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오전, 1학년 3반 교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교실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책상에 앉아 웅성거리며 등교 직후의 산만한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강서현이 칠판 앞에 서서 조회 안내문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는데, 반듯한 자세와 침착한 어조가 학급 위원장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오늘 3교시 후에 체육복 검사가 있을 예정이니, 미리 확인해두시기 바랍니다."
서현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교실 전체에 골고루 퍼졌고, 그 톤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도윤은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서현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매의 결, 콧대의 선, 말할 때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의 각도까지.
'닮았네.' 도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 만난 강서린과 같은 성이었고, 눈매의 결도 어딘가 비슷했지만, 서현의 표정에는 서린에게서 느껴졌던 날카로움 대신 온화한 침착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린이 상대를 가늠하듯 정면으로 쏘아보는 눈빛을 가졌다면, 서현은 그보다 훨씬 부드럽게 시선을 내려앉히는 편이었다. 같은 얼굴에서 이렇게 다른 인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도윤에게는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조회가 끝난 뒤,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이, 서현이 교탁 서류를 정리하다가 무거운 파일함을 들어 올리려는데, 근처에 있던 남학생 하나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제가 옮겨드릴게요."
남학생이 친절하게 말을 건넸지만, 서현은 짧게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파일함을 들어 올렸다. 파일함은 A4 용지가 가득 든 것처럼 무거워 보였고, 서현의 팔이 살짝 기울어지는 것도 눈에 보였지만, 그녀는 조금도 힘든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는데, 그 태도에 남학생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남학생은 뭔가 더 말을 붙이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도윤은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서현이 남의 도움을 자연스럽게 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거절의 말투에는 상대를 밀어내는 냉정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과한 어떤 규칙을 지키는 듯한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누구한테도 기대지 않으려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서현의 뒷모습을 조금 더 오래 눈으로 좇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쉬는 시간, 교실 안이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자, 태준이 도윤의 자리로 다가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뒤,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야, 너 서준이 상황 알아?"
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도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쟤 지금 다섯 명이야, 다섯 명."
태준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세었다. 그 손짓이 마치 중요한 통계를 발표하는 사람처럼 진지해서, 도윤은 조금 웃음이 나올 뻔했다.
"2반 애, 5반 애, 우리 반 두 명, 그리고 저기 도서부장까지. 본인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창가 쪽을 바라보니, 서준이 곤란한 표정으로 여학생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초콜릿을 내밀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노트를 빌려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세 번째 여학생은 팔짱을 낀 채 서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서 있었고, 그 뒤에서 도서부장이라는 여학생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은 이도저도 못하는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기, 나는 딱히..."
서준의 우유부단한 대답에 여학생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초콜릿을 내밀던 여학생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뭔가를 속삭였고, 서준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
"저게 부럽냐, 안 부럽냐."
태준이 도윤의 옆구리를 찌르며 묻자, 도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안 부러워. 피곤해 보여."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지만, 그 눈빛에는 살짝의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도윤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태준의 씁쓸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고, 굳이 말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감정이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여학생들은 뭔가 아쉬운 얼굴로 흩어졌고, 서준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지나가는 길에 도윤과 눈이 마주치자, 서준은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했다."
서준이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지만, 도윤은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
점심시간, 도윤이 급식실로 향하던 길에 복도 게시판 앞에서 서현과 마주쳤다. 복도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가는 시간이라 소란스러웠고, 그 소음 속에서도 서현은 유독 정적인 자세로 게시판에 붙은 학급 공지문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종이 끝이 살짝 구겨져 있는 것을 손끝으로 펴는 모습이,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도윤이 지나가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도윤 학생, 맞죠."
서현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물었다. 그 물음에는 확인이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이 섞여 있었다.
도윤은 뜻밖의 호명에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동생한테 들었어요."
서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는데, 그 순간 도윤의 심장이 살짝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 미소가 서린의 것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이미 두 사람 모두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인지, 도윤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제 도와줬다고. 고마워요."
"별거 아니었습니다."
도윤이 반사적으로 어제와 같은 대답을 내놓자, 서현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도윤을 훑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려는 듯 조심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서린이, 원래 그런 식으로 먼저 다가가는 애 아닌데."
서현의 시선이 미묘하게 깊어지며, 도윤을 관찰하듯 살폈다. 게시판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서린의 눈빛과 겹쳐 보였고, 도윤은 그 순간 두 사람이 결국 같은 핏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도윤은 그 시선에 어쩐지 뒷목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서현의 말투에는 경계도 아니고 호의도 아닌, 그 사이의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마치 저울 위에 그를 올려놓고 아직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인사였을 뿐이에요."
도윤이 애써 담담하게 대답하자, 서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발걸음은 서두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리지도 않는, 어딘가 정해진 속도로 복도를 가로질러 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도윤은 문득, 이 쌍둥이 자매가 만들어낼 관계의 파장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느꼈다. 게시판 앞에 홀로 남은 도윤은 방금 나눈 짧은 대화를 몇 번이고 곱씹었는데, 곱씹을수록 서현의 마지막 시선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점점 더 알 수 없어졌다. 그저 확실한 것은, 그 시선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뿐이었다.
급식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고, 도윤은 자신이 어제 아주 작은 친절 하나로 무언가 커다란 것의 문턱을 넘어버렸다는 것을, 아직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그 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