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저녁 식탁 위로 온기가 피어올랐다. 이청아가 마지막 접시를 내려놓으며 조용히 물러섰다. 국그릇에서 올라오는 김이 천장의 조명 아래 흩어졌다. 저택의 넓은 식당은 유난히 고요했다.
서은과 보름은 도현의 양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마치 미리 정해둔 듯한 자리였다. 도현이 젓가락을 들기도 전에 두 사람의 눈은 이미 그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식사가 시작됐다. 수저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만이 잠시 식탁을 채웠다. 하지만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은이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손끝이 반찬 그릇으로 향했다.
— 오빠, 이거 먹어봐. 오빠 좋아하던 거잖아.
그녀가 나물 무침 하나를 도현의 접시에 옮겨 놓았다. 손길이 다정했다. 그 다정함 속에는 은근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보름이 곧바로 맞받았다. 그녀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 오빠 진짜 좋아하는 건 이거야. 언니가 잘못 알고 있네.
보름도 다른 반찬을 그의 접시에 놓았다. 생선조림이었다. 서은의 반찬 옆으로 나란히 놓인 그것은, 마치 선전포고처럼 도현의 접시 위에 자리 잡았다.
도현의 접시는 순식간에 두 사람의 정성으로 채워졌다. 나물과 생선, 그 사이에 놓인 밥그릇. 그는 어색하게 두 접시를 번갈아 보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 둘 다... 고마워.
중립적인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소녀의 눈빛은 이미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부딪히고 있었다.
서은이 낮게 말했다.
— 오빠가 좋아하는 거 정확히 아는 사람이 누군지, 시간이 알려줄 거야.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숨은 칼끝은 분명했다. 보름이 곧바로 되받았다.
— 시간은 나도 똑같이 보냈어. 언니만 특별한 거 아니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식탁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이청아가 조심스레 물잔을 채우며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이미 이 긴장을 여러 번 목격한 듯, 표정에 놀라움이 없었다. 다만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 언니는 항상 그런 식이야. 자기가 다 안다는 듯이.
— 나는 사실을 말하는 거야. 네가 못 받아들이는 거고.
젓가락이 접시 위에서 멈췄다. 도현은 두 사람의 대화가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마치 자신이 이 싸움의 원인이자 상품처럼 취급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탁, 소리가 식탁 위에 울렸다.
— 그만해. 둘이 이렇게 싸우면 나 밥도 못 먹어.
서은과 보름이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표정이 순간 부드러워졌다. 마치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조금 전까지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 미안, 오빠. 밥이나 먹자.
— 나도 미안해, 오빠.
하지만 그 시선은 여전히 서로를 곁눈질하며 견제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아래 감춰진 것은 분명 다른 감정이었다. 도현은 그 미묘한 온도차를 느끼면서도, 애써 모른 척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남은 시간 동안 대화는 조심스러워졌고, 누구도 먼저 날카로운 말을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조차도 도현에게는 불편했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무언가를 억지로 눌러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도현은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정원으로 향했다. 등 뒤로 두 사람의 시선이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정원의 밤공기는 차가웠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폐 안으로 밀려드는 냉기가 오히려 머릿속을 맑게 해주는 듯했다. 별빛 없는 서울의 밤하늘이 유난히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구름이 낮게 깔려 도시의 불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이 집에 돌아온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그는 정원의 벤치에 걸터앉았다. 손끝으로 차가운 나무 표면을 쓸었다. 저택 안에서 들려오던 소리는 이제 완전히 멀어져 있었다.
'서은도, 보름도...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기억 속의 두 사람은 웃음이 많던 소녀들이었다. 그가 없는 시간 동안 무언가가 서서히 뒤틀린 것일까. 아니면 그가 돌아온 것 자체가 뒤틀림의 시작이었을까.
그때, 등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 자갈을 밟는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돌아보니 이청아였다. 그녀는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 도련님, 괜찮으세요?
— ...괜찮진 않은 것 같아.
솔직한 대답이었다. 이청아는 잠시 그의 곁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시선이 저 멀리 저택의 창문 하나에 머물렀다. 서은의 방이었다. 불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 도련님,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뭘 조심해야 해?
이청아는 잠시 망설였다. 손가락으로 카디건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무언가를 말해야 할지, 아니면 삼켜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결국 그녀는 낮게 입을 열었다.
— 두 분 사이의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지는 저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무슨 뜻이야.
— 예전에도 비슷한 조짐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물건을 몰래 숨기거나, 서로를 밀어내려는 작은 다툼들이... 도련님이 오시고 나서는 그게 훨씬 더 커질 것 같아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마치 오랫동안 참아왔던 말을 겨우 꺼낸 듯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 얼마나... 심했었어?
— 크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한번은 서은 아가씨의 물건이 보름 아가씨 방에서 발견된 적이 있었어요. 그날 이후로 두 분 사이가 한동안 냉랭했습니다.
도현은 침묵했다. 이청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집안의 균열은 그가 돌아오는 순간부터 더 깊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마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둑이, 그의 등장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처럼.
— 내가... 원인인 걸까.
이청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그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동정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 도련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다만... 두 분 모두 도련님을 향한 마음이 크신 만큼, 서로를 향한 경계심도 커진 거겠죠.
그 순간, 저택 2층에서 창문 하나가 소리 없이 열렸다. 보름의 방이었다. 그녀는 창틀에 팔을 걸치고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도현과 이청아, 정확히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보름의 입가에는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 무표정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그녀 자신조차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그녀의 가슴 한쪽을 조여왔다.
도현은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이청아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청아는 그 창문을 향해 짧게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미세한 긴장이 스쳤다.
— 도련님,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원의 자갈을 밟는 소리가 두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조용히 이어졌다. 등 뒤로, 2층 창문이 조용히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그 소리가 유독 크게 귓가에 남았다. 마치 무언가가 이미 결정된 것처럼, 이 밤의 공기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도현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창문은 닫혀 있었고, 보름의 방 불빛도 꺼져 있었다. 그는 잠시 그 창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냥 기분 탓이겠지.'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등줄기를 스치는 서늘함은 단순한 밤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이청아가 그의 곁에서 조용히 걸으며, 다시 한번 그 창문을 향해 짧은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제 걱정을 넘어선 무언가—경고에 가까운 예감이 스치고 있었다.
저택의 현관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안으로 사라졌다. 정원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 2층 어딘가의 방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게, 아주 조심스럽게.