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번아웃 영업사원의 퇴사

3화

오 년 전 그해 여름, 나는 처음으로 팀 전체 회식에 참석했다. 강남 어느 골목의 삼겹살집이었는데, 간판에 불이 반쯤 꺼져 있어서 이름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 낡은 가게였지만, 그 안에서는 연기가 자욱하게 낀 채로 사람들이 하나둘 잔을 채워가며 떠드는 소리가 그날은 유난히 정겹게 들렸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는 소리와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뒤섞이고, 그 사이로 소주병이 부딪히는 쨍, 하는 소리가 간간이 끼어들었다. 나는 신입답게 구석 자리에 앉아 고기를 뒤집고 있었는데, 손에 익지 않은 젓가락질로 애를 먹는 사이에 소영 선배가 슬쩍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오며 물었다. "도윤 씨, 여기 온 지 벌써 세 달째죠? 어때요, 버틸 만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다정함이 반씩 섞여 있었고, 나는 그 물음에 잠시 젓가락질을 멈춘 채로 고민하는 척을 했다. 사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도망치고 싶어요." 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대답했고, 그녀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소주잔을 채워주었다. 잔에 술이 넘칠 듯 말 듯 차오르는 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는데, 이 사람 손이 은근히 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잘 버티고 있잖아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도 처음엔 그랬어요. 매일 아침마다 지하철역 앞에서 회사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니까요. 근데 지나고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사람들이 가족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가족, 이라는 말이 그때는 참 낯설게 들렸다. 나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몇 번 굴려보다가 그냥 잔을 들어 부딪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날 지현이와 영수가 취기가 오른 채로 벌인 노래방 사건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회식 이차로 넘어간 노래방은 좁은 방마다 색색의 조명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지현이가 마이크를 붙잡고 발라드를 열창하는데 음정이 하도 안 맞아서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감정을 잡는 척했지만, 정작 가사는 절반쯤 놓치고 후렴구만 목청껏 질러대는 통에 노래방 기계 화면에 뜬 점수가 40점대에서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영수는 그 옆에서 탬버린을 흔들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져 소파에 처박히는 바람에 방 안이 순식간에 폭소로 뒤덮였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폰으로 찍어대고, 또 누군가는 배를 잡고 바닥을 두드리며 웃었다. "야, 너희 진짜 웃기다.." 나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었고, 웃다가 사레들려 콜록거리기까지 했다. 그런 나를 보던 소영 선배는 조용히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런 거 보니까 도윤 씨도 이제 완전 우리 팀 됐네."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왔는지, 나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도 계속 그 문장을 되씹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규칙적으로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 한마디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이제 우리 팀이 됐다는 그 한마디가,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준 뿌리 같은 말이었다는 걸 그때는 아직 몰랐다. 택시 기사님이 라디오를 낮게 틀어놓았는데, 흘러나오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나는 그 문장 하나에만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 유대감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부터였다. 박준호 과장은 회식 자리에서조차 조용히 사람을 골라 압박하는 재주가 있었다. 겉으로는 늘 호탕하게 웃고 술도 잘 마시는 편한 상사처럼 보였지만, 그 웃음 뒤편에는 늘 누군가를 찔러볼 틈을 노리는 눈빛이 숨어 있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날 밤 그는 이미 얼큰하게 취한 채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옆자리로 옮겨와 앉으며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김도윤이, 너 이번 달 실적 왜 그래? 신입이라고 봐주는 거 언제까지 갈 거 같냐." 그 말에 좌중이 순간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왁자하게 웃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잦아들면서, 노래방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반주 소리만 어색하게 방 안을 채웠다. 나는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소주잔만 만지작거렸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잔을 꽉 움켜쥐었다. "과장님, 도윤 씨 이제 세 달 됐잖아요. 좀 봐주세요." 소영 선배가 대신 그렇게 나서주었다. 하지만 박준호 과장은 그 말에 오히려 눈썹을 치켜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한소영 씨는 늘 이렇게 신입 편만 들지. 그러니까 애들이 응석받이가 되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소영 선배의 표정이 아주 짧게 굳었다. 아주 짧은,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 지나갈 만큼 순식간의 균열이었는데,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웃음을 지었다. 그 짧은 굳음을, 나는 그날 처음 목격했다. 완벽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 위로 스쳤던 그 미세한 균열이, 나중에 얼마나 깊은 것으로 자라나는지는 그때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술기운 때문인가, 하고 넘겼을 뿐이었다. 지현이가 그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는 듯 갑자기 마이크를 다시 붙잡고 흘러나오던 트로트 반주에 맞춰 몸을 흔들었고, 영수도 덩달아 박자도 안 맞는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방 안 분위기는 다시 어느 정도 풀리는 듯했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계속 소영 선배의 옆얼굴을 힐끔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회식이 끝나고 다들 흩어질 때, 밤바람이 후텁지근하게 목덜미에 감겨오는 골목 앞에서 소영 선배는 나를 따로 불러 세우며 말했다. "과장님 말은 신경 쓰지 마요. 원래 저런 식이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나는 그 담담함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느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던 그녀의 어깨가 아주 살짝 처져 있었던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선배도 힘든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없었다. 그저 발끝으로 바닥의 담배꽁초를 툭 건드리며 시선을 피했을 뿐이었다. "선배는 괜찮으세요?" 대신 나는 그렇게 물었고, 그녀는 잠깐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왜 안 괜찮아요, 나는 이 회사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인데." 그 대답이 너무나 자신만만해서,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였고, 목소리에도 여유가 넘쳤으니까. 그게 그녀 나름의 방어라는 걸, 나는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는 그저 그녀가 정말로 강한 사람이라고,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는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녀는 이미 저 멀리 골목 끝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던 게,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박준호 과장의 압박은 조금씩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회식 자리에서만 슬쩍 던지던 말들이 점점 회의 자리로, 그리고 사무실 한복판으로 옮겨오기 시작했고, 그 화살은 점점 더 자주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소영 선배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는 순간들이 하나둘 늘어갔다는 것을, 나는 그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언젠가부터 그녀가 나를 감싸주는 말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만을, 아주 늦게서야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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