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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한빛고등학교 1학년 3반 교실은 아침부터 미묘한 소란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은 한서준의 주변으로 여학생 몇이 자연스레 모여들었는데, 누가 먼저 다가간 것도 아니고 그가 특별히 애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한서준은 반듯한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넘기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그 무심한 옆모습 하나에도 시선이 몰리는 것을 정작 본인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서준아, 이번 수학 시험 범위 어디까지야?" "어, 그게... 잠깐만." 한서준이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프린트를 뒤적이자,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소리에 다른 두 명이 더 다가와 어느새 대여섯 명이 그의 자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김도윤은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며,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는 손끝에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은 채로 무심히 시선을 거두었다. '또 저러네.' 한서준은 딱히 잘난 척을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여학생들의 질문에 어색하게 대답하는 쪽이었는데, 그 우유부단한 태도조차 상대에게는 매력으로 읽히는 모양이었다. 박태준이 옆자리에서 팔꿈치로 도윤의 옆구리를 툭 치며 낮게 속삭였다. "저건 사기야, 사기." "뭐가." "쟤 인생이.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존재감도 없는데 쟤는 입학하고 두 달 만에 다섯 명이 붙었잖아." "그게 왜 사기야. 인기 있는 거지." "인기가 그렇게 쉽게 생기냐? 우리도 웃고 다니고 친절하게 굴어봐도 아무도 안 몰려." 도윤은 픽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과 비슷한 얼굴,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걸음걸이를 한 무리를 발견하고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저 무리 중 하나겠지.' 특별히 잘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히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운동을 잘하는 것도, 재치 있는 말솜씨로 반 분위기를 이끄는 것도 아닌, 그저 반 명단에 이름 한 줄로 존재하는 학생. 도윤은 그 사실을 딱히 억울해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런 담담함이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익숙했다. 중학교 때부터 그래왔으니까. 주인공은 늘 따로 있었고, 그 주변에서 조연들이 움직였으며, 자신은 그 조연들 사이에서도 이름 없는 배경으로 서 있는 것이 당연했다. 교실 뒷문으로 담임이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한서준을 둘러싼 무리가 슬금슬금 흩어졌고, 그 짧은 소란의 끝자락에서도 몇몇은 아쉬운 눈빛으로 서준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야, 이거 봐봐." 박태준이 스마트폰을 슬쩍 내밀며 화면을 보여주자, 도윤은 고개를 기울여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한서준과 어떤 여학생이 나란히 걷는 사진이 교내 익명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는데, 댓글창은 이미 서준을 둘러싼 소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거 봐, '한서준 여자친구 있대' 이런 글도 있고 '그건 사촌이다' 이런 것도 있고. 완전 난리야." "진짜 다섯 명 맞다니까. 우리 반 셋에 다른 반 둘." "관심 없어." 도윤이 짧게 대답하며 스마트폰을 밀어내자, 박태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넌 그런 거 궁금하지도 않아? 나는 매일매일 궁금해서 미치겠는데." "궁금할 시간에 잠이나 더 자는 게 나아." 박태준이 뭐라 더 말하려는 찰나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교실 안의 소란이 잦아들며 다들 자리에 앉는 사이, 도윤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오늘 하루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잠겨 있었다. 수업 시간 내내 도윤의 시선은 몇 번이나 창밖을 향했는데, 딱히 무언가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시선을 둘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 같은 날, 오후 4시 30분. 하교 시간. 도윤은 박태준과 나란히 교문을 나서며 별다른 대화 없이 걸었는데, 저녁 학원 시간까지 남은 삼십 분 정도를 편의점에서 때울지 서점에서 때울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늦여름의 햇살이 아직 뜨거워 교복 셔츠 안쪽으로 땀이 배어드는 것을 느끼면서, 도윤은 가방끈을 한 번 고쳐 메었다. "난 학원 늦으면 안 되니까 먼저 간다." 박태준이 손을 흔들며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자, 도윤은 혼자 남아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지름길로 알려진 그 길은 낮에도 사람이 드물어 조용한 편이었다.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낡은 가로수 그늘이 골목을 얼룩덜룩하게 덮고 있었고, 그 아래로 걸음을 옮기는 도윤의 발소리만이 고요를 채우고 있었다. 골목 안쪽에서 여러 명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낮고 위협적인 남학생들의 웃음소리와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짜증 섞인 여자아이의 목소리. 도윤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는데, 목소리의 톤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뭐지, 저거.'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고, 그 안에 섞인 웃음소리는 즐거움이 아니라 상대를 몰아붙이는 종류의 것이었는데, 도윤의 등줄기가 서늘하게 굳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골목 안쪽으로 몇 걸음 더 다가가자, 담벼락에 등을 붙인 채 서 있는 교복 차림의 여학생과 그 주변을 둘러싼 남학생 셋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여학생의 교복 넥타이는 도윤이 다니는 한빛고와 같은 색이었는데, 등에 멘 가방끈을 움켜쥔 손끝이 하얗게 변해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세 남학생 중 하나는 담배를 문 채로 여학생의 얼굴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팔짱을 낀 채 낮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여학생의 가방을 낚아채려는 듯 손을 뻗고 있었다. "야, 그냥 번호만 달라니까 왜 이렇게 빡빡하게 나와." "저기 죄송한데, 저 진짜 가야 되는데요..." 여학생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감추려는 듯 애써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는 것이 도윤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어왔다. 도윤은 자신의 존재감이 이 순간만큼은 얼마나 미미한지를 떠올리며 잠시 망설였지만, 그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저러다 진짜 무슨 일 생기면.' 머릿속으로는 이대로 못 본 척 지나가는 게 안전하다는 계산이 스쳤지만, 발은 이미 그 계산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남학생 중 하나가 여학생의 어깨를 밀치듯 손을 뻗는 순간,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골목 안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이런 순간에 등을 돌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몸을 먼저 움직이게 만들었다.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도윤의 목소리가 골목의 정적을 갈랐고, 세 명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담배를 물고 있던 남학생이 눈을 가늘게 뜨며 도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그 시선에는 대드는 상대를 재보는 듯한 여유가 담겨 있었다. "넌 뭔데 끼어들어." 그중 가장 키가 큰 남학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서려는 순간, 여학생이 도윤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는데, 그 눈빛에는 고마움보다 경계가 먼저 담겨 있었다. 도윤은 그 시선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제 와서 물러날 곳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골목 저편으로 해가 기울며 만든 긴 그림자가, 앞으로 벌어질 일의 무게를 미리 드리우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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