 반의 공기가 어제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금발에 벽안, 서구권 혼혈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외모의 그 아이 주변으로는 늘 몇 명씩 아이들이 몰려 있었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름은 한소율이었다. 반의 태양이라는 말이 저런 아이를 위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회가 끝나고 담임이 교실을 나가는 그 짧은 틈에도 아이들 몇이 한소율 자리로 몰려가 무언가를 보여주며 까르르 웃었고, 이서연 역시 그 웃음의 한가운데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나와 이서연 사이의 거리와, 이서연과 한소율 사이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해보다가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깨닫고 손끝이 저릿해졌다. 같은 반이라는 것 말고는 그 둘과 나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 보였고, 어제의 그 짧은 대화가 오히려 착각이었나 싶어 목이 탔다.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손가락 끝으로 나무 무늬를 따라 그으면서, 나는 어제의 대화를 다시 곱씹어보았다. 필통 스티커를 보고 눈을 반짝이던 그녀의 표정, 게임 캐릭터 이름을 정확히 맞히며 신나 하던 목소리. 그게 정말 나한테만 보인 얼굴이었을까, 아니면 누구한테나 그렇게 쉽게 웃어주는 사람인 걸까. …모르겠다. "야, 정우진." 옆자리에서 누군가 불쑥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남학생이 씩 웃고 있었는데, 나는 순간 경계심이 앞서 몸이 살짝 굳는 걸 느꼈다. "나 박준혁. 여기 앉은 지 일주일이나 됐는데 이제야 인사하네, 미안."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고, 나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으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정우진이야." 준혁의 손은 생각보다 힘이 세서, 짧은 악수 한 번에도 손목이 살짝 흔들릴 정도였다. 그는 곧바로 의자를 내 쪽으로 조금 끌어당기며 팔을 책상에 걸쳤는데, 그 자연스러운 거리감이 낯설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어제 이서연이랑 얘기하는 거 봤어. 게임 얘기였지?" 준혁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나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끼며 그가 어제 그 장면을 봤다는 사실에 묘하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 그냥, 필통 스티커 보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그가 이 얘기를 왜 꺼내는지 몰라 시선을 살짝 피했다. "신기하네. 서연이가 먼저 말 거는 거 별로 없는데." 준혁이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곱씹어보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별 뜻 없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 다독임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근데 왜 갑자기 인사하는 거야, 일주일이나 지나서." 나는 화제를 돌리듯 물었고, 준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귀찮았어. 그리고 딱히 말 걸 이유도 없었고. 근데 오늘 보니까 왠지 말 걸어야 할 것 같아서." 그가 씩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는데, 그 웃음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줘서 나는 다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도대체 왜 다들 나한테서 뭔가를 읽어내려는 걸까. 점심시간이 되자 준혁은 자연스럽게 몇몇 남학생들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들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고, 서로 어깨를 치며 장난을 주고받는 그 익숙한 몸짓들이 나는 그 무리에 낄 자격이 없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혼자 도시락을 꺼냈다. 도시락 뚜껑을 열자 어머니가 아침에 싸준 계란말이 냄새가 옅게 올라왔지만, 그마저도 오늘은 별로 입맛을 당기지 않았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다가, 문득 이서연과 한소율이 함께 급식실로 향하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걸으며 뭔가에 대해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소리가 유리창 너머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 같아서 나는 괜히 도시락 뚜껑을 세게 닫아버렸다.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서, 나는 순간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서글퍼서, 나는 젓가락을 든 손에 힘을 주며 애써 밥알을 씹었다. 어색하고 낯설고, 그리고 조금은 서글픈 하루였다. 오후 수업 시간에는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를 쓰는 동안에도 나는 몇 번이나 이서연의 뒷모습을 향해 시선을 던졌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그만하라고 다그쳤다. 그녀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사실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자꾸 마음 어딘가가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렇게 오후 수업이 끝나갈 무렵, 나는 가방을 챙기며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가려 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정우진, 잠깐만." 낯익은 목소리였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해서, 나는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이서연이 내 자리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는데, 종일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다가오는 게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녀의 걸음이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곧게 다가오는 게 이상하게 가슴을 더 조여왔다. 그녀의 손에는 어제와는 다른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목이 타는 걸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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