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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사물함 문이 열리는 소리, 그 다음엔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웃는 소리는 유독 크게 울리는 법이어서, 나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이 먼저 굳어버리는 걸 느꼈다. 안에 든 것들이 바닥에 쏟아지고, 누군가의 발이 그걸 밟고 지나가고, 나는 그저 서서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노트가 찢어진 채로 발밑에서 밀려다녔고, 필통 속 펜들은 여기저기 튀어 나가 복도 구석까지 굴러갔다. 억울해서 아무 말도 못 했고, 무서워서도 아무 말을 못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다들 시선을 피했고, 나는 그 시선들이 나를 지나쳐 가는 걸 하나하나 느낀 채로 서 있어야 했다. 누군가는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별 뜻 없는 손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동안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걸 배웠다. 눈을 떴을 때 천장은 낯익은 형광등 자국이었다. 좁은 원룸의 벽지 무늬, 협탁 위에 놓인 안경, 그 모든 것이 익숙한데도 심장은 아직 그 사물함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뛰고 있었다. 새벽 네 시.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한참을 그대로 앉아 숨을 골랐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고, 목덜미는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괜찮아. 여긴 그 학교가 아니다. 여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이다. 그렇게 되뇌는 동안에도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두 손을 맞잡고 몇 번이고 비볐지만, 그 냉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새벽 공기가 방 안을 서늘하게 채우고 있었고, 그 서늘함이 오히려 나를 현실로 붙잡아주는 것 같았다. 다시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누군가를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 같은 건 만들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웃음소리 앞에서 무력하게 서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짐들을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나는 겨우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사물함 앞의 장면이 조금은 흐릿해졌다. 선진고등학교로 전학이 아닌 새 입학을 결정한 건 부모님의 사정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시작한다는 건, 적어도 누군가가 나를 미리 판단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예전 학교 아이들이 나를 어떤 눈으로 봤는지, 그 시선들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이제 와서 따져봐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냥, 그 모든 걸 다 떼어놓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문제는 내 얼굴이었다. 안경 너머로도 다 보이는 인상, 양쪽 귀에 아홉 개씩 박힌 피어싱, 어머니는 그걸 볼 때마다 한숨을 쉬셨지만 나는 그게 유일하게 나를 스스로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도 아무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 계산은 단순했다. 무섭게 보이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건드리지 않으면, 다치지 않는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 논리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입학식 날, 그 계산이 처음으로 틀렸다. 강당 안은 낯선 얼굴들로 가득했고, 나는 그 틈에서도 유독 혼자 서 있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중학교를 확인하고, 아는 얼굴을 찾아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런 풍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게 편했다. "야, 너 혼자 서 있는 거 처음 봤을 때부터 궁금했어." 박준호는 강당 뒤편에 혼자 서 있던 나를 보고 그렇게 말을 걸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경계했고,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개의치 않고 옆에 붙어 섰다. 그 거리감 없는 태도가 오히려 낯설었다. "뭐야, 무섭게 왜 그렇게 봐. 나 시비 거는 거 아니야." "…알아." "그럼 인상 좀 풀어. 안 그래도 무섭게 생겼는데."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잠깐 웃었던 것 같은데, 그가 그 웃음을 놓치지 않고 반가워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오, 웃네?"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그 모습이,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중엔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김태윤은 그 뒤로 며칠 지나 합류했다. 농구부 활동으로 늦게 강당에 도착한 그는 준호와 아는 사이였는지 자연스럽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나를 보더니 대번에 물었다. "너 그 피어싱 아파?" "...안 아파." "오, 대답하네." 별거 아닌 반응에도 그는 웬일로 즐거워했고, 나는 그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왜 내가 무섭게 생긴 것에 개의치 않을까. 준호는 옆에서 계속 뭔가를 떠들었고, 태윤은 그 말에 시비를 걸듯 받아쳤다. 둘의 대화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나는 그 사이에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편안했다. 그게 다일까? 나는 지금도 그 질문에 확신이 없다. 두 사람이 나를 진짜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신기한 걸 발견한 기분으로 다가온 건지,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얼굴로 다가왔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끝이 어땠는지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등교하는 길에 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면, 예전처럼 몸이 먼저 굳는 일은 없었다. 그건 확실히 달라진 감각이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어깨가 움츠러들던 습관이, 언제부턴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전히 시선이 몰렸다. 불량배가 왔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이 슬쩍 눈을 피하는 걸 나는 매번 느꼈고, 그 시선을 무시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일이 되어 있었다. 어떤 애들은 대놓고 자리를 피했고, 어떤 애들은 곁눈질로 나를 훑고는 자기들끼리 낮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 모든 걸 못 본 척 지나치는 게 이제는 몸에 붙은 습관이었다. 다만 창가 쪽 자리에 앉은 서은재라는 이름의 여학생을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달랐다. 아마빛 머리카락이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옅게 반짝였고, 그 애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끝이 조용히 움직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를 흘긋거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일부러 시선을 피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앞의 책에만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눈에 띄었다. 반 아이들 사이에서 학년 1위라는 이야기가 들렸을 때, 나는 그저 저런 세계와 나는 다른 세계에 산다고 생각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얼굴로,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나에게 그 애는 마치 다른 층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같은 반이라는 사실 말고는, 그 애와 나 사이에 겹칠 만한 지점이 없어 보였다. 그 생각이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담임은 종례 시간에 뭔가 공지가 있다며 종이 한 장을 흔들었다. "다음 주부터 국어 조별 과제 시작할 거니까, 자리 배치 미리 봐 둬라. 그리고—" 담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뒷문 쪽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교실 안이 순간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손을 든 채로 가만히 서 있는 그 자세가, 이상하게도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나는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지만, 준호가 옆에서 낮게 속삭인 말이 귀에 걸렸다. "야, 저기 서은재잖아. 왜 손 들었냐."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 등 뒤로 서늘한 예감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담임이 그쪽을 향해 걸어가는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고, 교실 안의 웅성거림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왜인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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